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가 시작된다
- 작성일 2024-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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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가 시작된다
김본
대관령에 간다는 건 여름휴가가 시작된다는 뜻이었다. 언니와 원규 오빠는 스키 동호회에서 만났다. 겨울이면 두 사람은 스키를 타러 대관령에 갔고, 연애를 시작하면서부터는 여름에도 가기 시작했다. 결혼 후에는 아예 연례행사로 자리 잡았다. 원규 오빠의 회사 일정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긴 했지만, 대체로 7월 마지막 주면 휴가가 시작되었다.
휴가 전주에 원규 오빠는 내게 전화를 걸어 언니네 집에서 하룻밤 자고 가지 않겠냐고 물었다. 평창까지는 자기 차로 함께 가자고. 사실상 그건 제안이라기보다는 확인에 가까웠다. 오빠가 전화하기 전부터 나는 기차표를 예매해둔 상태였다.
슬기가 너 바꿔 달라고 난리다.
슬기는 막 네 살이 된 나의 조카였다. 그렇게 말하면서 오빠는 난처하게 웃었다. 진정으로 곤란하다기보다 즐거움에서 비롯된 웃음이었다.
내가 슬기와 통화하는 동안 오빠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슬기를 안아 올려 무릎에 앉힌 채로 기다릴까. 아니면 슬기의 귀에 휴대전화를 대주고 있으려나.
평창으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한산했다. 오빠는 반쯤 장난으로 내 운전에 훈수를 두었다. 오빠, 나도 면허 있어. 내가 응수하자 오빠가 그럼 다음번에는 운전해서 오라고 했다.
세대 등록 해놔야겠다.
고속도로를 달리며 나는 상상했다. 다음번을. 오빠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 차를 끌고 입장하는 모습을. 누구도 나를 막아서지 않고, 내가 그곳의 세대원이 아니라는 걸 의심하지 않는 상황을.
제한 속도를 초과했다는 알람이 울렸다. 나는 서서히 속도를 줄였다. 내비게이션 화면에 뜬 숫자가 조금씩 줄어들었다.
평창에 가까워지자 안개가 자욱했다. 눈앞의 거리를 가늠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날이 저물기 전에 서두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7백 미터 방면 평창IC라고 적힌 표지판을 막 지나쳤을 때, 계기판에 타이어 공기압이 낮다는 경고문구가 떴다.
급하게 차를 갓길에 세우고 살펴보았지만 육안으로는 구별이 가지 않았다. 오빠는 뒷좌석에 앉은 슬기를 안심시켰다. 실 구멍인가 보다. 운전석 쪽으로 빙 돌아온 오빠가 말했다.
여분 타이어 챙겨올걸. 큰집에 있으려나?
오빠가 말하는 큰집이란 이모의 집이었다. 그뿐 아니라 오빠는 연구소에서 제공해 준 숙소 ― 오빠가 슬기와 함께 사는 아파트 ― 도 언니네 집, 이라고 불렀다. 마치 그곳이 언니의 소유이고 오빠와 슬기가 잠시간 얹혀사는 것처럼.
이모에게 도움을 요청할 생각인가 싶어서 잠시 긴장했다. 그러나 오빠는 보험사에 연락할 테니 차에 들어가 있으라고 했다. 나는 멍청한 얼굴로 돌아와 운전석 문을 닫았다. 뒷자리에서 슬기가 잠금장치를 잠갔다 풀었다 장난을 쳤다. 출발하기 전 전체 잠금을 설정해 놓아서 위험하지는 않았지만, 신경에 거슬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문득 뒷좌석 문이 벌컥 열리면서 고속도로 한복판에 슬기가 쏟아지는 상상을 했다.
이모, 밝은데 어두워.
도로 양쪽으로 솟아오른 산 주위가 뿌옜다. 안개 때문에 그래. 내가 속삭였다. 안개가 뭐야? 슬기가 물었다. 나는 조금씩 가까워지는 것 같은 희뿌연 지평선을 가리켰다. 앞이 안 보이는 거.
앞이 안 보여······ 슬기가 내 말을 따라 하다가 대뜸 웃음을 터뜨렸다.
안개가 보여.
뭐가 그렇게 웃긴지 슬기는 자꾸만 앞이 안 보여, 안개가 보여, 했다. 허리춤에 손을 얹고 통화 중인 오빠의 뒷모습이 보였다. 오빠의 목소리가 자동차 밖에서 먹먹하게 들려왔다.
이모를 방문하는 건 언제나 명절 하루 전이었다. 언니의 결혼 이후에는 방문하는 인원이 늘어났다는 점만 달랐다. 지금도 명절 당일이 되면 나는 서울로 먼저 돌아왔고, 언니와 이모는 본가로 이동했다. 언니의 친가에서 아직까지 당일에 제사를 지내기 때문이었다 ― 원규 오빠의 집안은 제사를 치르지 않았다 ― 이모에게는 시댁이었고, 나에게는 어느 곳도 아닌 집안이었다.
처음 몇 해는 나도 그 집에 따라갔다. 언니의 할머니는 각진 턱과 고집스럽게 쳐진 입매를 가진 사람이었다. 뒷짐을 지고 내려다보는 통에 내 시야에는 꽉 다문 턱밖에 보이지 않았다. 턱 근육이 호두처럼 오돌토돌하게 솟아 있었다. 금방이라도 말려 들어갈 것처럼 얇은 입술에 무수히 많은 세로줄이 그어져 있었다. 그 선들은 인중의 주름으로 이어졌다. 마치 할머니라는 사람이 거쳐 온 세월 동안 결코 양보하지 않은 것들이 똘똘 뭉쳐 형성한 것 같았다. 꾹 다물려 있던 주름이 꿈틀거리며 움직였다.
이 애가 그 애냐.
이모가 그렇다고 대답하며 내 어깨를 감쌌다. 나를 지켜주려 했다기보다 방패로 삼은 것에 가까웠을 거다. 할머니는 다시 입을 꾹 다물고 나를 내려다보다가, 이내 등을 돌리고 멀어졌다.
이모가 그제야 둘렀던 팔을 풀자, 언니가 곧장 내게 팔짱을 꼈다. 우리 할머니 찌짐 짱 맛있다? 언니가 쾌활하게 조잘거리며 나를 집 쪽으로 이끌었다.
그 집은 1층짜리 목조주택으로, 현관이 기억 자로 돌출된 구조였다. 그런 탓에 밖에서 보고 있으면 집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다른 세계로 이동하듯 감쪽같이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현관에 들어서면 집의 내부와 외부를 구분하는 중문이 하나 더 있었다. 중문에 달린 반투명 유리창은 내부를 짐작할 수 없게 했다. 언니가 방문하는 날이면 할머니는 언제나 두 개의 문을 활짝 열어 놓았다.
언니와 내가 자란 집은 그 집과 정반대였다. 다세대 빌라와 다를 바 없는 아파트였는데, 할머니의 집과 공통점이라면 엘리베이터가 없다는 것 정도였다. 처음으로 그 집에 가게 되었던 날, 나는 몸통만 한 배낭을 메고 꼭대기 층까지 걸어 올라갔다. 겨우 문 앞에 도착해서는 잠시 숨을 골라야 했다. 초인종이 내 머리보다 위쪽에 있어서 뒤꿈치를 한계까지 들고 팔을 뻗었다. 중지와 검지에 초인종이 아슬아슬하게 닿자마자 문이 벌컥 열렸다.
어, 왔니?
하마터면 이마를 부딪칠 뻔한 나는 숨을 헐떡이며 몇 걸음 물러났다. 이모는 그런 나를 가만히 보다가, 이윽고 이렇게 말했다.
너구나.
이모의 표정은 나를 기다린 것도 같고, 갑작스러워하는 것 같기도 했다. 어느 쪽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이모가 문 쪽으로 찰싹 붙어 내가 들어갈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현관에 신발이 어색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뒤꿈치가 구겨지고 주름진 운동화 두 켤레 ― 알록달록한 벨크로가 달린 쪽이 아동용 같았는데 크기는 엇비슷해 보였다 ― 와 내게는 좀 커 보이는 흰색 실내화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신발장 쪽에 놓인 성인용 남성 구두는 사용감이 적어 보였다.
등 뒤로 문이 닫히고 나서야 나는 내가 서 있는 공간의 비좁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당시 나는 평균에 훨씬 못 미치는 체구였는데도 그저 서 있는 것만으로 현관이 꽉 찼다.
