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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만 찾으면 만사형통?

  • 작성일 2024-06-01
  • 조회수 1,306

   짝만 찾으면 만사형통?


정대건


1


   얼마 전 오랜만에 박진수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인간의 변화에 대해 냉소적인 편이었다. 게다가 나이가 이제 삼십 대 후반이 되었다면 이미 세상을 바라보는 많은 것이 굳어져서 더욱 변화의 가능성이 적다고 여겼다. 진수와 나는 대학 시절 문학 동아리에서 만나 무척 가깝게 지냈던 시절이 있었지만, 현재는 책을 출간하면 건네주기 위해 일 년에 한 번 정도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함께 문학 동아리 활동을 하던 사람들 중에 글을 쓰는 사람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고 진수와 나는 읽는 사람이 많건 적건 꾸준히 글을 쓰자고 서로를 독려했다. 그런데 출간 소식도 아닌데 모처럼 만난 그는 내게 상기된 표정으로 자신이 일생일대의 선택을 했다고 말했다.

   “진정한 짝을 만났어. 천 퍼센트 확신해. 네가 쓴 문장처럼, 현실은 우리의 비루한 상상력을 앞서는 것 같다.”

   ‘현실은 늘 우리의 비루한 상상력을 앞선다.’ 내가 이 문장을 쓸 때는, 낙관적인 기대보다 현실은 늘 가혹하다는 의미로 쓴 문장이었다. 그런데 진수는 이 문장을 반대의 의미로 인용했다. 자신이 행복에 대해 꿈꿀 수 있는 최고의 상상보다 더 영화 같고 믿기지 않는 완벽한 짝이 현실에 나타났다는 거였다. 그렇게 확신에 찬 진수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신기했다. 내가 아는 그는 불안형과 회피형의 전형을 모아 둔 사람이었다. 그는 세상은 결코 선의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사람의 마음은 쉽게 변하고 만다고 불신하는 쪽이었고, 나는 그 때문에 그를 나와 비슷한 부류라고 여겼다.

   예비 신부인 민영은 아주 밝고 안정적인 성격의 회계사라고 했다. 뜻이 맞은 두 사람은 만난 지 100일 만에 이미 상견례도 마치고 예식장을 알아보는 중이라고 했다. 그는 불신과 불안의 아이콘이었기 때문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와 관련된 명확한 일화를 기억하고 있었다. SNS에서 한창 성인 애착유형 테스트가 유행이었다. ‘연애란 것은 안정형과 안정형이 하는 것이고 나머지는 사연 만들기 모임’1)이라는 SNS를 보고 우스갯소리처럼 넘기지 못하던 그였다. 불안형이라고 결과가 나온 그는 술자리에서 그 얘기를 하며 진심으로 분개했다. 2살까지 형성된 애착 유형이나 12살까지 형성된 성격으로 사람을 설명한다는 게 결정론처럼 느껴져서 싫다는 거였다. 하지만 실제로 그는 20대와 30대 동안 숱하게 불안정한 연애를 반복하며 많은 사연을 만들어 왔다.

   “그런데 너 여친이 안정형이면 안정형하고 만나지 뭐 하러 불안형을 만나?”

   내 물음에 진수는 여유롭게 웃으며 대답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어. 그런데 그런 생각 자체가 불안형들이나 하는 생각이래. 안정형은 그런 건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자기가 좋으면 만난다고 하더라고.”

   진수는 민영과 자신이 얼마나 천생연분인지 강조하며 일화를 들려주었다. 친구가 별로 없어서 예식장이 텅 비는 것을 걱정하는 그에게 친구가 없는 외톨이는 오히려 가정에 충실하기에 배우자감으로 최고라고 말했다는 것이었다.

   “평생을 외로워했는데, 이제 외톨이가 최고의 신랑감이라는 사람이 나타나다니, 정말 오래 살고 볼 일이지?”

   나는 그를 통해 마치 유기견에게 사랑을 쏟아 주면 얼마나 달라지는가 실험이라도 하는 것처럼, 사람이 정말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목격한 기분이었다. 그가 평생 두르고 있던 냉소는 다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마치 종교에라도 빠진 사람 같았다. 그는 민영이 아이를 갖고 싶어 해서 임신과 육아에 대한 계획도 같이 세우고 있다고 했다. 박진수가 아이 아빠가 된다고? 그도 이제 카톡 프로필에 ‘결혼 날짜로부터 1,196일, 아이가 태어난 지 542일’ 그런 걸 적는 세계로 넘어가는 걸까.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는 아예 다른 세계의 사람들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다들 이렇게 떠났다. 전혀 티를 내지 않던 사람들도 갑작스럽게. 그러나 다들 떠나더라도 진수만큼은 외로운 사람 편에서 망한 연애 썰을 나누고 신세 한탄하며 영원히 함께할 줄 알았는데······ 늘 불평으로 찌푸리던 얼굴이 어쩜 저렇게 환하게 변할 수 있나.

   그의 행복해하는 모습에 어쩐지 질린 나는 화제를 돌려 요즘 글쓰기는 잘 되어 가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의 밝았던 표정이 금세 굳어졌다. 그는 근래에 모든 원고 청탁을 거절하고 있다고 했다. “요즘 좀처럼 글을 쓸 수가 없어······.” 어두운 얼굴로 말하는 그를 보며 나는 속으로 역시 사람이 다 가질 수는 없는 거구나, 생각했다. 등단 이후 매년 책을 한 권씩 내던 그였는데 올해는 소식이 뜸했다. “5년 차 슬럼프는 누구한테나 오는 거래.” 나는 관습적인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내 예상을 비껴갔다. 그는 주저하더니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다 좋은데, 민영 씨가 질투를 좀 해······.”

