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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터마을 마이크

  • 작성일 2008-07-30
  • 조회수 2,395

 

새터마을 마이크




한승원




마을 사람들은 앞바다에서 정치망 어업을 하고 사는 정호술 씨를 ‘마이크(mike)’라고 불렀다. 그 별호는 목소리가 남다르게 크고 컬컬하고 우렁차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므로, 그것은 사실 ‘확성기(擴聲器)’라는 뜻을 가지고 있었다.

체구가 남달리 큰 것도 아니고, 목이 굵은 것도 아닌데 그는 왜 그렇게 목소리가 남다르게 우렁차고 큰 것일까. 그 까닭에 대하여 두 가지 설이 있었다. 어머니 뱃속에서 막 태어났을 때부터 그렇게 목소리가 컸으므로 선천적이라는 게 그 한 가지 설이고, 다른 하나는 그 빌미를 그의 아내가 제공했다는 설이었다.

 

 

정호술 씨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내 윤복실 씨가 삼십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귀가 멀어 버렸으므로, 그 아내와 의사소통을 하려면 평소에 목청을 높여 말하지 않으면 안 되므로 자연 목소리가 커졌다는 것이었고, 바다에서 억센 파도 소리와 대적하면서 살다가 보니까 목청이 더욱 크게 발달했다는 것이었다. 

그는 낙천적인 까닭으로 여느 때 별로 대단치 않은 일에도 호쾌하게 ‘어허허허……!’하고 웃곤 했다. 쌍꺼풀인 눈이 거슴츠레한 정호술 씨와 마주앉아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귀청이 윙윙거리고 따가웠다. 그의 집 앞을 지나면서는, 거대한 텔레비전의 볼륨을 높일 수 있는 대로 높여 놓은 듯한 그의 컬컬하고 우렁차고 큰 목소리와 ‘어허허허’ 하는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의 성질은 대쪽처럼 올곧고 급하기는 하지만, 어떠한 일을 당하든지 마음속에 꽁 하고 담고 있는 것이 손톱만치도 없는 호인 중에 호인이라고 사람들은 말했다.

그가 얼마나 정직한 사람이고 어떤 종류의 호인인가 하는 것은 다음의 일화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오래전부터 그는 꽃사장과 친히 살았다.

꽃사장이라 불리는 남자는 해남이 고향인 육십 대 초반의 건강한 남자인데, 서울 강남 꽃시장에 꽃 도매 상회를 운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화분용 꽃나무와 꽃꽂이용 재료를 여기저기에 납품하고 있는 대단한 부자였다. 거기다가 강진 영암 보성 장흥 순천 등지에 수많은 논밭을 가지고 있었고, 그 논밭에는 화분용 나무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농수로의 갈대들, 야산의 억새풀꽃, 오리나무의 꽃망울, 사철나무의 잔가지, 고사리 잎사귀, 사철나무 가지들이 일단 그의 손에 들어가면 모두 돈이 되어 버리는 것이었다.

그는 근동에서 팔겠다고 내놓은 논밭들을 거침없이 사들여 꽃나무를 심었다.

쌀 수입 개방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논농사는 별 볼일 없게 되었지만, 서울의 꽃시장은 자연의 화사한 것을 그리워하는 서울 사람들의 심리에 따라 무진 번창하고 있었다. 그가 땅을 사서 꽃나무를 심어 놓기만 하면 돈으로 둔갑하곤 했다. 또 혹시 사 놓은 땅으로 새로 나는 국도가 관통할 경우에는 어마어마한 보상을 받곤 했다.

그는 마을 인근에 집을 한 채 사 이사를 하고 나서 새터마을 사람들과 마음을 트고 살았다. 술을 좋아하는 그는 자기와 어울려 술을 마셔 주는 정호술 씨와 특히 친히 지내곤 했다.

한 번 술판이 벌어졌다 하면 끝장을 보는 꽃사장의 성미를 따라 정호술 씨는 고기잡이하는 틈틈이 그와 어울려 술을 마시곤 했다. 마시면 취한 채로 자기의 트럭을 거침없이 운전하곤 했다. 선천적으로 넉넉하게 타고난 알코올 분해 능력 덕분에 그는 아직 한 번도 운전 실수를 한 적이 없었다.

그런 어느 날 밤 아홉시 반쯤에, 횟집에서의 술판을 끝내고 불콰한 얼굴로 1톤 트럭을 몰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의경들이 빨간 수신호로 그의 차를 세웠다.

앳된 의경은 가로등 불빛에 비친 그의 불콰한 얼굴을 보고, 대략 구속이나 면허 취소에 해당할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알코올 측정기를 그의 입 앞에 들이밀며 말했다.

“힘껏 불어 보십시오.”

그는 의경이 불어 보라는 대로 거침없이 불었다.

의경은 “자 힘껏 부십시오! 더, 더, 더, 더……”하고 말했다.

그런데 겨우 0,001이 측정될 뿐이었다. 의경은 고개를 갸웃하면서 다시 더 힘껏 불어 보라고 말했고, 그는 또 시키는 대로 힘을 다해 불었다. 그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가 만일 ‘나 술 한 잔도 안 했소. 나는 밀밭에만 지나가도 얼굴이 붉어지는 사람이요’하고 딱 잡아뗀다면 무사통과할 상황이었다.

의경은 그의 입에서 나오는 대답을 들어 보고 그냥 보내 줄 심산으로 “술 얼마나 마셨어요?”하고 물었다.

그는 당당하게 “나 소주 두 병밖에는 안 묵었어라우.”하고 말했다.

“네?”

의경은 경악했다. ‘하아! 소주 두 병을 마셨다는데 이렇게 알코올이 측정되지 않다니!’

의경은 그의 앞에 다시 한 번 알코올 측정기를 들이밀면서 말했다.

“다시 한 번만 불어 보시오.  힘껏! 더, 더, 더……!”

정호술 씨는 의경의 말대로 다시 또 불었는데, 그 결과는 역시 마찬가지였다.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경사가 앞으로 나서서 일을 처결했다. 당사자가 소주 두 병을 마셨다고 고백을 한 만큼 그에 상당한 처벌을 내렸다. 

그 결과 그는 한 달 뒤 70만원의 벌금을 물었다.  