지금 생각해 보면 현관이 집의 일부인 게 아니라 그 집 전체가 조금 넓은 현관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좁고, 버리기는 아깝고 보관하기는 애매한 물건들이 현관 근처에 쌓여 있었다. 이모부의 대학 전공 서적, 결코 펼쳐 보지 않으면서도 고집스럽게 버리지 않는 저학년 교과서, 언니가 어릴 때 입던 옷 ― 언니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이미 165센티를 넘어서서 한두 해 전만 해도 맞던 옷이 금방 무용지물이 되었다 ― 겨울에 보관하던 여름옷과 여름에 보관하던 겨울옷.
나는 꿈지럭거리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어리둥절할 정도로 곧바로 생활공간이 펼쳐졌다. 거실에서 한 걸음 떼기도 전에 훌쩍 부엌이었다. 싱크대는 방금 정리한 것처럼 깔끔했지만 식탁 위에 놓인 대접에 우편물이 무분별하게 쌓여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현관처럼 나름 치워 보았으나 청소 도중에 한계를 느낀 것 같았다.
복도 끝에 방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이모가 얼른 나와서 인사해, 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문이 벌컥 열렸다. 얼굴은 동그랗고 앳됐는데, 허리와 다리가 길어서 성장하는 중이란 티를 내는 어색한 몸뚱이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짧은 복도를 서너 걸음 만에 걸어온 언니가 나를 내려다보며 씩 웃었다.
안녕.
나는 들릴락 말락 한 목소리로 안녕, 했다. 뭐라구? 안 들려. 언니가 허리를 숙이고 귀를 갖다 댔다. 나는 움츠러들었다.
장난이야.
언니가 내 팔뚝을 때렸다 ― 살짝 꼬집은 것 같기도 했는데 너무 찰나라 확실하지 않았다 ― 목소리에 비꼬는 기색은 없었다. 마룻바닥과 현관의 단차도 있었지만, 실제로 언니는 나보다 머리 하나는 컸다. 고개를 푹 숙이자 까무잡잡하고 마른 다리에 불뚝 튀어나온 뼈마디가 보였다. 발가락이 외계인처럼 길었다.
내 방 구경시켜 줄게.
언니가 내 팔을 덥석 잡아끌었다. 그 손길이 너무 서슴없어서 차마 놀라지도 못했다. 나는 바퀴 달린 수레나 가벼운 이불처럼 저항감 없이 끌려갔다. 뒤꿈치부터 내리찍는 발걸음 ― 그 집에 사는 내내 아래층의 불만을 들어야 했다 ― 을 내딛다 말고 멈춰 선 언니가 빙글 돌아섰다.
아니지. 우리 방이지, 이제는.
언니가 웃자 입매가 시원하게 찢어졌다. 그 덕에 핏기 없는 입술에도 생기가 돌아 보였다. 입술이 작고 오므린 모양이라 무표정으로 있으면 좀 옹졸해 보이는 이모와는 딴판이었다 ― 게다가 이모는 잘 웃지도 않았다 ― 아무래도 이모보다는 이모부를 닮은 모양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았다.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부터는 명절에도 할머니 집에 가지 않고 남았다. 언니는 함께 가자고 졸랐지만 이모는 별다른 반대를 하지 않았다. 나는 독서실을 끊어 놓아서 안 된다고 둘러댔다. 언니도 함께 다니던 독서실이었지만, 그런 성의 없는 변명에도 넘어갈 정도로 유혹은 형식적이었을 것이다. 언니가 설득을 포기하고 떠나고 나면, 나는 이모도 언니도 없는 빈집에서 기다렸다.
기다렸다. 나는 그 말을 뱉어 놓고 생각한다. 내가 무엇을 기다렸단 말인가? 언니와 이모가 돌아오기를? 그 집에서 나가는 날을? 아니면 그 집에 영원히 머물기를 기다렸나?
아직까지도 정확히 모르겠다. 확실한 건 내가 언니도 이모도 이모부도 없는 그 집에서 잠자코 기다렸다는 사실이다. 무엇을 기다리는지도 모른 채 홀로.
원규 오빠와 결혼하기 전 언니에게는 오래 사귄 남자친구가 있었다. 언니와는 동급생으로 고등학교 때부터 사귀던 사이였다. 나는 두 사람과 자주 어울렸다. 어울렸다고 해서 대단한 일을 하는 건 아니었고, 고작 해봐야 셋이 하교하는 게 전부였다. 언니는 남자친구에게 나를 동생이라고 소개했다. 누가 물어 보면 나는 사촌지간이라고 대답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언니와 나는 종례가 먼저 끝나는 쪽이 서로의 교실로 찾아갔다. 이따금 교실에 언니가 없기도 했다. 주로 시험이 끝나고 친구들과 놀러 나갈 때 그랬다. 그렇지만 평상시에는 늘 나와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언니의 남자친구는 교문에서 우리를 기다렸다. 정확히 말하면 언니를 기다리는 거였지만 나의 합류도 익숙하게 받아들였다. 이따금 언니의 기분이나 일정에 따라 두 사람만의 시간을 보내러 가기도 했지만,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니었다.
한번은 하굣길에 셋이서 슈퍼에 들렀던 적이 있다. 주인아저씨 혼자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그날은 처음 보는 할머니가 계산대를 지키고 있었다. 언니의 남자친구가 안쪽 매대를 둘러보는 동안, 언니는 껌과 과자를 골라 계산대에 올렸다. 할머니는 언니가 건네는 지폐를 받으면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이쪽이 언닌가?
나는 질문의 의도를 곧바로 헤아리지 못하고 멀뚱히 있었다. 언니가 별안간 웃음을 터뜨렸다.
제가 언니예요. 키도 훨씬 크잖아요.
하이고, 그러냐. 목청도 크다.
그럼 있잖아요, 할머니.
언니는 마침 계산대로 다가오는 남자친구를 가리켰다.
얘는 누구 남자친구 같아요?
할머니는 눈을 가늘게 뜨고 언니와 나, 언니의 남자친구를 차례로 훑어보았다. 그러고는 잠시 후 느릿느릿한 손길로 내 손바닥에 동전을 떨어뜨렸다. 나는 거스름돈을 소중히 쥐고 슈퍼를 나왔다.
저 할머니 웃긴다.
껌 상자를 탈탈 털자 언니의 넓적한 손바닥 위로 환약처럼 생긴 보라색 껌이 떨어졌다. 그것을 남자친구에게 한 알, 나에게 한 알을 나눠주었다.
주인 바뀌었나?
주인아저씨 엄마 아니야? 아니면 누나거나.
누나라기엔 좀.
나는 할머니가 주인아저씨와 어떤 관계일까 생각했다. 아무래도 어머니인 쪽이 가장 유력해 보였다. 이모거나, 일찍 손주를 본 할머니일 수도 있었다. 아니면 잠시 가게를 맡아 주었을 뿐인 동네 주민이거나. 부적절한 관계였을 수도 있지만 ― 당시 나는 불륜이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내는 걸 껄끄러워했다 ― 그보다는 가족이라고 상상하는 편이 좋았다.
언니는 남은 껌을 한 번에 털어먹었다. 나도 똑같이 했는데, 껌이 너무 작아서 그만 놓치고 말았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 껌이 아스팔트 위를 굴러가다 멈췄다.
나는 이제 그 오빠의 이름은 완전히 잊어버렸다. 두 사람은 성인이 되어서도 꽤 오래 만났다. 그래서 언니가 원규 오빠와 결혼하겠다고 통보했을 때, 나는 놀랐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언니가 잠시 방황하고 있을 뿐이라고, 언제고 다시 그 오빠를 만나 결혼할 거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 오빠의 존재를 떠올린 건 슬기의 현장 체험학습에 대해 의논하던 도중이었다. 그 즈음 현장 체험학습 장소가 유원지로 정해졌다. 슬기는 원규 오빠가 근무하는 연구소 부속유치원에 다니고 있었는데, 연구소 직원 중 일부가 체험학습에 동행하겠다며 연차를 냈다. 부부가 연구소에 재직 중인 경우에는 대부분 엄마 쪽이 따라간다고 했다. 오빠도 따라가야 하는지 고민된다기에 나는 그럴 필요까지 있냐며 말렸다.
유원지면 롯데월드보다 작은 규모일 텐데.
롯데월드를 안 가봐서 모르겠다.
오빠의 말에 내가 황당한 웃음을 터뜨렸다.
뭔 소리야. 오빠 나랑 갔었잖아.
슬기의 얼굴에 묻은 음식물을 닦아 주다 말고 오빠가 고개를 들었다.
내가?
왜, 나 수능 끝난 기념으로 은해 오빠가······.