   “응? 누구를?”

   “소설 속 인물을.”


1) https://x.com/Fromaple_1/status/1374291784075939841


2


   “우리가 삶에서 경험한 감정을 재료로 하되, 검열 없이 자유롭게 픽션을 쓰도록 합시다.”

   진수는 5년째 소설 쓰기 모임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었다. 일방적인 수업이 아니라 열 명 정도가 원으로 둘러앉아서 저마다 써온 짧은 소설을 나누는 이 모임을 그는 좋아했다. 모임에 참석하는 사람들과 서로 농담처럼 미국 영화에 나오는 알코올 중독 치료 모임 같다고 말하며 웃었지만, 그중에는 가족과 친구들에게도 하지 못할 내면의 진솔한 이야기들을 픽션으로 써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공명심 없이 글을 나누는 행위는 정말 심리 치료처럼 작용할 때가 있었고 진수는 그것이 정말 가치 있다고 여겼다. 진수가 그 모임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자 민영은 궁금해 했다.

   “진수 씨, 저도 그 모임에 가도 돼요?” 민영이 물어 오자 그는 거절하지 못했다. 민영은 진수가 가르치는 모습이 궁금하다고 평소에 말해 왔다. 작가가 평소에 일하는 모습이라고 해봐야 노트북을 노려보다가 가끔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뿐이었다. 진수는 사람들 앞에서 모임을 이끄는 모습을 보이는 게 부끄럽기도 했지만, 아주 드물게 자신의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겠다고 여겼다. 게다가 민영이 쓸 글이 궁금해서 읽어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모임 당일, 민영은 진수와 연인이라는 것을 밝히지 않고 조용히 모임에 참석했다. 민영은 과제였던 A4 두 장 분량의 글을 써오지 못했다며 미안해했다. 진수는 민영의 글을 읽지 못해 약간 실망했지만, 모임은 그렇게 빡빡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서로가 써온 짤막한 소설을 읽은 후에 돌아가며 소감을 나눴고 진수는 이렇게 하면 조금 더 좋아지지 않을까요? 하고 조심스럽게 피드백을 했다. 피드백이 끝난 후에는 30대 직장인 박 씨가 사실은 자신이 쓴 내용의 90퍼센트는 실화이고 10퍼센트만 허구라고 멋쩍게 웃으며 고백했다. 진수는 그에 대해 ‘사실이라고 말한 90퍼센트도 결국엔 박 씨의 해석이 들어간 허구’라고 덧붙이고 싶었지만, 시간 관계상 말하지 않았다.

   모임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민영은 어쩐지 말이 없었다.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파스타를 먹는 내내 그녀는 어떤 생각에 잠겨 평소와 달리 뾰로통한 얼굴이었다. 민영은 불만이 있으면 담아 두지 않고 즉각 말하는 성격이었기에 진수는 의아했다. 글쓰기 모임 시간에 내가 무슨 말실수라도 했나, 걱정하며 되짚어 봤다. “뭐 때문에 그래요. 말을 해봐요.”라고 진수가 묻자 민영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모임에서 보니까 소설이라면서 전부 자기 얘기를 하고 있더라고요.”

   “······그런데요?”

   “저는 이제 진수 씨 소설은 읽지 못할 거 같아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진수가 깜짝 놀라 물었다. 

   민영은 잠시 침묵하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진수 씨가 쓰는 소설은 전부 재회물인 거 알아요?”

   진수는 자신이 쓴 소설을 돌이켜봤다. 실제로 자신이 쓴 첫 번째 장편소설은 오래전 연인과의 연정을 비밀스럽게 품고 있다가 재회하는 이야기였고, 두 번째 장편소설도 어린 시절 만난 인연이 헤어지고 만나고를 반복하다 결국 재회하는 이야기였다. 그가 쓴 단편소설집들도 이혼한 전처와 재회하거나, 학창 시절 친했다가 소원해진 동창과 재회하는 이야기였다. 당황한 진수는 목소리를 높였다.

   “그럼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해요? 세상에는 모르던 사람들이 만나는 이야기, 만나던 사람이 헤어지는 이야기, 만났던 사람들이 다시 만나는 이야기, 이 세 가지밖에 없어요.”

   재회는 아주 흔하디흔한 이야기 구조였다. 더군다나 그가 주로 쓰는 장편소설의 경우에는 더 긴 서사를 다뤄야 하기에 인물 사이에 전사가 있는 것이 더 나았다. 진수는 사랑 이야기에는 역경이 있어야 하니까 사랑했던 사람들이 멀어졌다가 다시 만나는 이야기를 쓰는 거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민영은 납득하지 못했다.

   “진수 씨는 과거를 이상화하는 것 같아요. 평소에도 과거를 추억하고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에요?”

   “그건 말이 안 되는 거 알잖아요. 제가 민영 씨를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알아요. 하지만 소설 곳곳에 진수 씨가 만났던 사람들과의 추억이 담겨 있잖아요. 그래서 진수 씨가 쓴 글을 읽고 싶지 않아요. 제가 진수 씨 과거를 질투하는 게 너무 싫어서요.”