뒤에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하면서 “아니, 이 사람아, 음주 측정기에 알코올 반응이 나타나지 않았는데, 왜 소주 두 병을 마셨다고 실토를 했어?”하고 빈정거리자 그는 여느 때의 그 호쾌한 웃음을 “어허허허……”하고 웃고 나서 대답했다.

“아따, 어떻게 마신 술을 안 마셨다고 거짓말을 할 것이요?”

정호술 씨는 백 원짜리 동전 내기 화투판에서도 판판이 돈을 풀곤 했는데 그것은 그가 자기 손에 든 화투장을 감추려 하지 않고 옆 사람이 다 볼 수 있도록 허술하게 관리하는 까닭이었다.

이슬비에 옷 젖는다고, 10점에 백 원 내기 놀음에서도 몇 천 원은 금방 잃을 수 있었다. 거듭 돈을 잃은 다음 받아든 화투장들이 별 볼일 없는 흑싸리 껍질 홍싸리 껍질 오동 껍질들일지라도 그는 불쾌한 표정 한 번 짓지 않고 어허허허 하고 웃곤 했다.

술을 한두 잔 들이켜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동백 아가씨나 흑산도 아가씨를 국민가수 이미자 창법으로 청승스럽게 뽑곤 하는 그의 아내 윤복실 씨는 그의 남편을 가리키며 오른손 엄지손가락 하나를 뱀 대가리처럼 내밀어 보이고 “우리 영감 매너가 최고여!”하고 말하곤 했다.


뒷산에서 한 뻐꾹새가 울고 앞산에서 다른 한 뻐꾹새가 호응을 하는 한낮 때쯤에, 어촌계장이 마을의 확성기를 통해 말했다.  

“…… 우리 마을에 사시는 정호술 씨 집에서 돼지 한 마리를 잡고 마을 어르신 여러분들께 술 한 잔을 대접하겠다고 하니께 지금 모두 가셔서 잡숴 주시기 바랍니다이.”

마을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신작로 가에 있는 정호술 씨의 집으로 몰려들었다. 대개의 마을 사람들은 그의 집에서 돼지를 잡고 술을 내는 까닭을 이미 소문을 들어 알고들 있었다. 나도 이미 아내로부터 그 소문을 들었다.

“어제 해질 무렵에 정호술 씨가 바다에서 빠져 죽을 뻔했다가 참말로 운이 좋아서 살아났다고 하요.”

“아니 왜?”

아내는 나의 물음에 웃기부터 했다. 남은 저승 문턱까지 갔다가 아슬아슬하게 살아 돌아왔다는데, 웃기부터 하는 아내의 얼굴을 쳐다보며 두 해 전의 일을 떠올렸다.

그때도 나는 아내에게서 정호술 씨의 끔찍한 사고 소식을 들었었다.

“그 양반 참말로 성질도 급하고 지혜도 없어라우. 썰물에 정치망을 손보다가, 낫이 물로 빠져버린께 그 낫을 찾으려고 물로 푹 뛰어들었는데, 하필 바다 밑바닥에 날카로운 댓가지가 박혀 있었던지 발바닥을 뚫어 버렸다고 하구만이라우.”

그때 정호술 씨는 댓가지가 발바닥에 깊이 박힌 채로 트럭을 운전하고 읍내 종합 병원으로 갔다. 박힌 댓가지는 정치망 그물을 지탱하게 하는 팔뚝 굵기의 통대나무 반쯤 썩은 것이었고, 그것이 발바닥과 발등을 관통해 버렸으므로 두 시간에 걸친 큰 수술 끝에 그것을 제거했다. 수술 도중에 피를 많이 흘렸으므로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후 그는 한 달 동안이나 목발을 짚고 다니면서 통원치료를 받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병문안을 오는 사람들을 향해 “어허허허……”하고 웃기부터 한 다음 “아따 참말로 큰 경험 했소야.”하고 말했다.

  

내가 아내와 함께 정호술 씨의 집 대문 앞에 이르렀을 때 그의 호쾌한 너털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집 마당에는 마을 사람들 여남은 명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그들은 숯불에 군 돼지고기에 소주를 마시기도 하고, 빨간 수박 한 쪽씩을 먹고 있기도 했다. 정호술 씨는 큰 독을 울려나오는 듯 컬컬하고 우렁차고 큰 목소리로, 사람들에게 자기가 죽을 뻔한 이야기를 시시콜콜하게 늘어놓고 있었다.

“사리 때라 밀물은 빨빨하게 올라오고 있는디, 갯진질이 밀려들어서 그물에 걸려 있을 것을 생각한께 조급해서 견딜 수가 없었어라우. 갯진질이 하루만 걸려 있는 채로 밀물 썰물이 번갈아 지나가 버리면 어장이 쓰러져 버려라우. 한 번 쓰러지면은 그물을 뜯어내고 대말부터를 새로 박아야 하니께 그냥 놔두고 있을 수가 없어라우.”


정호술 씨는 꽃사장과 횟집에서 소주 한 병 반쯤을 마시기는 했지만 기계배를 달려 정치망으로 갔다. 그 정도 술기운이면 실수 없이 어망을 손보고 돌아갈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다.

어망에는 예상했던 대로 갯진질이 수북하게 걸려 있었다. 바야흐로 밀물은 중중 밀려들고 있었다. 밀물은 서남쪽인 완도에서 동북쪽인 벌교만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배를 어망에 대자마자 그는 뱃전 시울에 배를 붙이고 엎드린 채 갯진질을 긁어 멀리 던지기 시작했다. 수면에 드러나 있는 그물에 걸린 것을 뜯어내기는 쉬운데 짙푸른 수면 속에 잠겨 있는 그물에 걸린 것을 뜯어내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윗몸을 한껏 숙이고 뜯어내 멀리 던져야만 했다.

동남풍이 불고 있었다. 살찐 송아지만한 파도들은 고흥반도 쪽에서 달려왔고, 배는 파도에 받혀 기우뚱거리면서 굼실거렸다. 이런 때에는 출렁거리는 파도의 가락에 따라 일을 해야 했다.

드높은 파도 하나가 지나가고 난 다음 뱃전이 아래쪽으로 기우는 순간 그물에 걸린 갯진질을 얼른 뜯어 던지고, 뱃전이 위쪽으로 올라서면 중단하고 다시 기우뚱 밑으로 숙여지면 얼른 뜯어 던졌다.