나는 그제야 언니의 전 남자친구 이름을 기억해 냈다. 어떻게 잊을 수 있었을까? 언니의 인생에서 더는 중요한 사람이 아니게 되자마자 어떻게 그렇게 가차 없이 기억에서 지워버릴 수 있었을까?
수능이 끝난 뒤 언니는 롯데월드에 데려가 주겠다며 나를 서울로 불러냈다. 나는 교복 차림으로 열차에 탔다. 더는 학교도 가지 않는데 순전히 언니가 혼자는 창피하다고 해서 입은 거였다. 손에는 세탁소에서 찾아온 그대로 비닐을 씌운 언니의 교복을 들고 있었다.
서울역에 도착하자 언니가 남자친구와 기다리고 있었다. 언니는 기차역 화장실에서 교복으로 갈아입었다. 화장실 칸 안에 흰색 철제 옷걸이를 걸어 둔 걸 깜빡해서 되돌아갔던 게 생각난다. 막상 챙겨 나왔더니 거추장스럽기만 해서 언니의 남자친구가 힘을 주어 구겨 접었다.
그걸 쓰레기로 꽉 찬 지하철 쓰레기통 옆에 버린 것까지는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 오빠의 얼굴, 나와 거의 매일 하교하고 한동안 친밀하게 지냈던 얼굴은 기억나질 않는다. 기억 속의 얼굴은 달걀귀신처럼 텅 비어 있다.
원규 오빠는 빙그레 미소를 띠고 내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텅 빈 이목구비에 원규 오빠의 얼굴을 넣어 상상해 보았다. 어렵지 않았다. 원래부터 그게 맞는 거 같았다.
내가 언니 집에서 살게 된 건 나의 부모가 이혼하면서 양측 모두 나에 대한 양육권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둘 사이의 법적 공방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누군가와 헤어지기 위해 그렇게나 많은 단계와 증명이 필요하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 이별이 단순히 마음의 문제였다면 쉬웠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재산 분할과 가정 기여도 그리고 지난한 합의 과정······ 거기에 내가 있었다. 마음의 영역이 아니라 소유의 영역에.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가정법원에 딸린 놀이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간간이 나와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이 오가긴 했지만 대체로 나는 혼자였다. 그곳에는 멀쩡한 장난감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나는 낡은 나무 블록을 가지고 놀았다. 그걸 ‘놀았다’고 표현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나는 그것들을 던지고 쌓고 무너뜨리기도 했지만 그 행위로부터 유희를 느끼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닳아서 매끈해진 블록 모서리를 만지작거리며 보냈다.
더는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낼 수 없단 걸 깨달은 뒤로 무료하게 블록을 굴리고 있었다. 그때 한 여자가 놀이방 문을 열고 들어왔다. 굽 낮은 검정 구두를 벗어두고, 그녀가 스타킹 신은 발을 내딛어 푹신한 타일 위를 걸어왔다. 내 앞에 쪼그리고 앉은 여자는 짐짓 친절한 투로 ― 그렇지만 그런 친절을 베푸는 것 자체가 익숙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 내게 엄마와 아빠 중 누구와 살고 싶냐고 물었다.
살면서 그런 질문을 받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판사의 나지막하고 조심스러운 질문을 받은 순간 나는 짐작했다. 엄마와 아빠 둘 중 누구와도 살 수 없다는 걸.
그래서 나는 그 문제에 관심 없는 척, 이미 흥미가 떨어질 대로 떨어진 블록 쌓기에 열중하는 시늉을 했다. 편협한 상상력으로 생각해 낼 수 있는 건 죄다 시도해 본 후였기 때문에 내 행위는 헛손질에 가까웠다.
여자는 나를 재촉하지 않고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한참 후 나는 기껏 쌓은 블록의 허리를 손날로 쳐서 단번에 무너뜨렸다. 그리고 누구와도 살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언니의 집으로 보내진 데 그날 내 대답이나 의중 같은 것이 영향을 끼쳤으리라고는 믿지 않는다. 내게 질문한 여자는 아마도 나의 부모를 설득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타협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나는 가장 가까운 친척에게로 전달되었다. 환불하기도 귀찮은 싸구려 택배처럼. 시킨 적 없는 수취인 불명의 소포처럼.
이전까지 나는 언니의 존재에 대해 알지 못했다 ― 그건 언니도 마찬가지였겠지만 ― 그러니 언니와 이모를 위한 24평짜리 아파트가 보금자리처럼 느껴질 일도 없었다.
자라는 동안 편의상 ‘우리 집’이라고 부르긴 했어도 거긴 엄연히 언니 집이었다. 언니의 방, 언니의 침대, 언니의 이불, 언니의 학용품과 책들, 그리고 언니의 부모. 언니의 방에는 언니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모와 이모부가 머리를 맞대고 고심해서 고른 물건들이 가득했다. 언니는 가구가 낡고 볼품없다며 투정을 부렸지만, 그것들은 오로지 언니의 탄생과 성장을 축하하기 위해서 준비된 것들이었다.
안방은 이모가 홀로 사용했고, 서재는 이모부가 칠레로 출장을 가 있는 동안 ― 그러니까 사실상 내가 거기에 머물던 세월 내내 ― 창고로 쓰였다. 애당초 나는 창고 방에서 머물 계획이었다. 하지만 언니가 나와 방을 함께 쓰겠다고 우겼다. 이모는 두 명이 잘 새 침대를 사야 한다는 언니의 주장을 가뿐히 무시하고 백화점에서 접이식 토퍼와 차렵이불을 사왔다. 토퍼는 도톰했고 이불은 푹신했다.
언니는 한동안 새 침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그렇지만 정작 밤이 되면 내가 침대 위로 올라가거나, 언니가 바닥으로 내려와 붙어 자는 날이 더 많았다. 어두운 밤, 언니와 바닥에 누워 있으면 침대 다리에 뭔가 붙어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그건 이름표였다. 이부자리를 펼치고 정돈할 때마다 내게는 그걸 구경할 기회가 있었다. 문구점에서 대량으로 파는 파란색 견출지에는 내가 모르는 필체로 언니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물건을 자주 잃어버리는 언니를 위해 이모부가 해준 건데, 이모부가 칠레로 떠나고 언니가 나이가 들어서도 그 습관은 줄곧 이어졌다.
그런 식으로 집 안 곳곳에 언니의 이름이 있었다. 교과서와 공책과 필통과 뒤꿈치가 닿는 실내화 안쪽에. 언니의 이름 옆에는 체리가 올라간 칵테일이나 토끼와 곰돌이 따위가 그려져 있었다.
더러는 이름표 대신 자수가 새겨져 있기도 했다. 언니 집에서 살게 된 지 얼마 안 됐을 무렵, 이모가 언니에게 작아진 옷을 내게 입힌 적이 있었다. 어깨에 딱딱한 질감이 느껴져 살펴보니, 소매에 노란색 실이 촘촘히 박음질 되어 있었다. 무심코 그것을 만지작거리다가 소매 끝을 뒤집었다. 실이 어수선하게 엉켜 있었는데도 언니의 이름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 옷을 입을 때면 언니의 이름이 안 보이도록 소매를 두 번 접었다. 하지만 언니와 나의 체형이 워낙 다르기도 했고, 교복을 입으면서부터 서로의 옷을 빌려 입는 일은 잘 일어나지 않았다.
언젠가 슬기의 필통에서도 이름표를 발견했다. 뚜껑을 여닫을 때마다 떨어지지 않도록 투명 테이프로 고정까지 해놓은 모양새가 꽤나 야무졌다. 내가 필통을 살피는 걸 보고 슬기가 의기양양한 투로 말했다.
내 꺼라는 표시.
이름표에 적힌 필체는 슬기의 것이라기에는 다소 어른스러웠다.
유치원 선생님이 해줬어?
아니, 아빠가.
슬기가 생글거리며 나를 잡아끌었다. 슬기의 손은 아직 너무 작아서 내 손가락 두 개로도 꽉 찼다. 거실로 나온 슬기는 온 힘을 다해 티브이를 당겨 뒷면을 보여주었다. 가려진 곳에 이름표가 있었다. 기다란 연잎 그림 안에 날렵한 필체가 적혀 있었다. 안슬기. 연잎 끝에는 개구리가 쪼그려 앉아 있었다.
여기도 있어. 슬기가 이번에는 거실 탁자 아래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그 옆에 쪼그려 눕자 탁자 아래 붙어 있는 이름표가 보였다. 손을 뻗어 슬기의 이름을 문질렀다. 집 안 구석구석에 압류장처럼 슬기의 이름이 붙어 있었다.
이거 다 슬기 꺼야.