   민영은 정말 자존심이 상하는 듯 얼굴을 붉히고 목소리를 떨면서 물었다. 흔히 남자들이 첫사랑을 잊지 못한다는데 순수했던 그 시절을 지금보다 더 동경해서 그러는 건 아니냐고. 민영은 진수의 소설에서 진수가 과거의 연인과 한 경험 같다고 의심되는 장면들을 열거했다. 연인의 집에 칫솔을 둔 장면, 싸우고서 격렬하게 정사를 나누는 장면, 버스 안에서 남들 몰래 귓속말로 사랑을 속삭이는 장면.

   난처한 얼굴이 된 진수는 요목조목 반박하고 싶었다. 연인의 집 화장실에 칫솔을 둔 건 자신이 겪은 일이지만, 싸우고서 격렬하게 정사를 나누는 장면은 흔하게 봐온 영화적 클리셰를 비슷하게 쓴 것이고, 버스 안에서 남들 몰래 귓속말로 사랑을 속삭이는 장면은 자신이 지하철에서 목격한 인상 깊었던 커플의 모습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그러나 그는 그렇게 말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고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제가 쓰는 글이 꼭 제가 겪은 일은 아니죠. 제가 사람 죽이는 장면을 세밀하게 쓴다고 그게 제가 경험한 건 아니잖아요? 수많은 SF는 어떻고요?”

   그러나 민영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진수 씨는 SF 쓰는 작가가 아니잖아요. 자기 경험을 반영하는 것 맞잖아요.”

   진수는 한숨을 내쉬고는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그러니까, 반영하는 건 맞는데, 반영한다 해도 그걸 그대로 쓰는 것도 아니고요. 그림으로 치면 물감처럼 재료로 쓰면서 여러 색을 배합하고 가공과 재구성을 하는 거죠. 우리가 같은 경험을 한다 해도 민영 씨와 저는 각자 다른 이야기를 쓸 거예요. 이해가 안 돼요?”

   “네.”

   “저도 민영 씨가 이해가 안 되네요. 재회 이야기를 쓴다고 제 감정이 과거로 향하는 게 아니라는 건 알 텐데 민영 씨가 왜 이렇게 애처럼 구는 건지······.”

   두 사람은 점차 격양되어 갔다.

   “그럼 진수 씨는 왜 가공과 재구성을 하면서까지 자꾸만 재회 이야기를 쓰는 건데요?”

   “그건·····.”

   진수는 스스로 명쾌한 답을 갖고 있지 않다는 데 놀랐다. 왜 재회 이야기를 쓰냐고? 그는 지금까지 네 권이나 책을 냈는데 자신이 한 번도 ‘왜’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써왔다는 것에 놀랐다.


3


   민영과 헤어지고 혼자가 된 진수는 생각했다. 작가들은 결국 하나의 이야기만을 반복한다고 했다(헤밍웨이는 평생 ‘죽음과의 대결’이라는 테마를 변주했다). 나는 왜 매번 같은 패턴의 이야기 ─ 만난 사람들이 멀어졌다가 다시 재회하는 이야기 ─ 를 쓰는 것일까.

   진수가 민영의 의심처럼 ‘소설 속 모델이 된 과거의 연인’과의 재회를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 소설 속의 히로인도 특정 모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진수 자신의 망설이는 성격과 무모한 성격을 여러 갈래로 분화한 것에 가까웠다. 그는 어떤 의도가 있는 게 아니라 자연스레 재회 이야기에 끌린 것이다. 취향이랄까. 그렇다면 왜 그런 이야기에 끌리게 된 것일까. 답답한 그는 챗지피티에게 이렇게 물어 보았다. ‘어릴 때 겪은 부모님의 이혼과 아버지의 부재가 재회물을 쓰는 데 영향을 줄 수 있을까?’ 챗지피티 3.5보다 똑똑하다는 챗지피티 4.0 플러스는 이런 대답을 내놓았다.


   어린 시절 겪은 분리는 작가가 헤어진 연인들의 재회라는 주제에 강하게 이끌릴 수 있게 합니다. 이는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종의 반복 강박일 수 있으며, 작가는 분리와 재결합의 주제를 통해 자신의 불안을 해소하고 완전성을 추구하려 할 수 있습니다.


   진수는 자신의 기억에도 없는 부모님의 이혼을 떠올려 봤다. 그에게 드라마에서처럼 우는 아이를 남겨 두고 아버지가 떠나는 장면 같은 기억은 존재하지 않았다. 애초에 진수가 태어날 때부터 같이 살지 않았기에 아버지라는 존재에게 애정을 가진 일도 없었고, 그 부재를 느끼며 슬퍼한 일도 없었다. 과연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형성된 불안정 애착이 무의식을 차지해서 재회물을 반복해서 쓰고, 연인과 다투게 된 이 모든 일의 원인일까? 그는 프로이트라면 아주 지긋지긋했다.