한데 뜻밖에 전보다 더 큰 파도가 달려옴으로써 배가 더 심하게 기우뚱거렸다. 기울어졌던 뱃전이 위로 오를 때 뱃전 시울에 배를 붙인 그의 몸도 따라 올라와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했다. 물속의 갯진질을 뜯으려고 한껏 숙인 윗몸이 균형을 잃고 물로 빠져 들어가 버렸다. 아차, 하면서 뱃전을 잡으려 하는데, 윗몸이 이미 물속으로 처박힌 뒤였고, 배는 그를 버려둔 채 멀어져 갔다.

헤엄을 칠 줄 모르므로 배를 잡으러 갈 수 없었다. 밀물 때라 발이 바다 밑바닥에 닿지 않았다. 이제 그물을 놓치게 되면 물을 따라 떠내려가 죽게 된다고 생각됐다. 그물 줄을 붙잡은 채로 어망을 지탱해 주고 있는 굵은 말대에게로 나아갔다. 그 말대를 두 손으로 단단히 움켜잡았다.

그의 배는 물에 빠진 주인을 멀뚱멀뚱 바라보면서 바람에 밀려 스무 남은 걸음이나 멀어져 가 있었다. 바람은 전보다 더 세차게 불었다. 그는 이제 하릴없이 누군가에게 구원을 요청해야 하는 것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여기저기 갈매기만 고기 사냥을 할 뿐 배 한 척 떠 있지 않았다.

차가운 바닷물 속에 빠져 있는 몸이 으쓱으쓱 추웠다. 말대를 단단히 붙잡은 채 그는 넓바위 연안에 산책 나온 사람들이 있지 않는지 살펴보았다. 해는 서쪽 산 너머로 떨어져 있고, 그 산 위로는 불그레한 노을이 피어났다. 연안 모래밭은 산그늘에 잠겨 있었다. 사람들 몇이 연안 뒤쪽 찻길을 지나다니고 있었다. 운동을 나온 사람들이었다. 그 사람들에게 그는 희망을 걸었다. 그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사람 살리시요오!”

크게 소리치는 데에는 자신이 있었다. 목과 아구창에 힘을 모아 더욱 큰 소리로 외쳤다.

“여기 사람 물에 빠져 있소오!”

그러나 그의 외치는 소리는 파도 소리에 묻히고 있었다. 먼 바다에서 수르륵 구루룩 소리를 내며 달려온 파도는 정치망 어장의 그물과 말대를 스치면서 철거덕거렸다. 그 파도들은 연안 모래밭이나 갯바위로 달려가서 부딪치면서 더 큰 소리로 철썩철썩 소리를 낼 것이다. 그 파도소리에 내 목소리가 묻혀 버리는 까닭으로 아무도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면 나는 어찌 되는가.

물속에 들어 있는 몸의 체온이 급강하하고 있었다. 부들부들 떨렸다. 누군가가 구해 주려고 배를 저어 오지 않는다면 얼어 죽게 될 듯싶었다.

아내는 지금쯤 시장에서 돌아왔을까. 나는 아내에게 바다에 나간다고 말하지 않았으므로, 아내는 내가 어딘가에서 꽃사장과 술판을 벌이고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정호술 씨는 부쩍 조급해졌고 더럭 겁이 났다. 심장이 떨리고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저승사자들이 파도의 등을 타고 그를 향해 오고 있는 듯싶었다. 그들이 그의 멱살을 잡아끌면서 물속으로 들어갈 것 같았다.

이대로 죽을 수 없다, 하고 이를 악물었다. 말대를 단단히 붙잡은 채 넓바위 연안에서 대리로 돌아가는 산모퉁이의 부두를 바라보았다. 마침 그곳을 두 사람의 그림자가 지나가고 있었다. 그는 그들에게 희망을 걸었다. 배창자와 목청과 아구창에다 젖 먹을 때의 힘까지를 모두 모으고 힘껏 외쳤다.

“사람 살리시요오!”

그들은 그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그냥 지나가 버렸다. 새까만 절망이 그의 눈앞을 가렸다.

키 작달막한 아내의 흰 얼굴이 떠올랐다. 바다와 시장 바닥을 오가며 살기는 하지만 아내의 얼굴은 검게 그을지 않았다. 쌍꺼풀진 눈에 금빛 나는 자그마한 귀고리를 하고 입술을 약간 붉게 칠한 그의 아내는 아직도 사십대 중반 같은 미모였다.


그 아내 윤복실 씨를 그는 스물여섯 살 되던 해에 금당도에서 만났다.

군대에서 제대한 다음 마땅한 일을 찾지 못하고 있던 그는 한창 김 풍년이 들었다고 소문난 금당도로 김 머슴살이로 돈을 벌기 위해 갔다.

알부자라고 소문난 집의 김 머슴으로 들어갔다. 한창 젊은 정호술 씨는 중키에 오동통한 몸이었고, 당차고 강단졌으므로 바다에서 김발을 잘 다루었고 김도 넉넉하게 뜯어 왔고, 육지 건장에서 물김을 떠 말리는 일도 잽싸게 잘해냈다.

주인집 내외는 정호술 씨를 친아들처럼 아끼고 사랑했고, 손아래인 그 집 아들과 딸은 그를 친형이나 오빠처럼 좋아했다. 특히 그 집의 딸이 그의 마음에 들었다. 작달막한 키이기는 하지만 얼굴이 갸름하고 웃는 모습 말하는 품새가 한없이 귀여웠다. 저런 여자라면 평생을 함께 살아도 뉘 나지 않을 듯싶었다. 

그는 추운 겨울인데다 파도와 싸우며 김을 뜯어 날라야 하는 것이 일이었지만, 김 머슴살이에 신바람이 났다. 바다에서나 육지에서나 휘파람을 휘휘 불면서 일했다.

김 붙인 발장을 건장에 널기도 하고 김 방죽으로 달려가서 주인 내외가 김 붙여 놓은 발장을 짊어지고 건장으로 달려오기도 했다. 점심을 먹기가 바쁘게 바다로 나가 신바람 나게 노를 저어 김발로 갔다. 고추알바람이 불어왔고 손이 오리발처럼 빨갛게 되었지만 그는 추위를 느끼지 않고 열심히 일을 했다. 얼굴 갸름하고 눈썹이 새까맣고 입술이 도톰하고 눈 뚜껑이 약간 두꺼운 주인집 딸의 상냥스러운 말과 웃음 때문이었다.