나에게만 알려준다는 듯, 슬기가 웅크린 채로 자랑스럽게 속닥거렸다. 마치 대단한 비밀을 공유하는 사이라도 된 것처럼.
아예 이마에도 붙이고 다니지 그러냐? 내가 이마를 콕 찌르자 슬기가 웃음인지 비명인지 모를 소리를 내며 자지러졌다.
롯데월드에 다녀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언니의 집을 나왔다. 대학에 진학하면서 기숙사 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런 걸 자립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건 대단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언니와 내가 차례로 떠나고, 이모부가 한국에 들어오는 빈도도 점차 줄면서 그곳은 비로소 이모의 집이 되었다. 그때쯤 이모부의 출장은 더 이상 단기 체류가 아니었다. 이모부는 언니의 생일이나 구정 때만 한국에 들어왔다가 금방 돌아가곤 했다. 그마저도 언니가 성인이 되고부터는 끊겼다. 그래도 언니와는 종종 연락을 나누는 모양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가 되어서야 이모부의 부재가 이모와의 불화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 문제에 대해 나는 전혀 짐작하지 못하는 체했다. 내가 모른 척했다는 사실을 언니도 알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언니와 사는 동안, 아니 언니가 살아 있는 동안 우리는 이모와 이모부의 관계에 대해 논의한 적이 없었다.
나는 그런 걸 묻는 게 주제넘은 참견이라고 생각했다. 그 집에 살 수 있었던 이유가 이모부의 부재 덕분이라고 생각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모부가 돌아와 함께 사는 건 이모뿐 아니라 나에게도 부담이었다. 나의 부모가 지급했을 소소한 수준의 양육비를 제외하면 나를 키운 건 이모부의 원조였다는 걸 어렴풋이 알고 있었으니까. 돌이켜 보면 나와 이모, 언니를 이어 주는 건 보이지도 않는 핏줄 같은 게 아니라 남이나 다름없는 존재에게 빌붙어 산다는 굴욕감이었던 것 같다.
언니가 죽었을 때, 이모부는 장례식에 오지 않았다. 상주는 원규 오빠였고, 나와 이모는 사흘 동안 장례식장에 머무르며 오빠가 씻거나 쪽잠을 자러 갈 때마다 교대했다.
장례를 마치고 이모는 아파트를 처분했다. 그리고 곧장 평창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평창에 살면서부터 이모는 본가에 가지 않았다. 매년 올리던 제사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언니의 유해는 화장시켜 이모의 새집 근처 납골당에 안치했다.
그런 관계였지만 이모는 끝끝내 이모부와 이혼하지 않았다. 내가 알기로 두 사람은 여전히 법적으로 부부 관계였다. 의외로 서류 외에 부부임을 입증해 주는 건 집 안의 가전제품이었다. 이모부가 근무하던 반도체 회사의 규모가 상당해서 다양한 계열사로부터 생필품을 구할 수 있었다. 냉장고와 김치냉장고, 세탁기와 컴퓨터, 티브이까지 대부분의 가전제품은 임직원 할인을 받아 장만한 거였다. 최신 가전은 아니었지만 성인 한 명과 아이 둘이 사는 집에는 과분한 규모와 가짓수였다. 그러나 수많은 계열사 중 가구점은 없었기 때문에 언니가 원했던 침대는 끝끝내 얻을 수 없었다.
보복성이 다분한 이모의 수집벽에 의외의 혜택을 받은 건 다름 아닌 나였다. 계열사 중에 가구점은 없었지만 출판사가 있었던 것이다. 이모는 거기서 분기별로 전집을 구매했다. 그 전집이 순전히 나를 위한 게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이모가 편애를 했다는 건 아니다. 당연히 친자식을 더 아꼈겠지만, 적어도 내가 실감할 정도로 언니와 나를 차별하지는 않았다. 이모는 내게 최선을 다했고 ― 정성을 다했는지는 모르겠다 ― 나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모가 그보다 더 잘할 수는 없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모는 내게 그렇게까지 잘할 필요는 없었다.
언니가 독서에 영 흥미가 없었던 덕에 나는 학창 시절 내내 원 없이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읽고 싶은 게 있으면 언니가 이모에게 대신 요구해주기도 했다. 내가 이모가 사준 책의 줄거리를 설명해 주면, 언니는 잠자코 듣고 있다가 나중에 읽은 체했다. 그렇게 쓴 독후감으로 교내글짓기대회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 나는 그것이 억울하지 않았다. 학년이 다르니 문제 될 것도 없었다. 게다가 그 책을 구해다 준 건 언니니까, 언니의 수상까지도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내가 언니 좋은 일만 한 건 아니었다. 입체도면과 블록 쌓기에 젬병인 나를 위해 언니가 수학 익힘책의 블록 쌓기 문제를 전부 풀어 주었던 거다. 나는 그런 상부상조가 일종의 교환이라고 생각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고부터 그런 일은 없었지만, 언니는 여전히 언어에 약했고 나는 함수 그래프를 영영 이해하지 못했다.
나중에는 전집이 너무 많아져서 보관하는 데 애를 먹었다. 그렇지 않아도 협소한 공간 대비 짐이 많은데, 책꽂이에 책을 욱여넣고 겹겹이 쌓고도 자리가 부족했다. 결국 언니가 자취를 하게 되었을 때 큰맘 먹고 대청소를 했다.
후회 안 하겠어?
내가 언니에게 물었다. 언제는 그 책들을 읽었던 것처럼. 언니는 손사래를 치며 필요한 거 있으면 너나 챙기라고 했다.
나는 별 기대 없이 빨간 노끈으로 묶어 놓은 책 더미를 살펴보았다. 그중에서 새것이나 다름없는 문제집 ― 주로 언어 영역이었다 ― 몇 권을 건졌다. 그러다가 책 무덤 사이에서 그 책을 발견했다.
그건 내가 살기 전부터 언니의 집에 있던 책이었다. 초등학교 저학년을 대상으로 한 창작 동화 전집 중 한 권으로, 제목은 『안개가 시작되는 곳』이었다. 동화의 주인공은 성별이 불분명하고 다소 우울한 생김새의 아이였다. 아이의 팔뚝에는 붉은 실이 새겨져 있었다. 붉은 실로 꿰맨 자리는 아프지도 않고 가렵지도 않았다. 글자나 무늬처럼 알아볼 수 있는 모양이 아니었다. 당연히 의미도 규칙도 없었다.
비 내리는 어느 날, 아이는 붉은 실을 풀어 줄 사람을 찾아 나선다. 연못을 배회하며 민물고기와 개구리, 곤충들을 만나 붉은 실에 대해 물어 보지만 누구도 시원하게 대답해 주지 못한다. 온종일 돌아다니느라 지친 아이 앞에 종달새가 나타나 숲으로 가보라고 조언한다. 어쩌면 붉은 실을 풀지 못한데도,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을 거라고. 그리하여 아이는 숲으로 가기로 한다. 숲을 감싼 안개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여주며 동화는 끝이 난다.
어린아이가 읽기에는 좀 찝찝한 결말이었지만 나는 그 책을 좋아했다. 그래서 중학생이 되어서도,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틈날 때마다 꺼내 읽었다.
언니는 다른 전집과 마찬가지로 그 책에 아무런 관심이 없없다. 나는 빨간 노끈을 잡아당겨 헐거워진 틈으로 책을 빼냈다. 그리고 깨끗하게 비운 책장에 다시 꽂아 두었다.
그날 오후 이모는 언니가 내놓은 책을 전부 내다버렸다. 아깝지 않았다. 언니는 속이 후련하다고 했다.
원규 오빠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건 기숙사가 단수되는 바람에 언니의 자취방에 신세를 질 때였다. 나는 본래 누가 시키지 않아도 방학이면 기숙사에 머물렀지만 그런 상황은 불가피했다.
씻고 나오자 언니는 침대에 누워 있고, 바닥에는 여름용 이불이 두 겹 깔려 있었다 ― 허리가 배기지 않도록 배려해 준 모양이었지만 직접 누워 본 결과 큰 차이는 없었다 ― 불 꺼 줘? 내가 스위치에 손을 대고 언니의 지시를 기다렸다. 언니는 음, 하고 뜸을 들였다. 언니가 망설이는 건 곧바로 긍정하기 싫어서 선택을 유예할 때뿐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더는 재촉하지 않고 전원을 내렸다.
방 안이 순식간에 캄캄해졌다. 나는 엉금엉금 기어가 이불 위에 누웠다. 언니의 침대는 어릴 때 쓰던 것과 달리 아래가 서랍장으로 막혀 있었다. 침대 위에서 언니가 야, 하고 불렀다. 고개를 들자 언니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재밌는 얘기 해줄까.