   진수가 바라보는 현실에서는 사랑에 빠졌던 사람의 마음은 언젠가 변하고, 사람들은 결국 (백년해로하는 것이 아니라) 헤어진다. 친구도 마찬가지다. 한때 가깝게 지내며 많은 시간을 보냈던 사람들도 멀어지고 이제는 안부도 건네지 않는 사이가 되지 않았는가.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멀어지는 일이 씁쓸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여기는 반면, 그는 사이가 멀어진 게 자신의 책임인 양 부채감을 느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과거를 자꾸만 곱씹고, 현실에서는 다시 만나지 않은 인연들과 다시 만나서 오해를 풀거나 관계를 회복하는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재회 이야기에서는 두 사람이 결국 돌고 돌아 서로를 택함으로써 진짜 사랑임을 확인한다. 로맨틱 코미디에도 사랑의 장애물이 존재하지만 짧은 타임라인 동안 사랑을 성취한 커플의 이후가 진수는 영 안심이 되지 않았다. 두 사람이 행복하게 웃으면서 엔딩을 맞이한 그 뒤에도 또 이별이 도사리고 있으리라는 불안을 느꼈다. 반면 긴 세월의 흐름을 거쳐 재회한 커플은 헤매고 역경을 통과한 끝에 선택한 사랑이기에 그것은 진정한 사랑의 자리에 오르고, 그렇게 엔딩을 맞은 두 사람은 영원히 헤어지지 않겠다는 안심이 됐다.

   진수는 문득 민영이 저렇게 오해를 한 데에는 자신이 버리지 못하고 있는 ‘보물 상자’도 한몫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수의 원룸에 놀러 왔을 때 민영은 진수의 보물 상자를 본 일이 있었다. 보물 상자 안에는 그가 초등학교 때 친구와 주고받은 쪽지, 중학교 때 사귄 첫 여자친구에게 받은 편지, 받았던 선물의 포장지까지도 버리지 않고 보관되어 있었다. 진수는 그것이 워낙 어릴 때의 일이었기에 숨기는 것 없이 민영에게 보여주었다. 민영은 진수의 보물 상자를 보고 꽤 놀랐고, 진수는 그러한 민영의 반응에 놀랐다.

   사실 진수는 구글 포토에서 헤어진 연인들의 사진도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편지와 쪽지를 버리지 않거나 사진을 지우지 않았다고 해서 몇 년에 한 번이라도 그것을 다시 꺼내 보며 지난날을 추억하는 건 아니었다. 다만 그것들을 버리거나 지우려고 하면 눈시울이 시큰해지고 저항감이 들었다. 한번은 눈을 꼭 감고 클라우드의 7천 장의 사진을 전부 삭제해 버린 적도 있었다. 그러나 ‘60일 후 휴지통에 있는 항목이 영구적으로 삭제됩니다.’라는 고비를 넘지 못하고 하루를 남기고 되살리고 말았다.

   그 일화를 두고 민영은 진수에게 ‘저장 장애’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진수도 가끔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TV 프로그램에서 본 적이 있었다. 집에 온갖 폐품으로 가득 차게 쌓아 두고 발 디딜 틈도 없이 난장판으로 만드는 ‘호더(Hoarder)’라는 사람들을. TV 속 정신과 의사는 이러한 행동을 어떤 물건에 담긴 추억이 물건을 버리는 것과 동시에 없어질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보물 상자에 쪽지까지 보관하고 있다고 해서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 정도는 아니지 않은가? 진수는 좀 억울했지만,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에 대한 분석은 어느 정도 일리 있다고 인정했다. 한때 가까웠던 사람들과의 사이는 전부 달라져 버렸지만, 그가 그들과 나눈 선물과 쪽지는 변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들을 소장하며 변치 않는 것처럼 느끼는 걸지도 몰랐다.

   “나는 헤어지면 완전히 끝이에요! 일말의 가능성도 없어요.”

   민영은 자신이 지난 과거를 돌아보지도 않거니와 과거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녀는 헤어지면 별 미련 없이 사진을 전부 지운다고 했다. 한때 좋았던 사이였다 해도 이미 애정이 식었는데 사진을 지우는 것이 뭐 그리 가슴이 아프냐고 민영은 말했다. 진수는 그런 민영의 과거를 질투할 필요가 없으니 좋으면서도, 그렇게 단호한 민영이 두려워졌다. 한번 돌아서면 끝인 민영에게 애정이 식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다짐했다.


4


   그날 이후 민영과 진수의 데이트에는 점점 냉랭한 기운이 감돌았다. 두 사람은 충돌하지 않기 위해 조심하며 다른 화제를 이야기했지만 결국은 그 문제로 돌아왔다. 진수는 자신의 글을 읽지 않겠다는 민영의 말을 모르는 체할 수 없었다. 민영과의 언쟁 이후로 자신이 쓰는 글의 모든 단어와 문장이 신경 쓰였다. 의심하는 민영의 시선으로 자기 검열이 생겨버렸고, 글쓰기는 악성 변비라도 걸린 것처럼 꽉 막혀버렸다. 두 사람 다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며 눈을 반쯤 흐리게 뜨고 살아가는 건 못 하는 성격이었기에 언쟁은 심해져 갔다.

   “제가 소설 쓰는 사람인데 민영 씨가 제 소설을 읽지 않겠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왜 말이 안 돼요? 전 진수 씨가 소설가라서 좋아하는 게 아닌데요.”

   민영의 대답에 진수는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충격을 받았다. 그는 그녀가 사무실에 출근해 종일 처리하는 업무들에 대해 무지했다. 나도 민영이 회계사라서 좋아하는 건 아니지 않나. 민영이 회계사가 아니라 교사거나 영업사원이거나 파티시에거나 다른 어떤 직업을 가졌더라도 민영은 사랑스러웠을 것이고, 진수는 지금과 다름없이 그녀를 사랑했을 것이다. 민영의 발언도 이런 마음과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일이라는 건 그 사람을 이루는 여러 가지 중의 하나일 뿐이니까.