주인집 딸은 아침 설거지를 해 놓고 김 건장에 나오는 시간이 늦어지곤 했는데, 그것은 그녀가 거울 앞에서 머리와 얼굴을 다듬고 옷차림에 신경을 쓰곤 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녀에게서 풍겨 오는 비누 냄새와 분단장 향기와 흰 저고리와 검정 치맛자락에서 날아오는 새물내 때문에 가슴이 저렸다. 밤이면 그녀 생각으로 인해 잠을 설쳤다. 그녀와 건장 막 속에서 서로를 끌어안고 사랑을 나누는 꿈을 꾸고 또 꾸었다.

바다에는 김이 썩어 문드러질 만큼 자라 있었다. 날마다 해가 저물 때까지 김을 뜯어 오고 그것을 새벽부터 떠 말리고 하여도 바다의 김은 줄지 않았다.

그런 어느 날 주인장이 이웃 마을 초상집에 조문을 가야 한다면서 딸 복실이와 함께 바다에 김을 뜯으러 가라고 말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허리가 불편하므로 간신히 마른 김만 손댔다. 그들은 이른 점심을 먹고 찐 고구마 한 자루를 싸가지고 바다로 나갔다. 바다로 나가면서부터 정호술 씨는 얼굴이 화끈거리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선창에 정박해 있는 배에 오르자마자 매섭게 불어오는 북풍을 헤치면서 노를 저어 갔다. 그녀는 흰 털수건으로 머리와 볼과 목을 싸맨 채 뱃머리의 덕판 아래 앉아 있었다. 그녀의 모습이 한 떨기의 탐스러운 꽃 같았다.

오짓개 모퉁이에 있는 김발에 배를 옆으로 붙였다. 그들은 나란히 뱃전에 배를 대고 엎드려 물김을 뜯었다. 그녀의 손은 열쌨다. 정호술 씨가 대 두 쪽의 김을 뜯으면 그녀는 세 쪽의 김을 뜯었다. 열쌔게 뜯고 있는 그녀의 손은 귀여운 흰 물새 같았다.

“뭔 손이 그렇게 날래다요?”

정호술 씨의 말에 그녀는 대꾸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더 말을 잇지 않고 물김만 뜯었다. 그녀의 침묵이 그의 가슴을 답답하게 했다. 심장은 계속 펄럭거리고 있었고 숨이 가빴다. 머리 위의 태양은 여느 때와 달리 찬란한 빛살을 쏟아 붓고 있었고, 바다는 진한 쪽빛이었고 파도는 춤을 추듯이 출렁거렸다. 세상이 훈훈하게 느껴졌다. 그 훈훈한 기운은 그녀에게서 퍼져 나오고 있었다.

지나가는 배에 탄 이웃집 김 머슴이 농담을 던졌다.

“먼 데서 본께 영락없이 정다운 한 쌍의 비둘기 같네이.”

먼 데 있는 배에서 누군가가 큰 소리로 말했다.

“정호술이 자네 아주 그 집 데릴사위로 앉어버리소이.”

그의 얼굴이 화끈 뜨거워졌고 가슴이 더욱 우둔거렸다. 그녀는 못 들은 체하고 물김만 뜯었다. 그는 그들의 짓궂은 농담이 싫지 않았지만, 민망스러워 고개를 돌리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바로 뚫어진 입이라고 함부로 씨부렁거리지 말드라고잉!”

구럭 하나에 물김이 가득 차올랐다. 해는 서산머리에 걸려 있었다. 그때 문득 그녀가 그에게 등을 보이면서 조심스럽게 돌아앉더니 “정생, 저 바우에다가 배 좀 대 주시오.”하고 말했다.

그는 화들짝 놀랐다. 사람들의 놀림에 속상한 그녀가 혼자서 연안 자갈밭을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려는 것일까.

“아니 어째서…… 그냥 가버릴라고 그러요?…… 저 사람들이 한 말 때문에 그러시오?”

그녀는 정색을 하고 도리질을 하면서 “아니라우, 얼른 저기다가 배 대 주시오.”하고 재촉을 했다. 오줌이 마려운 모양이다 싶었다. 그러고 보니 그도 오줌이 마려웠다.

그는 서둘러 김발에서 배를 떼어 낸 다음 오짓개 검은 갯바위에 뱃머리를 대 주었다. 갯바위 표면에는 매생이 돌김 우뭇가사리 파래 따위가 자라고 있어 미끄러울 듯싶었다. 그가 얼른 “미끄러진디 조심하시오.”하고 말했다.

그녀는 대꾸하지 않고 조심조심 네발짐승처럼 엄금엉금 갯바위를 기어 올라갔다. 그는 그녀의 엉덩이를 가린 펑퍼짐한 검정 치맛자락만 보고 서 있었다.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갯바위 너머로 사라졌다. 그 너머는 소나무 숲이었다.

그는 바다 쪽으로 돌아서서 괴춤을 까 내리고 오줌을 누었다. 오줌줄기가 바닷물 수면을 꿰뚫었다. 그녀에게 장가를 들고 싶었다. 마을에 돌아가자마자 중매쟁이를 넣을 생각이었다.  

잠시 뒤에 숲 속으로 들어갔던 그녀가 돌아왔다. 갯바위는 비탈졌으므로 올라갈 때보다 내려올 때가 더 위험했다. 만일 미끄러진다면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굴러 떨어질 것이고, 다리나 팔이나 뒤통수를 다칠 수도 있을 터였다. 아니 발을 헛디디고 물로 떨어질 수도 있을 터였다.

그는 뱃머리의 덕판에 서서 그녀가 미끄러져 떨어질 것을 대비하여 두 팔을 벌렸다. 그녀는 부들부들 떨면서 뱃머리 쪽으로 내려왔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파래 돋은 바위 표면에서 주르르 미끄러졌다.

“조심하시요!” 

그의 부르짖음과 동시에 그녀가 “어메! 어쩌꼬!”하고 부르짖었다. 그녀는 그의 앞으로 굴러 떨어졌고, 그는 그녀를 덥석 안아 버렸다. 그들 두 몸뚱이는 하나가 된 채로 뒷걸음질을 치다가 배의 갑판으로 넘어졌다. 그때 그의 엉덩이에 무언가가 물큰 닿고 있었다.