언니가 옆으로 꾸물꾸물 움직이더니 이불 위를 팡팡 쳤다. 언니가 움직여서 생긴 공간만큼이 딱 내 자리였다. 나는 침대 끝에 걸터앉았다.
오늘 동호회 사람들 만났거든?
그즈음 언니는 오래 만나 온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만나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완전한 이별을 맞이한 상태였다. 이별의 여파를 잊으려는 듯 언니는 여러 사람들과 어울렸다.
거기에 내가 예전에 좀 관심 가졌던 사람이 있단 말이야.
예전에 언제?
그냥 예전에. 근데 그땐 내가 남친이 있었고, 걔도 만나는 사람 있었어.
얼마나 만났는데?
몰라. 4년인가 5년인가 사귀었다고 그랬는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오늘 갔더니 마침 걔도 헤어졌다는 거야.
언니가 머리를 괴며 옆으로 누웠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나를 올려다보게 되었다.
근데 사람들 다 담배 피우러 나가고 우리 둘만 남았을 때 걔가 갑자기 이러는 거야.
언니가 씩 웃자 어둠에 파묻혀 있던 눈이 빛났다. 언니의 말투에는 뭔가를 공모하듯, 심각한 장난의 실체를 밝히기 직전의 웃음기가 배어 있었다.
그때 서로 만나는 사람 없었으면, 어쩌면 나랑 잘 됐을지도 모르겠다고······ 쭉 그렇게 생각해 왔다고.
거기서 언니는 멈췄다. 내 반응을 살피는 것도 같았는데 어두워서 판단이 서질 않았다.
그래서?
뭐가 그래서야?
그래서 뭐라고 했냐고.
뭐라고 했냐고?
언니가 다시 정자세로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한참을 말이 없었다. 잠들었나, 할 때쯤 언니가 말했다.
그냥······ 못 알아듣는 척했지.
그게 끝이야?
끝이지, 그럼.
여태까지의 열기는 모두 장난이었던 것처럼 언니가 벽 쪽으로 돌아누웠다. 이제 내려가. 마치 기다란 풍선에 숨을 조금씩 불어넣다가 팽팽하게 들어 있던 바람이 순식간에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나는 침대 아래로 내려와 이불 위에 엎드렸다. 언니의 침대는 딱 성인 한 명이 눕기 적당한 크기였다. 조금 더 어렸더라면 둘이 몸을 구기고 잘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언니의 침대는 내가 들어가기에는 언제나 조금 좁았다.
그날 밤 나는 언니를 흔들어 깨우고 싶었다. 그리고 묻고 싶었다. 이야기의 전말을, 언니의 숨겨 둔 진심을 조르고 싶었다. 그건 아마 내가 원규 오빠의 존재를 ― 더불어 오빠가 언니에게 품은 마음이나 그걸 키워 온 세월 같은 것을 ― 다소 얕잡아 보고 있었기 때문일 거다. 아니, 그보다는 차라리 없던 일로 친 쪽에 가까웠다. 어둠 속에서 고백 아닌 고백을 털어놓는 언니의 태도는 다소 심상했고, 당시 나는 언니가 오래 사귀었던 남자친구와 언제고 재회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원규 오빠의 출연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오빠라는 사람이 언니가 꾸며낸 장난의 일부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날 밤 나는 언니를 깨우지 않았다. 후회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렇기에 이제는 언니의 입장을 영영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실제로 원규 오빠를 만난 건 그해가 가기 전이었다. 나는 매년 그랬듯, 명절 이틀 전 언니의 자취방에 들렀다. 언니의 자취방은 가벽을 세워 공간을 분리한 덕에 제법 살 만했지만, 그래도 집보다는 방에 가까웠다. 원룸보다 조금 넓은 정도였는데 집주인이 욕심을 내서 현관에 미닫이로 된 중문을 다는 바람에 좀 답답한 느낌이 나기도 했다. 한 명이 살기에 부족하지는 않았지만 두 명은 무리인 규모였다.
도어 록 덮개를 올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언니를 맞이하러 나갔다. 그런데 키패드를 누르는 속도가 평소보다 미묘하게 답답했다. 닫힌 중문 너머로 입장한 사람은 언니가 아니었다. 방문객이 움직일 때마다 반투명한 고방 유리에 비치는 윤곽이 흩어졌다가 재조립되었다. 그는 곧바로 들어오지 않고 현관에 쪼그려서 신발 정리를 했다. 미적거리던 그가 잠시 후 중문을 밀어젖혔다.
자기야, 새벽 씨 벌써 왔어?
남자는 들어오다 말고 나를 보고 우뚝 섰다. 중문 안쪽으로 엉거주춤 밀어 넣은 다리에는 주름 하나 잡히지 않은 베이지색 면바지를 걸치고 있었다. 발목까지 똑 떨어지는 길이의 바지가 조금 밀려 올라가 복숭아뼈가 드러났다 ― 성인 남성치고 체격이 다부진 편은 아니었는데 뼈대가 앙상해 보이지는 않았다 ― 흰색 양말을 신은 발등에는 난데없이 강아지가 그려져 있었다. 혀를 빼물고 있는 강아지는 좀 멍청해 보였다.
발끝에서 시선을 들자, 단정한 인상의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곤혹스러운 얼굴로 안경을 고쳐 썼다. 내 이름을 자연스럽게 부르면서 입장한 것치고는 적잖이 당황스러워 보였다.
어, 새벽 씨 계셨구나. 들어가도 될까요?
비밀번호를 찍고 들어온 시점부터 이미 출입이 용인된 손님이었을 텐데, 그는 뒤늦게 내게 허락을 구했다. 내가 매정하게 거절하면 바로 집을 나갈 것 같은 태도였다. 그런데도 왠지 이 집의 관계자는 그이고, 나는 침입자인 것만 같았다.
누구신데 남의 집에 함부로 들어오세요?
날 선 반응에 그가 발을 화들짝 물렀다. 한쪽 신발만 신고 현관에서 주춤거리는 그의 모습에 맥이 탁 풀렸다.
인사가 늦었죠. 새벽 씨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 들은 바가 없는데요.
비밀을 발설해도 되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 듯, 그가 머뭇거렸다. 발끝에서 혀를 빼문 강아지가 꼼지락거렸다. 그 옆에 언니와 내 신발 ― 언니와 나는 신장 차이가 꽤 났지만 발 크기는 똑같았다 ― 이 정돈되어 있었다.
저는 그······ 언니 분과 만남을 가지고 있는 안, 원규라고 합니다.
그가 입고 있던 항공 점퍼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 그가 입으니 모범생이 양아치 옷을 빌려 입은 같아서 우스꽝스러워 보였다 ― 그러고는 명함을 한 장 꺼내 건넸다. K대학교 기술과학대학원 소속 연구원 안원규. 신원이 확실해졌지만 여전히 그를 집 안으로 들이고 싶지 않았다.
언니 지금 남자친구 없는데?
그의 얼굴이 단숨에 붉어졌다. 그런 반박은 그가 밝힌 신원과 언니와의 관계를 깡그리 무시하겠다는 의미나 다름없었다. 그가 우물쭈물하는 사이 좀 전보다 빠르고 명확한 박자로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울렸다.
안 들어가고 뭐 해?
언니는 멀뚱히 서 있는 그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말투만 들으면 애초부터 약속된 만남이라도 되는 것 같았다.
인사들 나눴지? 얘 차 타고 갈 거야.
언니가 팔짱을 끼면서 그를 집 안으로 이끌었다. 허둥대며 신발을 마저 벗은 그가 끌려 들어왔다. 나는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언니는 짐만 챙겨서 바로 출발하자고 했다. 명절 당일에 남자의 집에 인사를 가기로 했다면서. 원래 안 이랬잖아. 그런 말은 꺼내지도 못했다. 애초에 내게 원래, 라고 주장할 만한 시기나 자격이 있었는지도 의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따져 묻는 대신 부루퉁하게 말했다.
보일러 켜놨는데.
끄고 가면 되지, 뭘.
언니는 내 기분 같은 건 눈치 채지 못한 듯이 말했다. 아니면 눈치 채지 못한 척한 걸 수도 있었다.