   그렇지만 평생의 짝이 내 소설을 읽지 않는 것은 정말 괜찮은가? 진수는 자신의 독자들을 생각했다. 앞으로 평생 함께 살을 맞대고 살지만 자신의 글은 읽지 않을 민영보다, 얼굴은 모르지만 자신의 글을 읽는 독자들이 자신의 내밀한 생각을 더 잘 알 것이라고 생각하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민영이 질투를 한다면 소설의 모델 같은 허상이 아니라 내밀한 생각을 더 잘 아는 독자에게 질투해야 맞는 것 아닌가? 진수는 민영에게 소설 속 인물은 질투할 문제가 아니라고 재차 말했다.

   “한번 제가 과거에 있었던 일을 소설로 쓴다고 생각해 봐요. 그럼 진수 씨는 아무렇지도 않을 것 같아요?”

   “그래요. 민영 씨가 소설 쓰기에 대해 몰라서 하는 말이에요. 민영 씨도 소설을 한번 써 봐요. 써보면 알 거예요.”


5


   진수와 민영은 금요일마다 퇴근 후 맥주를 마시고 심야 영화를 보러 가고는 했다. 텅 빈 극장에서 두 사람은 스크린과 좌석 전체를 소유한 기분을 누릴 수 있었다. 민영은 영화가 시작하기 전 두 번 반복해서 나오는 유치한 광고를 보면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을 좋아했다. 진수는 민영과 지난번 다툰 것도 있고 해서 분위기를 풀어 볼 생각으로 영화를 보러 가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민영은 그토록 좋아하는 극장 데이트를 거절하고 이렇게 말했다.

   “오늘은 소설을 좀 써야겠어요.”

   그날 민영은 진수와 함께 카페에 갔다. 작업하는 사람들이 많은 조용한 작업실 분위기의 카페에서 두 사람은 밤 11시가 가깝도록 소설을 썼다. “민영 씨, 안 피곤해요?” 진수의 물음에 민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민영의 눈에서는 빛이 났다. 진수는 그 눈빛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진정으로 소설 쓰는 것에 몰입해 있을 때의 눈빛, 영화 같은 남의 이야기는 조금도 관심 없는 사람의 눈빛이었다.

   그 후로 몇 주간 민영은 진수와의 데이트도 줄이고 집중해서 소설을 썼다. 진수는 맞은편에 앉은 민영을 흘긋 바라보았다. 민영이 모니터를 보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혼자 미소 지었다. 나도 저랬을까. 진수는 불안이 스쳤다. 과연 민영이 소설을 써보고 자신을 더 이해하게 되는 것이 관계에 좋은 것일까.

   그렇게 삼 주를 보내고, 민영이 소설을 보내 줬다. 진수는 파일을 열었다.


   민영의 소설 「하루」 속에는 오래 사귄 대학생 커플 영미와 창욱의 어떤 하루가 아주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영미와 창욱은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부산 출신 남녀다. 영미가 그의 스쿠터 뒷좌석에 타고 산을 넘는 장면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부산 출신인 민영은 진수 앞에서는 사투리를 쓰지 않았는데, 진수는 민영이 가끔 가족들과 통화할 때 튀어나오는 경상도 사투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은 드물게 들을 수 있는 것이라 귀했고, 진수는 민영의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귀엽게 여겼다. 그러나 그 소설에서 경상도 출신인 영미와 창욱은 내내 강한 사투리로 대화를 나눴다. 그것은 진수 자신은 민영과 나눌 수 없는 그들만의 고유한 사랑 표현 방식처럼 느껴졌고, 그래서 질투를 느꼈다.

   창욱은 남성미가 넘치고 모험심이 넘치는 인물이었다. 두 명이 하나의 스쿠터를 타고 산을 넘는 무모한 일, 비 오는 날 캠핑장이 아닌 산속에서 텐트를 치고 자는 일, 이러한 일은 진수라면 누가 경비를 대준대도 하지 않을 일이었다. 진수는 스쿠터 뒷자리에 앉은 민영의 얼굴을 상상했다. 물론 스쿠터 뒷자리에 앉은 건 소설 속의 영미였지만 진수는 어느새 민영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었다. 민영이 쓴 문장에는 영미의 표정이 어떠했는지 구체적인 묘사가 없었지만,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는 민영의 얼굴이 떠올랐다. 자신이 알고 있는 얼굴이 아닌 낯선 얼굴을 한 민영은, 자신 앞에서와는 달리 무모한 행동과 모험을 즐기고, 자신은 잘 듣지 못한 강한 억양의 사투리로 대화했다.

   민영이 그날의 일을 마냥 낭만적으로 묘사한 것은 아니었다. 습하고 끈적한 날씨, 성가시게 꼬이는 산 벌레들······ 그것이 오히려 핍진성을 만들었다. 영미와 창욱은 결국 어둑해져 산을 넘지 못하고 산속에서 텐트를 치고 쉽사리 오지 않는 잠을 청한다. 게다가 잠에 들기 전 비까지 내리기 시작한다. 이 생생한 묘사는 민영의 경험인가. 경험이 아니라면 민영은 왜 이런 장면을 썼을까. 무엇이 진실인가. 경험했으면 자신이 어쩔 것인가. 그 장면을 읽으며 진수는 누워서 텐트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었을 민영을 상상했다. 진수는 물속에 퍼지는 잉크처럼 피어오르는 질투의 감정을 느꼈다. 그는 민영의 연애사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민영의 첫 연인은 같은 대학에서 만난 울산 출신의 경상도 남자였기에 민영의 소설에 등장하는 사투리를 쓰는 부산 남자는 그녀의 첫 연인을 떠올리게 했다. 진수는 축축한 텐트 안에 민영과 그녀의 당시 남자친구 사이에 같이 누웠다. 