그들은 털고 일어나자마자 서로를 바라보았다.

“복실 씨, 어디 다친 데 없소?”

그녀는 도리질을 했다. 그는 엉덩이가 뭉개 버린 물큰한 것을 들어올리며 “허허허허” 하고 웃었다. 그것은 찐 고구마 자루인데 그의 엉덩이에 눌려 납작해져 있었다. 그는 그것을 덕판 밑으로 들여놓으면서 “아이고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소이!”하고 말했다. 그는 가슴이 심하게 우둔거렸고,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조금 전 그녀가 그의 품에 안기던 순간 맡은 알큰한 체취와 그의 가슴에 닿은 그녀의 봉싯한 젖가슴 때문이었다. 

“배고프신디 아주 고구마 잡수고 하십시다.”

그녀가 수줍어하면서 삶은 고구마를 꺼내다가 그의 앞에 들이밀었다. 고구마들은 납작하게 으깨어져 있었다.

그는 고구마를 받아들고 먹기 시작했다. 그녀도 한 개를 먹었다. 그는 모로 돌아앉은 채 고구마를 먹는 그녀의 얼굴을 흘긋 훔쳐보았다. 흰 살빛과 약간 부은 듯한 눈매와 도톰한 입술이 그림 같았다. 이 여자하고 결혼을 해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 가슴이 두근거리며 몸이 허공에 붕 떠오르는 듯싶었다. 

노을이 벌겋게 타올랐다. 그들은 김발로 가서 다시 물김을 뜯기 시작했다. 오래지 않아 땅거미가 내렸다. 먼 바다에 샛노란 까치 노을이 떴다.

“고만 갑시다.”

그녀가 말했고, 그가 김발에서 배를 떼어 낸 다음 노를 젓기 시작했다.

“저기, 집에 식구들, 누구누구 몇 사람이라고 했소?”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아, 복실이가 우리 집 사정을 깊이 알아보려 한다.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는 서쪽 하늘에서 반짝거리는 별을 보면서 노를 젓기만 했다. 뱃머리는 파도를 으깨면서 나아갔다. 마을 배들이 하나 둘 선창으로 몰려들었다.

그는 뜨거운 감개로 인하여 숨가빠하면서 간신히 “아부지 어무니뿐이라우. 누님 둘은 시집갔고”하고 말했다.

그녀가 물었다.

“어디다가 정해 놓은 여자 있소?”  

그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없소. 빨갛게 가난한 놈을 누가 따라 살라고 하겄소?”

“우리 아부지 말씀이……”하고 난 그녀가 한참 뜸을 들이고 있다가 말을 이었다.

“…… 어떤 누구는 이 세상에 나올 때부터 노적가리 보듬고 나온다냐고, 모두가 다 맨손 맨주먹으로 나오는 법이라고. 사람이 부자 되어 잘 살아 갈라면은, 첫째 몸이 튼튼해야 하고, 둘째는 마음이 순하고 곱고 착해야 하고, 셋째는 부지런해야 하고, 넷째는 노름하지 말고 아껴 모을 줄 알아야 한다고…… 그런디…….”

정호술 씨는 서쪽 하늘에서 금빛으로 반짝거리는 별을 보며 생각했다. 내가 그 네 가지 성품을 다 가지고 있을까. 그녀가 몸을 일으키더니 고물 쪽으로 걸어왔다. 그가 젓고 있는 노를 거들어 주면서 말했다.

“그런디 정생이 그것들을 다 갖추고 있다고 그러십디다.”

순간 그의 가슴속에서 뜨거운 덩어리 하나가 뭉쳐졌고 눈앞이 어질어질했다. 숨이 가빴다. 그는 흘긋 그녀를 돌아보았다. 얼굴이 예쁘고 상냥스럽고 착하다. 그런데 키가 약간 작은 것이 흠이다. 아니, 무슨 소리냐, 키 작은 것은 흠이 아니다. 참새는 작아도 알만 잘 낳고 제비는 작아도 강남을 다녀온다고 했다.

“꼭 복실이 같이 생긴 여자하고 함께 산다면 평생 동안 나는 참말로 행복할 것 같소.” 

그녀는 말이 없었다.

그날 밤 사랑방에서 깊이 잠이 들어 있는데, 누군가가 그의 가슴을 흔들어 깨웠다. 놀라 깨어 누구냐고 물으니 그녀의 목소리가 “말 크게 하지 마시오”하고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안방의 어머니 아버지가 깰까 싶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분향 어린 체취가 가슴속을 환하게 밝혔다.

그가 성냥불을 그어 등잔불에 붙이니, 그녀가 얼른 담요 자락으로 출입문을 가려 버렸다. 출입문을 가리고 난 그녀가 그를 향해 돌아앉았을 때 그녀의 검은 치맛자락이 품고 있던 바람 한 무더기가 그에게로 날아왔다. 그 바람에 등잔불이 꺼져 버렸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그는 그녀의 치맛바람이 품어 낸 새물내와 물씬한 체취를 숨 가쁘게 들이켰다.

그는 그녀의 체취에 취한 채 앉아만 있는데 그녀가 성냥불을 켜서 등잔 심지에 붙였다. 방이 다시 환해졌고, 그녀는 마분지에 싼 것을 그의 앞에 펼쳐 놓았다. 응고된 피 색깔의 달처럼 동그란 엿이었다. 그녀는 엿 한 조각을 그의 입에 넣어 주었다. 그는 그녀에게서 건너오는 분향을 맡으면서 아귀아귀 엿을 먹었다. 가슴이 벅차올랐고 얼굴이 화끈거렸고 숨이 가빴다.

“복실이도…….”

커다란 엿 덩이를 머금은 입으로 간신히 말하자 그녀는 도리질을 했다. 자기는 마을에서 동무들하고 많이 먹고 왔으니 걱정 말고 어서 먹으라고 했다.

안방에서 자고 있는 복실이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두려웠다. 그는 그들을 배반하고 그들에게서 소중한 것을 도둑질하고 있는 것이었다. 복실이는 자기 아버지 어머니 몰래 김 몇 묶음을 훔쳐다 주기로 하고 외상으로 엿을 사다가 그에게 먹이고 있었다. 그는 복실이와 공범이었다. 또한 그는 그들의 귀한 딸을 훔칠 생각을 품고 있는 것이었다.  