그가 차를 빼고 언니가 짐을 챙기는 동안 나는 싱크대 하부 장을 열었다. 보일러를 잠그자 소음이라고 느끼지도 못했던 소리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사위가 조용해졌다. 나는 힘을 주어 밸브를 당겼다. 더 당겨지지도 않을 만큼 꽉.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도 ― 원규 오빠의 본가는 서울에 있었다 ― 우리 셋은 원규 오빠의 구형 에쿠스로 이동했다. 깔끔하지만 어딘지 좀 고리타분해 보이는 은색 차였는데, 오빠의 어머니가 타던 걸 물려받았다고 했다. 언니는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침착해 보였다. 잘 관리된 중고차의 역사 같은 것이 아니라 그런 차의 소유주와 결혼하게 될 미래를 알고 있었던 것처럼. 나는 언니와 오빠 사이에 아이가 생기면, 그 애도 오빠처럼 차를 물려받을까 생각했다. 오랜 주행에 속이 울렁거렸다.
새벽 씨, 라디오 좀 틀어도 될까요?
자기 차인데도 오빠는 내게 허락을 구했다. 그러세요. 불퉁스러운 대답에도 오빠는 그럼 실례할게요, 하고 라디오를 틀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포크송을 오빠가 따라 흥얼거렸다.
가끔 생각해 보곤 한다. 내가 원규 오빠를 좋아하게 된 게 언제인지 말이다. 강아지 양말을 신은 발을 중문 안쪽으로 들이밀던 순간인지, 고작 라디오를 트는 데도 정중히 내 의견을 묻던 순간인지. 언니가 자란 집 거실에 무릎을 꿇고 앉아 안절부절못하면서 반나절 더 봤다고 내게 알은체하던 순간인지. 나를 언니의 자취방이 아니라 기숙사 앞에 굳이 떨궈 주고 가던 순간인지.
음악이 잦아들고 진행자가 청취자의 사연을 소개했다. 네 살배기 딸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자꾸만 생떼를 쓴다는 내용이었다. 진행자 중 한 명이 자신도 애를 키우지만 이 나이가 가장 힘들 때라고, 이때 버릇을 단단히 들여야 한다고 했다.
살면서 원하는 걸 전부 가질 수는 없다는 걸 가르쳐야죠.
언니가 예고 없이 등받이를 밀었다. 요즘처럼 센서가 작동해 부드럽게 움직이는 종류의 차가 아니라 등받이가 불시에 뚝 떨어지는 구조였다. 등받이가 덜컹, 떨어지면서 내 무릎에 아슬아슬하게 닿을 뻔했다. 나는 등을 바싹 붙이며 무릎과 등받이 사이 공간을 확보하려 했다.
이듬해 언니는 원규 오빠의 본가와 가까운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나의 부모와 이모부는 참석하지 않았다.
가족사진을 찍을 순서가 되자 나로서는 아주 어릴 때 보고 만 친척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그들 중 나를 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키가 너무 작거나 큰 사람들, 옷 색상이 칙칙하거나 튀는 사람들의 위치를 사진사가 요모조모 손보았다. 나는 처음 섰던 이모 옆자리에서 자꾸만 멀어져서 둘째 줄 외곽에 서게 되었다.
언니와 팔짱을 낀 원규 오빠가 누군가를 찾는 것처럼 두리번거렸다. 신랑 분 집중하시고. 사진사가 지적하자 어느 쪽 할 것 없이 하객들이 짧게 웃었다. 오빠의 움직임에 따라 가슴의 흰색 꽃이 대롱거렸다. 그것을 고쳐 주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셔터가 터졌다. 눈 감지들 마시고요, 한 번 더 찍겠습니다. 다시 한 번 셔터가 터졌다.
사진사의 안내에 따라 신랑 신부 측 친구들이 몰려 나왔다. 들어가면서 보니 꽃은 어느새 똑바르게 세워져 있었다.
나는 종종 슬기가 생기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곤 한다. 언니와 원규 오빠가 결혼까지 했을지, 그렇게 조속히 결혼식을 올렸을지 같은 생각들 말이다. 무슨 의도를 가지고 하는 상상은 아니고 그냥 가능성에 대한 것이다.
막달까지도 언니는 쉽게 이름을 정하지 못했다. 결혼식을 올리고 넉 달 만에 슬기가 태어났으니, 언니에게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마지막까지 언니가 고려했던 이름은 ‘정하’였다. 오빠의 부친이 철학관에서 받아 온 이름 중 하나였다. 언니는 내게 그 이름이 어떻게 들리냐고 물었다.
물론 더 좋은 이름도 있었지만, 어차피 질문의 의도는 뻔했으므로 나는 좋게 들린다고 대답했다. 여자 아이든 남자 아이든 상관없이 쓸 수 있어서 좋을 거라고.
여자 아이일 거야.
어떻게 알아? 병원에서 안 알려주잖아.
그렇게 물으면서도 나는 언니 말이 맞을 거라고 믿었다.
그냥, 그럴 거 같아서?
언니는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복부를 쓰다듬었다. 동그랗게 솟아오른 배만 아니었다면, 세상에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란 없다고 믿는 중학생 여자애처럼 보였다. 나는 언니가 살면서 상상한 것 중 몇이나 현실로 이루어졌는지 궁금했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언니는 슬기라고 이름 붙였다. 후보에 없던 이름이었다. 그냥 생각났어.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슬기를 품에 안고 언니가 말했다. 배 속의 아이가 여자 아이일 거라고 확신하던 때처럼. 나는 건포도처럼 쪼그라든 아기의 얼굴을 보았다. 저 아이의 무엇이 숱한 고민의 시간을 무용하게 만들고, 슬기라는 이름을 붙이도록 만들었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
그래도 슬기라는 이름은 잘 어울렸다. 자라면서 슬기는 더는 쪼글쪼글하지 않았다. 아이답게 토실토실하고 부드러웠다. 그리고 나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마치 나를 좋아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것 같았다.
슬기가 좋아하는 게 하나 더 있었는데, 바로 『안개가 시작되는 곳』이었다. 이모의 집을 나올 때 나는 그 책을 챙기지 않았다. 대신 방문할 때마다 ― 언니와 달리 나는 명절이 아니면 이모를 찾아가는 일이 거의 없었다 ― 책을 펼쳐보는 걸로 만족했다.
몇 년 후 슬기가 그 책을 읽고 있는 걸 보고 나서야 언니가 가져갔다는 걸 알았다. 그게 서운하거나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애초에 언니 책이었으니 언니 자식에게 물려주는 건 타당했다. 내용이라면 이미 전부 기억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슬기가 그 책을 마음에 들어 했으므로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슬기는 내가 방문할 때마다 그 책을 읽어 달라고 했다. 언니와 원규 오빠보다 내가 읽어 주는 걸 훨씬 좋아했다. 슬기를 위해 책을 읽어 주면서 나는 이것이야말로 나의 역할이라고 확신했다. 마치 슬기를 돌보기 위해 그 어린 시절 언니의 집으로 파견을 간 것 같았다.
나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슬기는 매년 가는 대관령 여행에도 나를 데려가고 싶어 했다. 언니네 가족 여행에 나도 종종 참석하긴 했지만, 주로 당일치기 일정일 때나 그랬다. 그때쯤 언니는 육아휴직을 끝내고 복직했다가 석 달 만에 퇴직 신청을 한 상태였다. 온종일 육아를 하느라 지쳐서 잠시나마 누가 슬기를 좀 맡아 주었으면 하는 것 같았다.
하필 그해 여름휴가는 장마철이었다. 예약한 콘도에 가까워질 때쯤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슬기가 창문에 코를 박고 말했다. 하늘에서 바늘이 막 떨어져.
그건 『안개가 시작되는 곳』의 한 장면이었다. 연못 근처 생물들이 사선으로 내리는 비를 보고 바늘인 줄 알고 겁을 먹는 장면. 달리는 차의 창밖으로 슬기가 팔을 내밀었다. 슬기, 위험하다. 오빠가 부드럽게 경고하자 슬기는 얌전히 팔을 집어넣었다.
그날 밤 슬기는 잠들기 전에 내게 책을 읽어 달라고 졸랐다.
슬기야, 그거 엄마가 어제도 읽어 줬잖아.
어제는 이모가 안 읽어 줬잖아.
슬기의 고집에 언니는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언니가 원래 저렇게 웃었던가? 나는 기억을 더듬었지만 언니가 웃을 때 어떤 소리를 내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슬기, 아빠가 읽어 줄까?
아니. 나 이모.
슬기의 단호한 말투에 다들 웃음이 터졌다.
저렇게 좋을까. 너 그냥 내년에도 와라.
그렇게 막무가내로 정하면 되나. 새벽이 입장도 들어 봐야지.
아예 내년에는 너한테 슬기 맡기고 둘이 올까 봐.