   아직 미래에 어떤 일이 펼쳐질지 모르는 이십 대 초반의 영미는 진로를 고민하고 있는 창욱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아주 행복하게 살고 있는 미래의 니한테 물어 봐라. 그럼 미래의 니가 뭐라고 할 것 같노?” 이십 대 초반 청춘들이 고민하는 소설 속 내용은 현재의 진수에게 크게 와 닿진 않았다. 다만 소설 속 영미가 하는 대사들은 영락없이 민영이 할 법한 대사들이었다. 자신은 과거를 돌아보는 사람이 아니라더니, 기억도 가물가물하다더니, 이다지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니······. 카페에 마주 앉아 키보드를 두드릴 때, 뭔가를 떠올리며 미소 짓던 민영의 표정이 떠올랐다. 그건 추억에 젖은 표정이었던가.


   소설을 읽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민영은 소설을 읽은 후 말이 없어진 진수의 반응을 살폈다. 한적한 공원을 통과하다가 진수는 멈춰 서서 민영에게 따져 물었다. 

   “이거, 민영 씨 얘기죠?”

   민영은 네가 어떻게 그런 질문을 하느냐는 표정으로 진수를 바라봤다.

   “그 질문, 제가 진수 씨한테 했을 때 별로라고 하지 않았어요?”

   진수는 민영에게 작가가 경험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소설을 읽는 것은 일차원적인 독서법이라고 강조했었다. 과거에 어느 책방에서 열린 독자와의 대화에서 어떤 사람이 진수에게 그거 전부 자기 얘기죠? 하고 기정사실처럼 묻고는 마구 판단했다는 일화를 들려주면서.

   “이건 나를 괴롭게 할 목적으로 쓴 거잖아요!” 진수가 언성을 높였다.

   “아니에요! 진수 씨를 이해하려는 목적으로 쓴 거죠.” 민영도 언성을 높였다.

   “그래요. 지금 나 구려요! 질투에 올바른 질투가 어디 있어요?” 진수는 얼굴을 붉히며 화를 냈다. 그러자 민영이 정색하고 말했다.

   “진수 씨가 연애할 때 주고받은 편지를 보관하고 있는 것도, 사진을 지우지 않은 것도 다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해서겠죠. 저는요, 과거에 살고 있는 사람하고는 관계가 자신이 없어요.”

   “자신이 없다는 게 대체 무슨 말이에요?”

   민영은 가라앉은 표정으로 대답하지 않았다. 정적이 무겁게 흘렀다. 진수는 덜컥 두려워졌다. 민영을 만나고서는 좀처럼 사로잡히지 않았던 불안한 감정에 휩싸였다. 진수의 입안에서 말이 맴돌았다. ‘지금 설마 헤어지자는 건가요?’ 민영의 침묵은 진수의 마음을 웅크리게 했다. 역시 사람의 마음은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 그렇게 빛나는 미래와 사랑과 행복을 약속했던 입으로 민영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 자신이 없다니. 진수는 배신감이 들었다. 그는 민영을 바라보다가 자신이 실수를 저지를 것 같아 “저, 편의점 다녀올게요!” 하고 뒤돌아서 떠나버렸다.


6


   진수는 심호흡을 하며 격양된 감정을 추슬렀다. 둘이 감정적으로 다투게 되면 각자 따로 편의점에 가서 상대방이 좋아하는 음료를 사오기로 한 게 두 사람이 정해 둔 화해의 방법이었다. 진수는 편의점에서 민영이 좋아하는 젤리 주스를 사 들고 다시 공원으로 돌아갔다. 민영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진수는 인근 편의점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CU에도, GS25에도, 세븐일레븐에도 그녀는 없었다. 민영은 어디냐는 진수의 메시지를 읽지 않았고 전화도 받지 않았다. 진수는 불안해졌다. 그는 연인과 싸우면 대체로 불안해했다. 나에 대한 애정이 식지는 않을까, 날 미워하지는 않을까, 변하지는 않을까, 떠나지는 않을까.

   진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민영과의 만남으로 이전보다 정말 행복해졌지만, 이대로 자신이 영영 글을 쓰지 못하게 된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왜 민영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닌 것을 양자택일의 문제처럼 만드는 것일까? 이것은 일종의 테스트인 걸까? 진수는 익숙한 혼자였던 때로 돌아가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평생 감옥 안에서 살던 사람이 그 생활에 익숙해져 바깥의 자유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사람은 불행마저도 유지하려는 성향이 있다. 차라리 이런 행복을 몰랐다면 좋았을 텐데. 희망을 품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민영이 원망스러웠다.

   진수는 불안했던 과거 연애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는 갈등 상황에서 상처 받기 싫어서 도망쳐버리곤 했다. 민영과 관계가 더 깊어진다면 자신은 회복할수도 없을만큼 더 큰 상처를 받게 되겠지. 그의 불안이 그보다 먼저 튀어 나갔다. 진수는 불쑥 휴대폰에 이렇게 문자를 적었다.

   ‘우리 그냥 헤어지는 게 나을까요?’