“복실이, 만일에 어무니 아부지가 이 일을 알면 어쩔라고 이러시오?”

그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속삭이듯이 물었다. 그녀는 싱긋 웃으면서 도리질을 하고, 자기 어머니 아버지는 한 번 잠이 들면 떼매가도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몸을 으쓱 움츠리고 나서 “아이고 나 춥소이!”하고 말하며 그의 옆으로 몽그작몽그작 옮겨 앉더니 그의 아랫도리가 묻혀 있는 이불 속으로 두 다리를 들이밀었다. 그의 내의 바람인 다리에 그녀의 발이 닿았다. 그는 전기에 감전되기라도 한 듯 흠칫 놀랐다. 그녀의 발은 차가웠다. 그가 이불을 끌어다가 그녀의 아랫도리를 덮어 주었다.

그 순간 그녀가 그의 허리를 보듬었다. 그의 등 뒤로 돌아간 그녀의 두 손이 손깍지를 끼어 힘껏 조였다. 얼굴을 그의 가슴에 묻었다. 그녀는 떨고 있었다.

“나는 김 채취 끝나 가는 것이 갑갑해 죽겄소이!…… 김 끝나면은 정생이 고향으로 돌아갈 것 아니요?…… 정생 돌아갈 때 나 옷 보따리 싸가지고 쫄랑쫄랑 따라갈까라우?”

그는 가슴이 활활 타올랐다. 숨이 막혔다. 알 수 없는 힘이 불끈 솟았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눈을 딱 감고 모로 쓰러지면서 그녀의 가슴을 힘껏 끌어안아 버렸다.

 

김 채취 끝나고 김발에 쓴 말목들을 모두 설거지하고 난 그는 고향마을로 돌아가자마자 아버지 어머니에게 “나 저기 금당 마을에다가 처녀 하나 맞혀 놓고 왔소”하고 말했다. 어머니 아버지는 그의 말만 믿고 그녀와의 혼사를 추진했다. 

그런데 막상 혼례를 치르고 신부를 맞이한 날부터 그의 어머니는 토라져 버렸다. 신부의 키가 너무 작다는 것을 빌미로 하여 혼수 타박을 하고, 신부 집에서 해온 이바지를 내동댕이쳤다.

아내 복실이는 신행 첫날밤에 그의 품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그는 복실이를 어르고 달랬다. 그녀는 곧 아기를 배었고, 딸을 순산했다.

복실이는 아기를 시어머니에게 맡기고 남편을 따라 배를 탔다. 정치망을 세 척 막았는데, 썰물 때에 나가 보면 그물이 미어터지도록 고기들이 들어 있었다. ‘물 반, 고기 반’이란 말이 거기에서 난 말이었다.

복실이는 상냥하고 언사가 좋고 장사 수완 또한 좋았으므로, 인근 강진 관산 대덕 등지의 5일 장으로 달려가서 좌판을 벌이고 고기들을 다른 사람들보다 두 배 가까이 비싸게 팔곤 했다.

그렇게 돈을 불리다가 둘째를 낳았는데 아들이었다. 시어머니는 이제 키 작다는 타박을 하려 하지 않았다. 아기를 등에 업고 동네방네 돌아다니면서 며느리 자랑을 늘어놓았다.

시아버지 시어머니 돌아가신 다음에는 아이들을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에 보냈고, 그 아이들은 제 짝을 맞아 잘살고 있었다. 그와 아내는 그들을 위해서 아파트 한 채씩을 사 주었다. 

이제부터 고기잡이와 시장에서 벌인 좌판으로 말미암아 통장에 불어나는 돈은 모두 둘이서 쓸 것이었다. 그들은 멀지 않아 고기잡이 걷어치우고 여기저기 여행이나 즐기며 살아가자고 의논을 하고 있었다.

한데 이게 무어란 말인가. 죽도록 벌어 놓은 돈을 써 보지도 못하고 죽어 가야 하다니, 너무 억울하고 슬펐다.


밀물은 중중 밀려들고 있었다. 세찬 밀물은 사력을 다해 말대를 붙잡고 있는 그의 몸을 휘감고 돌았다. 만일 말대를 놓치기만 하면 물살 속에 휘말아 넣어 버릴 기세였다.

그런 속에서 그의 몸은 차갑게 얼어 가고 있었다. 저승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이대로 물속에 들어 있으면 멀지 않아 체온이 떨어져 죽을 수밖에 없다. 겁이 났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이를 악물고 목을 가다듬었다. 넓바우 연안과 신상으로 돌아가는 큰길 모퉁이를 오가는 사람들을 향해 외쳤다.

“사람 살리시요오!”

한데 그의 목소리를 파도 소리가 또 삼켜버렸다. 그가 생각해도 그의 목소리는 너무 작다 싶었다. 이 목소리 가지고 어떻게 파도를 제압한단 말인가. 이 작은 목소리로써 어떻게 파도 소리 저 편에 있는 사람들의 귀를 울려 줄 것인가. 평소에 자기의 목소리가 크고 우렁차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던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맥이 빠진 채 한동안 융기하는 파도 저쪽의 아스라한 육지를 바라보았다. 넓바우 연안과 신상으로 가는 산모퉁이 사이에 선착장이 있었다. 거기에 두 사람이 나란히 서서 체조를 하고 있었다. 그는 그들의 귀에 그의 목소리가 들리도록 큰 소리를 질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느냐 죽느냐 하는 것은 오직 나의 목청에 달려 있다.

그는 군대에서 소대장이 하던 말을 생각했다. 목소리를 더욱 크고 우렁차게 하려면 배창자에 모든 힘을 모아야 한다고 했었다. 소대장은 폭포 앞으로 소대원들을 모두 이끌고 가서 폭포 소리를 이겨 보라고 명령했었다. 그렇다. 나도 그렇게 파도 소리를 제압하자. 그는 이번 한 번만 외치고 나서는 목에 피가 터져 죽게 되어도 좋다는 각오로, 온몸의 힘을 배창자에 모으고 힘껏 외쳤다. 목청이 찢어지도록 외쳤다.

“사라암 살리시오오! 사라암 살리시오오!” 

부두 끝에 선 사람들이 하던 체조를 멈추었다. 둘이서 무슨 말을 주고받았는지 그가 붙잡고 있는 정치망을 바라보았다. 한 사람이 그를 향해 두 손을 흔들어댔다.