언니와 오빠가 마주 보고 웃었다. 난처하고 즐거워 보였다. 슬기가 나의 입장을 기다리는 것처럼 책을 품에 안고 올려다보았다. 슬기의 눈빛은 상대의 호의도 애정도 쉽게 얻어낼 수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가득했다.
나는 슬기에게서 책을 건네받았다. 책을 펼치자 슬기가 조르르 달려와 작은 몸을 내게 온전히 기댔다. 나는 이미 수십 번은 읽어서 내용을 전부 외운 책의 첫 장을 읽어 내려갔다.
비가 내리는 아침, 아이는 아끼던 연잎 우산이 망가졌다는 걸 알았어요······.
삽화는 눅눅한 빛으로 가득했다. 비 내리기 직전의 습한 기운이 그림에서도 느껴졌다. 팔뚝의 붉은 실도 습기를 머금은 것처럼 보였다.
민물고기가 물었어요. 그건 언제부터 있었던 거야? 아이는 고개를 저었어요. 몰라, 태어날 때부터 있던걸?
슬기는 삽화 속 아이의 팔뚝을 조심스럽게 매만졌다. 그러면 자수의 양감이 느껴지기라도 하듯이. 나는 슬기가 만족할 때까지 동화 속 아이를 쓰다듬도록 내버려두었다.
숲으로 가면 안개가 너를 감싸 줄 거야.
슬기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이었다. 붉은 실 위에 내려앉은 종달새가 지저귀었다. 내가 종달새의 대사를 읽으면 슬기는 안개가 너를 감싸 줄 거야, 하고 따라 속삭였다. 그래서 그 장면을 읽을 때면 나는 언제나 한 박자씩 기다려 주었다.
아이는 장화가 푹푹 빠지는 흙탕길을 건너 마침내 숲에 도착한다. 숲의 입구에 서자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안개가 새어나온다. 빗방울이 조금씩 멎어 가고, 아이는 우비를 벗고 자신이 떠나온 세상을 뒤돌아본다. 나뭇잎에 고여 있던 빗방울이 아이의 얼굴 위로 후드득 떨어진다. 바늘처럼 생긴 빗방울이 아이의 콧잔등에 주근깨를 남기고 사라진다. 아이는 슬기가 그랬듯, 자신의 얼굴을 매만진다. 그러면 주근깨의 질감이 느껴지기라도 하듯이. 이윽고 아이는 숲으로 향한다. 안개가 멀어지는 아이의 뒷모습을 휘감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두 번이나 읽고 나서야 슬기는 만족했다. 잠든 슬기를 침대에 눕히고 나오자, 언니가 부엌에서 페트병째로 물을 마시고 있었다. 콘도의 부엌은 거실과 거의 구분이 안 될 만큼 가까웠다.
나 피곤했나 봐. 오자마자 뻗어서 이제 깼다.
내내 운전한 건 오빠인데 언니가 더 지쳐 보였다. 언니는 입가의 물기를 문질러 닦았다.
슬기 책 어디 있어? 잃어버리면 난리 난다, 걔.
나는 소파에 놓여 있던 책을 가져다주었다. 책등에 개구리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책등보다 면적이 남아서 너풀거리는 이름표 모서리에 때가 껴 있었다. 그걸 본 언니가 픽 웃었다.
이름 한번 잘 지었네.
그러게. 마지막까지 고민했잖아.
냉장고를 열자 우웅, 하고 팬 돌아가는 소리가 커졌다. 언니의 얼굴로 빛이 쏟아졌다. 오는 길에 조수석에 달린 조그만 거울에 의지해서 칠한 눈 화장이 번져 있었다. 냉장고가 닫히면서 얼굴 중앙을 비추던 빛의 면적이 빠르게 좁아졌다. 이윽고 푸석한 맨얼굴과 번진 화장이 어둠에 잠겼다.
모르는 사이였으면 새벽이라고 지을 수도 있었을 텐데.
언니는 동화책을 대충 쑤셔 넣은 가방을 한쪽 어깨에 둘러멨다. 지퍼를 반만 잠가서 책의 모서리가 튀어나왔다. 길쭉한 몸에 꽉 끼는 어린이용 가방을 매고 어둠 속에 서 있는 언니는 어딘지 균형이 맞지 않아 보였다.
언니가 오빠가 잠들어 있는 방으로 돌아간 뒤에도 나는 냉장고 앞에 잠시 서 있었다. 팬 돌아가는 먹먹한 소리가 꾸준하게 지속됐다.
다음날 대관령으로 출발할 때부터 하늘이 흐렸다. 산길을 오르기 시작하자 폭우가 쏟아졌다. 와이퍼로 부지런히 닦아도 앞 유리가 금방 흐려졌다. 갑자기 거세진 빗발에 운전석으로 비가 쏟아졌다.
아빠, 바늘 피해!
슬기가 비명을 질렀다. 슬기야, 바늘이 아니고 비야. 오빠가 다급히 창문을 올리며 웃었다. 빗방울이 꾸물거리며 창문을 기어 다녔다. 슬기는 개중 하나를 고집스럽게 응원하다가 창문 틈 사이로 물방울이 빠지자 탄식했다.
산 정상까지 올랐다가 반대편으로 넘어가자 거짓말처럼 비가 멈췄다. 구불구불한 도로 때문에 멀미가 났다. 뭐 손오공 구름 그런 건가 봐. 언니가 장난을 쳤다.
근두운.
내가 나직이 말했다. 잠깐의 사이를 두고 언니가 돌아봤다. 뭐라고 했어?
공―주―운이라고!
슬기가 쩌렁쩌렁하게 외쳤다. 언니가 한숨처럼 웃으며 몸을 돌렸다. 내가 슬기를 껴안으며 간지럽히자 슬기가 비명처럼 웃었다.
언니는 그다음 해 대관령 산길에서 죽었다. 우리가 웃고 떠들던 바로 그 가파른 산행길이었다.
우려와 달리 보험사는 금방 도착했다. 도로에서 시간을 꽤나 허비했음에도 예상보다 일찍 도착하기까지 했다. 정작 시간을 지체한 건 빌라에 도착한 다음이었다. 이모가 사는 단지는 두 개의 구획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그런 줄도 모르고 엉뚱한 구역을 빙빙 돈 것이다.
마침내 현관에 들어섰을 때, 나는 다소 어리둥절했다. 이전에 살던 집과 평수와 구조가 거의 똑같았기 때문이다. 비좁은 현관과 방이 3개인 점도 같았다. 언니가 없다는 점만 빼고 언니가 살던 시절과 다를 게 없었다.
그래도 복도 한 면을 꽉 채우던 짐은 조금 정리한 모양이었다. 복도 끝에 못 보던 붙박이 장식장이 있었다. 격자무늬 유리 너머에 어린이용 전집이 꽂혀 있었다. 언니와 내가 어릴 때 읽던 건 아니었다.
슬기 책 좋아한다매. 집 갈 때 몇 권 가져가라.
전부가 아니라 몇 권 가져가라, 는 말에서 나는 이모가 슬기의 방문을 기대하고 있단 걸 알아차렸다.
할머니 고맙습니다, 해야지. 원규 오빠의 부추김에도 슬기는 멀뚱히 장식장 유리문을 문질렀다. 과자를 집어 먹느라 번들거리는 손가락의 기름기가 유리문에 남았다.
그날 밤 슬기와 원규 오빠는 손님방에서, 나는 창고 방에서 잤다. 바닥에 누워서 방을 둘러보았다. 계절이 지난 옷이 행거에 빼곡히 걸려 있었다. 이사할 때 쓰는 커다란 플라스틱 박스가 켜켜이 쌓여 공간이 한층 비좁은 느낌이었지만 이모부의 책상과 컴퓨터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이모가 없을 때면 나와 언니는 그 컴퓨터로 불법다운받은 외국 드라마를 감상하곤 했다. 자막의 내용이나 위치가 엉망이라 심각한 상황도 웃기게 만들었다. 내가 떠나고 나서는 컴퓨터를 쓸 일이 거의 없었을 것이다.
언니가 독립하고 나서야 나는 침대를 홀로 사용했다. 그렇지만 종종 밤이 되면 바닥으로 기어 내려갔다. 그러고는 모로 누워 텅 빈 매트리스를 올려다보며 잠이 들었다. 이모도 내가 그러는 걸 알았는지 모르겠다. 나를 깨우러 방에 들어온 적이 없었으니까.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나가면 이모가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언니가 집을 나간 후로도 이모는 나에게 식사를 차려 주고 용돈을 주었고 ― 나는 반드시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그 돈을 쓰지 않고 언니가 남기고 간 책상 서랍에 보관했다 ― 단과학원에 보내 주었다. 전부 내가 요구한 적 없는 것들이었다.