   이대로 문자를 전송한다면······ 진수는 집으로 돌아가 ‘내가 모든 걸 망쳐버렸어’라고 후회하면서 눈물 흘리는 모습을 떠올렸다. ‘넌 그게 더 잘 어울려’, ‘넌 그런 행복을 누릴 자격이 없어’라고 자신을 욕하고 혐오하고 웅크리는 모습을. 그는 어서 불행해지자고 자신을 끌어당기는 목소리를 들었다.

   진수는 소설에서처럼 인생에 조력자가 있다면 자신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묻고 싶었다. 그때 그는 마음속에서 민영의 목소리를 들었다.

   “미래의 진수 씨에게 물어 보세요. 그럼 미래의 진수 씨가 뭐라고 할 것 같아요?”

   그는 이전에 그렇게 멈추고 미래를 생각하는 법이 없었다(그는 늘 과거를 돌아보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지금 미래의 관점에서 바라봤다. 이번 고비만 넘기면 앞으로 어떤 삶이 펼쳐지는지, 미래의 자신은 지금을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바라볼지.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민영과 진수 두 사람은 육 개월 뒤에 예정대로 결혼을 한다. 두 사람은 추억이 부동산이나 주식보다 더 삶을 살아가는 데 중요한 자산이라는 데 동의한다. 결혼식 대신 육 개월간 함께 세계 여행을 다녀온 뒤 남은 인생을 살아가기로 한다. 2년 뒤 두 사람의 아이가 세상에 태어난다. 그리고······.’

   갑자기 잠에서 깨어난 듯 진수는 휴대폰에 적었던 문장을 지웠다. 아찔했다. 뒤를 돌아보니 중력과도 비슷하게 느껴지는 관성이라는 놈이 시커먼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모든 걸 망쳐버리고 후회하는 익숙한 자신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진수는 온 힘을 짜내야 했다. 그때 갑자기 휴대폰 알림이 울렸다. 자신은 공원에 있다는 민영의 메시지였다. 그는 빨리 가지 않으면 그녀가 사라지기라도 할 것처럼 민영에게 달려갔다.

   공원에서 만난 민영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진수를 놀라서 바라봤다. “괜찮아요?” 민영은 불안에 빠진 진수의 표정을 살폈다. 진수는 민영이 그에게 주려고 산 바나나 우유를 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진수가 민영을 와락 끌어안았다. 민영이 말없이 진수를 토닥여주었다.

 

7


   60명 규모의 결혼식을 준비하며 청첩장을 전할 명단을 고민하는 일은 지난 인생을 돌아보고 앞으로 인연을 맺고 살 사람들을 떠올리며 인생을 한 번 정리하는 작업이었다. 진수는 5년 넘게 서로 연락이 없던 카톡 친구 1,024명의 목록과 대면했다. 그중에는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를 스쳐 간 학원의 제자들부터, 한 번 중고 거래를 하고 말았을 뿐인 사람들도 있었다. 진수는 청첩장을 전할 사람들을 정하고는 대부분을 친구 목록에서 삭제했다. 그의 목록에는 73명만 남게 되었다.

   진수는 구글 포토에서 지우지 못하고 있던 7천 장의 사진을 전부 선택하고 삭제 버튼을 눌렀다. 외장하드나 다른 곳에도 원본이 없고 클라우드에만 저장된 사진들. 이제 휴지통 비우기를 누르면 돌이킬 수 없었다. 그는 잠시 사진들을 살펴보다가 휴지통 비우기 버튼을 눌렀다.

   그날 밤 진수는 꿈을 꿨다. 마치 애니메이션의 엔딩에서 등장인물 모두와 재회하는 것처럼 헤어진 모든 사람들, 지금은 관계가 망가져 버린 사람들이 나타나서 좋았던 시절처럼 그를 향해 웃었다. 진수는 예식장을 걸었다.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진수와 민영 두 사람의 앞날을 축하해 주었다. 너무 행복해서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그것이 꿈이었다는 사실에 슬픔을 느꼈다. 침대에는 민영이 없었다. 그는 불안하지 않았다. 향긋한 커피 향이 은은하게 느껴졌다. 아직 식은 올리지 않았지만 신혼집으로 마련한 복층 오피스텔에서 함께 산 지 어느덧 한 달째였다. 계단을 내려가니 민영이 커피를 내려 오트 라테를 만들고 있었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니 언제나처럼 기분 좋은 안도감이 들었다.

   그는 민영에게 7천 장의 사진을 지웠다고 말했다. 민영은 반색하며 어떤 기분이 드냐고 물었다. 그는 걱정하던 것처럼 뭔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기분이 들지는 않는다고, 상실감이 크지는 않다고 말했다. 민영은 그를 끌어안았다.

   “걱정하지 말아요, 앞으로 새로운 추억들로 수만 장의 사진을 찍을 거고, 그 사진들은 평생 지울 일이 없을 거예요.”

   민영의 따뜻한 체온이 느껴졌다. 진수는 그녀가 그리는 미래에 언제나 자신이 함께라는 사실을 여실히 느꼈다. 그는 지금까지 과거의 물건을 버리지 않거나 사진을 지우지 않더라도 현재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여겼다. 마치 하드디스크 용량처럼 기존의 파일을 지워야 새로운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이제는 과거를 놓지 않고서 새로운 것을 움켜잡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민영과의 미래와 아이를 생각하자 가끔 과거를 돌아보며 빠져드는 회한마저도 사치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민영 씨, 정말로 해소된 거예요?”