그는 용기를 얻어 다시 한 번 목청 높여 소리를 질렀다.

오래지 않아 해양경찰의 순시선이 달려왔고 물에 빠져 있는 그를 배에 태운 다음 산모퉁이 저쪽으로 떠나가는 그의 배를 고물에 달고 선창으로 왔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그는 아내를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그를 희롱했다.

“자네 오늘 밤에 죽었으면 모레 발인을 하게 될 것이여.”

그러나 그의 아내 복실이가 말했다.

“내 이름이 복실인디 우리 영감이 나를 놔두고 죽는다요?”

마당가에는 서감이라는 보라색 철쭉꽃들이 웃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 가운데 누군가가 “마이크 달고 사는 보람 했구만그래”하고 말했고, 정호술 씨는 사람들이 권한 소주로 인해 불콰해진 얼굴로 나를 향해 말했다.

“형님 같으면 죽었어라우.”

목소리가 작은 내가 그 지경을 당했다면 살아 나오지 못했을 거라는 것이었다.

“그래, 그래, 자네 이제 두 세상 살게 되었네.”

나의 말에 정호술 씨는 어허허허 하고 웃었다. 그 웃음 속에 푸른 바다 한가운데서 절감했던 절대 고독이 끈끈하게 묻어 있었다. 

“영칠이 자네 같았어도 죽었어.”

정호술 씨는 옆에 서서 돼지고기에 소주를 들이켜고 있는 이웃 남자를 향해 말하고 어허허허 하고 웃었다. 누군가가 말했다.

“자자, 우리 모두 새터마을 마이크를 위하여 축배를 듭시다이!”

모두들 잔을 들어 올리고 정호술 씨 살아 돌아온 것을 축하했다. 정호술 씨는 술잔을 들면서 컬컬하고 우렁차고 큰 목소리로 “어허허허……” 하고 웃고 나서 그 술잔을 단숨에 비웠다. 그리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서 으흑으흑 하고 울었다. 순간 그의 아내 윤복실 씨가 “아이고 우리 영감!”하면서 달려가 그의 얼굴을 풍성한 가슴으로 품어 버렸다.《문장 웹진/2008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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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마음 없이

좋아하는 마음 없이 김지연 안지는 이른 결혼을 했는데 실패로 끝났다. 아니, 그걸 실패라고 할 수 있을까? 이혼을 한 건 사실이었지만 안지는 자신의 인생 여정에서 그때 이혼한 일을 실패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 뒤로 더 행복해졌다고 할 수는 없을지언정 조금 더 자기 자신에 가까운 삶을 살게 된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혼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면 늘 그에 대해 변호하고 싶은 여러 말들이 떠오르곤 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결혼 같은 건 하지 않는 편이 더 나았을 거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때문에 이혼했다는 사실은 안지의 비밀은 아니었지만 먼저 나서서 밝히지도 않았다. 어릴 때 안지는 무척 전형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다. 구체적으로 그런 표현을 떠올리지는 않았다. 그저 자신이 속해야 하는 집단에서 튀지 않는 사람, 아주 평균적인 사람이고 싶었고 그런 사람이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을 했다. 찬반투표를 할 때면 눈치를 보다가 다수의 의견에 따라 슬그머니 손을 들었다. 친구가 좋아하는 가수를 따라서 좋아하고 친구의 것과 비슷한 브랜드의 신발을 사서 신었다. 친구들이 싫어하는 선생을 따라서 싫어했다. 사실 안지는 그 선생에게 남몰래 호감을 갖고 있었지만 친구들과 함께 떡볶이를 먹다가 술술 흘러나온 그 선생에 대한 욕을 듣고 재빨리 노선을 바꿔 함께 욕을 했다. 한동안 안지는 수학 시간마다 왜 애들은 저 선생을 싫어할까? 에 대한 답을 알고 싶어서 더 열심히 선생의 행동거지를 살폈다. 수학을 가르친다는 점만 빼면 딱히 나무랄 데 없는 사람이었다. 학생이 쉽게 답할 수 없는 내용을 골리듯 물어보지 않았고 무엇보다 학생들한테 사과를 할 줄 알았다. 뭔가 잘못 알고 섣불리 화를 냈을 때, 그러다 결국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다른 선생들은 그러게 헷갈릴 만한 짓을 왜 하고 다니느냐고 도리어 짜증을 부렸는데 그 선생은 재빨리 미안하다고 말했다. 미안하다. 내가 잘못 알았어. 미안해. 가끔 안지는 머릿속으로 그 목소리를 재생해 보곤 했다. 그 때문에 선생이 더 좋아졌지만 여전히 싫어하기 위해 애썼다. 누구나 다 그런 식으로 청소년기를 보내지 않나? 내가 아닌 사람이 되어 보려고 노력하면서? 안지는 대학에 갔고 연애를 했고 졸업을 했고 취직을 했다. 결혼도 했다. 아주 평균적인 삶이었다. 조금씩 빠르기도 했다. 조바심이 나 있었으므로. 자신도 남들처럼 지극히 평범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빨리 증명해 보이고 싶었으므로. 어느 정도 성공적인 것 같기도 했다. 남편이 바람이 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식도 올리기 전 임신을 해 낳은 아이가 막 돌을 지난 참이었다. 임신이 아니었으면 결혼까지는 이어지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남편은 계속 후회하는 것 같았다. 그때 낙태를 밀어붙이지 않은 것을, 시간을 끌다가 영영 타이밍을 놓쳐버리고 만 것을, 어떤 결단력을 가지지 못한 자신을 자책했을지도 모른다. 그때 뼈저리게 깨달은 바가 있었는지 새로운 여자가 생겼을 때는 안지가 알아차리기도 전에 이혼을 해달라고 요구했다. 겨우 육 개월을 만났을 뿐

  • 관리자
  • 2024-07-01
소금 샹들리에

소금 샹들리에 정한아 호주에 사는 김이 오랜만에 귀국해서 친구들이 다 같이 모이기로 했다. 4명이 만나는 건 대략 7년여 만이었다. 방을 잡고 밤새 보자고 해서 오기 직전까지 망설였는데, 남편이 등을 밀었다. 정민이와 자신에게도 내가 없는 날이 필요하다고 큰소리를 치더니 정말 밤새 전화 한 통 없었다. 친구들과는 대학 동기였다. 전공은 문예 창작이었는데, 나는 2학년까지 다니고 학교를 그만뒀다. 그렇지만 정작 작가가 된 사람은 나뿐이라고 친구들이 투덜거렸다. 나는 작가가 아니라고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었다. 그들은 십 수 년 전 내가 낸 단 한 권의 책을 기억하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 세 명 모두 미혼이었고, 아이를 가지지 않았다. 놀라울 정도로 예전 그대로인 친구들 사이에서 나만 철 지난 옷차림에 좀처럼 대화에도 섞이지 못했지만, 그런 것 때문에 마음이 상하지는 않았다. 오랜만의 서울 나들이에 술자리도 즐거웠다. 좋은 친구들이었다. 7년 전 정민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 판정을 받았을 때 그들은 자신의 일처럼 울어 줬고, 이후에도 종종 아이의 간식과 선물을 집으로 보내 줬다. 서서히 연락을 거둔 것은 내 쪽이었다. 애써 관계를 유지하는 일이 힘에 부쳤을 뿐, 그들에게 섭섭한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집이 아닌 곳에서 밤을 보낸 적이 없었다. 다들 술에 취해서 침대로 간 뒤에도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아 휴대폰만 들여다보았다. cctv 속 거실은 엉망이었다. 엎어진 식판, 사방에 흩어진 블록 조각, 길게 늘어진 옷가지들. 남편은 불도 끄지 않고 아이를 재우러 방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나는 정지화면 같은 그 풍경을 한참 바라보다가 해 뜰 무렵에야 겨우 잠이 들었다. 다음날 우리는 점심을 먹고 헤어지기로 했다. 맛집마다 대기가 길어 종로의 좁은 골목을 돌고 또 돌았다. 앞장서 구글 맵을 보며 걷던 김이 갑자기 작은 서점 앞에서 멈춰 서더니 책을 사야겠다고 말했다. 지난 이사 때 내 책을 분실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집에 돌아가서 책을 다시 보내 주겠다고 김을 달랬다. 다섯 평도 안 되어 보이는 그 작은 서점에 내 책이 있을 리는 만무했기 때문이다. 김은 막무가내로 서점에 들어갔다. 할 수 없이 그녀를 따라 들어갔다가 전면 책장에 전시된 내 책을 발견했다. 죽은 친구를 만났다고 해도 그처럼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미애 씨!” 그곳에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 우아한 노부인이었다. 린넨 바지에 화이트 셔츠, 큼지막한 호른 목걸이를 한 여자는 환하게 웃으면서 나를 바라봤다. “반장님?” 나는 말끝을 흐리며 물었다. 여자는 성큼성큼 내 앞에 다가와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누군가 나를 그렇게 안은 것이 너무 오랜만이라 온몸에 힘이 풀리는 것 같았다. 그녀는 오래전 나와 함께 공부했던 문우였다. H 백화점 문화센터 소설 창작 교실의 반장. 친구들이 책을 구경하는 사이 나는 그녀와 짧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ldqu

  • 관리자
  • 2024-07-01
그동안의 정의

그동안의 정의 최예솔 작정하고 사라진 사람은 작정하고 찾아야만 한다. 나는 윤정수를 작정하고 찾지 않았다. 보통의 남매 사이라는 게 정확히 어떤 건지는 모르겠지만 윤정수와 나를 그냥 보통 남매, 라고 하기에는 좀 어렵지 않을까. 윤정수는 나보다 4년 먼저 태어났다. 그리 적지도, 그리 많지도 않은 애매한 나이 차이 덕분에 윤정수와 나는 딱히 친해지지 못했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윤정수는 중학교에 갔고,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윤정수는 고등학교에 갔다. 물론 윤정수와 내가 영 친해지지 못한 건 우리의 나이 차이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윤정수는 내게 없는 사람에 가까웠다. 말수도 없고 센스도 없고 자존심도 없고 공부머리도 없고 돈도 없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나? 아무튼 남매 사이에 정이라도 있었다면 걱정이라도 했을 텐데 그럴 이유조차 없었다. 쥐뿔도 없는 윤정수니까. 특이사항이라곤 개그맨 윤정수와 동명이인이라는 것 정도밖에 없는. 그러니 윤정수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집을 나갔다고 해도 이상할 것 하나 없었지. 뭐 내가 찾는다고 윤정수가 나타났을 거라는 보장도 없지만 나는 막연히, 어련히 때 되면 나타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윤정수는 죽을 때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물론 내가 죽은 것은 아니다. 윤정수가 죽었다. 내 나이가 이제 서른이니까, 윤정수는 서른넷에 죽었다. 이제 내게 남은 혈육은 없다······ 아닌가? 고모. 그렇게 부르지 마. 왜요. 낯설어. 저도 고모가 낯설어요. 윤현수는 맹랑하다. 윤정수와 장현아의 딸이라고 해서 윤현수. 그거 좀 유치하지 않니? 물었을 때 윤현수는 뭐 어때요 엄마아빠말곤 모르는데, 하고 대답했다. 이제 나도 아는데? 하니까 이젠 고모도 모르는 척해 달라고 했다. 참 나 어디서 이런 게 굴러왔는지. 현수야. 네. 네 엄마 입국 날이 언제라고 했지? 다음 주 토요일이요. 아직 한참 남았네. 고모도 고모 할일을 해요. 시간 금방 갈걸요. 알겠다 그래. 윤현수를 데리고 온 사람은 장현아다. 이제는 나흘쯤 됐으려나. 아침부터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하도 시끄러워서 나가 봤더니 장현아가 윤현수의 손을 붙잡고 서 있었다. 장현아는 다짜고짜 윤정수를 아느냐고 물었고 나는 오랜만에 듣는 윤정수의 이름에 잠깐 벙쪘다가 네, 저희 오빠네요, 하고 대답했다. 조카입니다. 그날 장현아의 대사를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건 도저히 내가 아는 사람이 뱉을 만한 말이 아니어서 대사라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겠다. 아직도 문득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윤현수가 정말 나의 조카가 맞고 장현아가 정말 나의 새언니가 맞을까. 가족관계라는 게 그렇게 단순하게 정리되는 거라면 이제까지 윤정수와 나는, 또 윤정수와 나와 우리의 부모는, 왜 이렇게 흩어지거나 죽거나 혼자 남을

  • 관리자
  • 2024-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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