   “네. 진수 씨가 어떻게 글을 쓰는지 알고 나니까 질투가 사라졌어요.”

   민영은 소설을 써본 소감을 말했다. 소설을 쓰면서 전남친을 떠올린 것은 맞지만 그때 무엇을 했는지 정도의 정보일 뿐이었다. 별로 전남친을 향해 뜨거운 감정이 재생되지도 않았고 전남친의 얼굴이 떠오르지도 않았다. 소설을 더 쓰고 싶으냐는 진수의 물음에 민영은 자신은 과거를 곱씹는 것이 재미없어서 더는 못 하겠다고 선언했다. 민영은 진수에게 앞으로 자신의 질투는 걱정하지 말고 검열 없이 글을 쓰라고 했다.

   진수는 민영의 존재가 마치 자신에게 필요한 딱 맞는 퍼즐 조각 같았다. 오랫동안 쌓아 왔던 마음의 벽돌들이 민영이라는 잘 맞는 퍼즐을 만나면서 잘 맞는 테트리스를 맞춘 것처럼 전부 사라지는 걸 느꼈다. 그는 민영을 더 꽉 끌어안았다. 애초부터 둘이었던 것처럼 자신이 혼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 짝만 찾으면 만사형통, 이라는 말들을 떠올렸다. 진수는 파자마 차림으로 민영과 둘이 함께 나오는 사진을 찍었다. 그의 클라우드에 자동으로 새로운 사진이 업로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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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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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09-01
슬픔은 나의 힘

슬픔은 나의 힘 문진영 침대에서 겨우 빠져나와 커튼을 걷자 어슴푸레한 빛이 방 안에 드리운다. 고양이가 천천히 기지개를 켜고는 사뿐히 침대 아래로 뛰어내린다. 나는 거실로 나가 이번에는 소파에 드러눕는다. 고양이는 곧바로 내 가슴 위로 올라와 자리를 잡고 엎드리더니 골골거리기 시작한다. 소리들이 들려온다. 근처 운동장에서 축구하는 아이들의 새된 목소리. 아랫집 세탁기가 웅, 웅, 하고 돌아가는 소리. 지금 나는 평화로운가. 권태로운가. 판단하지 못하겠다. 주영은 두 달째 부재중이다. 어젯밤 주영의 책상 앞에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다가, 한구석에 놓인 일력이 주영이 떠난 날짜에 그대로 멈춰 있는 것을 발견했다. 매일의 날짜와 요일, 그리고 문장 하나가 적혀 있는 일력이었다. 나는 그것을 한 장 한 장 뜯어내기 시작했다. 거기 적힌 문장을 읽고, 종이를 구겨 곧바로 휴지통에 던져 넣었다. 그러다 구기지 못하고 한참 동안 들여다본 문장은 바로 이것이었다: 사람의 탄생은 슬픔의 탄생이다. 장자의 말이라는, 맥락에서 떨어져 나와 덩그러니 놓여 있던 그 문장에 나는 온 마음으로 동의했다. 과연, 나는 한 시절을 사람의 모양을 한 슬픔과 함께 살았으니까. 그렇다면 잔디는? 한때 우리 — 주영과 나 — 는 잔디가 고양이의 몸을 가진 기쁨 그 자체라고 생각했었지. 그런데 아니었다. 잔디도 슬픔이었다. 잔디는 함부로 만지는 걸 싫어했다. 여간해선 울지 않았고 골골거리지도 않았다. 말이 쓸데없이 많고, 내가 움직일 때마다 다리에 몸을 비비고, 시도 때도 없이 꾹꾹이를 하는 이 작은 얼룩 고양이는 아직 이름이 없다. 나는 천천히 녀석을 쓰다듬는다. 따뜻하고, 부드럽다. 너도 슬픔이구나. 너를 슬픔이라고 부를까. * 엄청 웃기는 꿈을 꿨어. 그날 아침 샤워 부스에서 나온 주영이 수건으로 머리를 틀어 올리며 말했다. 그래? 뭐가 웃겼는데? 내 물음에 주영이 기억 안 나, 하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꿈속에서 깔깔 웃다가 잠에서 깼는데, 실제로도 소리 내서 웃고 있었다고 주영은 말했다. 그렇다는 걸 깨닫는 순간 섬뜩했고 기분이 나빴는데, 언제인지도 모르게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고. 그런데 막상 아침에 일어나 보니 불쾌한 기분보다는 그 꿈이 정말로 웃겼다는 것,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정말 진심으로 깔깔 웃었다는 느낌만 남아 있다고 했다. 나는 침대에 누운 채로 천장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음. 내 생각엔 일종의 방어기제 같은데. 네 뇌가 너를 보호······ 주영은 내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헤어드라이어의 전원을 켰다. 내 말끝은 드라이어의 소음 속으로 순식간에 휘말려 들어갔다. 듣기 싫다는 뜻. 주영은 내가 그냥 그렇구나, 하면 되는 일에 꼭 의견을 덧붙이고 가르치려 든다고 힐난하곤 했다. 나도 그게 좋지 않은 버릇이라는 걸 알았지만 잘 고쳐지지

  • 관리자
  • 2024-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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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건

  • 홍두소
    최고에요

    過去 心 不可得 現在 心 不可得 未來 心 不可得

    • 2024-06-27 13:57:10
    홍두소
    최고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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