이사하면서 언니의 가구를 처분했기 때문에 슬기와 원규 오빠는 바닥에 요를 깔고 잤다. 슬기는 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이라 붙어 자는 것을 싫어했지만, 자면서 꼼지락거리느라 깨어날 때쯤에는 오빠와 거의 엉켜 있곤 했다. 나는 바닥에 누워 꼭 붙어 자는 두 사람을 상상했다.
창고 방은 현관 앞에 있었다. 문을 열고 나가자 복도 끝 안방과 손님방 사이에 장식장이 있었다. 멀리서는 조금 아까 슬기가 남긴 손자국이 보이지 않았다. 장식장 앞으로 다가가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자석이 떨어지면서 장식장 문이 요란하게 흔들렸다. 진동이 가라앉을 때까지 잠시 기다렸다가 아무 책이나 꺼냈다. 이 책 저 책을 훑어보던 중에 책장 한 움큼이 멋대로 넘어갔다. 책 사이에 우편물이 껴 있었다. 그것이 고지서이고 겉면에 이모부 이름이 적혀 있다는 걸 알아채자마자 나는 읽던 책을 도로 꽂아 두었다. 장식장 문을 닫자 철썩 하고 자석끼리 단단히 달라붙는 느낌이 났다.
해가 뜨기 직전이라 밖은 어두컴컴했다. 공동현관을 나서 불 꺼진 테니스장과 나무로 된 놀이기구가 갈라진 놀이터를 지나쳤다. 정문 앞에 청솔동심타운 2단지라고 적힌 간판이 있었다. 그 맞은편 벤치에 앉아 허벅다리에 고지서를 올려 두었다. 간판의 불빛에 의지해 고지서를 살펴봤다. 고지서에 적힌 이모부의 성은 언니와는 같지만 이모와도, 나와도 달랐다. 문득 이모부가 한국에 들어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 이모부는 언니와 통화할 때면 꼭 나를 바꿔 달라고 했다. 그런 행동이 나를 향한 애정이나 책임감에서 비롯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쭈뼛거리며 전화를 받으면, 이모부는 내게 잘 지내고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어색함을 더는 참을 수 없을 지경이 되면 이모부는 다시 언니를 바꾸라고 했다. 전화기를 넘겨받은 언니는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 나갔다. 이야기가 끊긴 적 없다는 듯이. 전화기 너머 상대의 애정도 믿음도 의심치 않는다는 듯이.
나는 잘 지내고 있다. 부모 모두에게 버림받은 아이 같지는 않다. 그게 겉으로 티가 나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건, 평소에 나는 그런 생각을 거의 안 한다는 것이다. 언니 집에서 지내기 시작한 11살 무렵부터 쭉 나는 원만한 교우관계를 유지했다. 관계에 있어서 크고 작은 불화는 있을지언정 나름대로 슬기롭게 대처하는 법을 배웠다. 성인이 된 이후에는 몇 번의 연애를 하고, 원치 않는 임신 가능성에 겁을 먹었던 적도 있다. 그러나 내가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모두와 거리를 유지하고, 좁히고, 멀어지는 법을 배웠다. 그 일은 아주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차차 익힌 게 아니라 처음부터 그렇게 태어난 사람 같았다. 태어날 때부터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법을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말이다.
그러나 때때로 나는 시간이 삭제된 것처럼 느낀다. 기억을 상실했거나 점차적으로 성장한 게 아니라 그저 눈을 감았다 뜨니 어른이 되어버린 기분이다. 시간을 건너뛴 것처럼 나는 종종 어리둥절하다.
그럴 때면 슬기가 나를 재촉한다. 내가 갑작스럽게 도래한 현실에 적응하려 애쓰는 동안 7살 난 아이의 참을성만큼 인내한 그 애가 내 팔뚝을 쥐고 흔든다. 조금의 힘도 영향력도 없는 그 손길에 나는 서서히 감각을 되찾는다. 그리고 슬기가 원하는 대로 동화책의 다음 장을 넘긴다.
고지서를 덮고 벤치에서 일어났다. 이제 슬기가 잠들어 있는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날이 밝으면 이모가 차려 준 밥상에 앉아 식사를 할 것이다. 그리고 오빠 차를 타고 언니가 안치된 납골당을 방문할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여름 연례행사가 될 것이다. 그 후에는 언니와 오빠가 그랬듯, 대관령 양떼목장으로 갈 것이다. 그곳에서 슬기는 즐거운 오후를 보낼 것이다.
조금씩 밝아 오는 하늘은 지저분한 붓으로 휘젓는 바람에 탁한 기를 머금은 것 같은 푸른빛이었다. 단지의 안과 밖은 안개로 가득했다. 외투도 없이 나온 탓에 추위가 확 느껴졌다. 늦여름치고 쌀쌀한 공기는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어제 오후 한참 헤맸던 구획을 지나 테니스장과 놀이터 쪽으로 향했다. 이모의 집에 다 왔을 때 누군가 공동현관에 서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흐릿한 인영이 조금 또렷해졌다. 안개 속에서 원규 오빠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오빠는 잠이 덜 깬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었는데 안개 때문에 정확하지는 않았다. 어쩌면 무표정인지도 몰랐다. 그것도 아니면 오빠가 아닌 생판 모르는 사람일 수도 있었다. 오빠와 나 사이 열 걸음 정도 거리가 있었다. 열 걸음을 떼는 동안 나는 그런 식으로 떠올릴 수 있는 가능성을 전부 헤아려 보았다.
거리가 가까워지고, 가까워져서 이제는 두어 걸음만 남겨 둔 상태였다. 그러나 어쩐지 오빠는 여전히 안개 너머에 있는 것 같았다. 이만큼 가까이 왔는데도 여전히 멀게 보였다. 나는 마지막 걸음을 떼며, 오빠라고 믿고 싶은 이를 향해 가만하게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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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 2024-11-01
구하고 원하는 자에게 윤치규 조사실 안에서 윤구민은 호주에 관해 생각했다. 호주에 있는 아버지를 떠올린 것은 아니었고 정확히 말하면 호주가 섬인지 대륙인지 고민했다. 만약 아버지였다면 이런 질문을 들었을 때 너무나도 간단히 호주는 섬이면서 동시에 대륙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윤구민은 그것이 이치에 맞는 말일지라도 정답이 될 수 없다고 여겼다. 마찬가지로 호주가 자체적인 지각판 위에 있다거나 독자적인 생태계를 갖고 있기에 대륙이라는 주장도 마땅히 받아들일 수는 있으나 정답이 될 수 없었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아시아와 유럽은 하나의 대륙이었고 마다가스카르도 섬이 아니라 얼마든지 대륙이 될 수 있었다. 18세기 영국의 제임스 쿡 선장이 호주 동쪽 해안에 처음 도착했을 때 호주는 섬이 아니라 대륙이어야만 했다. 스페인의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것처럼 영국의 왕립학회도 미지의 남방대륙 테라 아우스트랄리스를 찾아내야만 했다. 영국이 호주를 신대륙이라고 선언했을 때 다른 나라는 인정하지 않았다. 영국은 호주가 섬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대륙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했다. 그중 윤구민이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그린란드보다 큰 섬은 앞으로 대륙이라는 것이었다. 그건 정답을 찾은 것이라기보다는 만들어낸 것에 가까웠다. 그리고 어쩌면 그런 방식이야말로 정답이라는 것의 본질과 가장 가까운 형태인지도 몰랐다. 호주의 원주민이었던 애보리진에게 호주는 섬도 아니고 대륙도 아니었으며 그저 완벽하고 절대적인 단 하나의 세계일 뿐이었다. 영국이 호주를 침략하고 호주는 대륙이 되었고 애보리진은 현생 인류 중 가장 진화하지 못한 열등한 종족이 되었다. 생김새가 오랑우탄과 흡사하고 뇌 용량이 다른 호모 사피엔스보다 작다는 게 이유였는데 윤구민은 궁금했다. 호주에 정착한 영국인이 그토록 수많은 애보리진을 죽인 이유는 그들이 도저히 같은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죽여 놓고 보니 너무할 정도로 많이 죽여 버려서 애보리진을 인류보다 열등한 존재라고 스스로 속이게 된 것일까? 1996년 전두환에게 사형이 구형된 뒤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가 다음 해 사면되는 과정을 뉴스로 지켜보면서 윤구민은 거짓말이라는 것도 뻔뻔하게 반복하다 보면 정답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윤구민에게도 너무 오랫동안 반복한 거짓말이 하나 있었다. 아버지가 호주에서 사업을 한다는 것. 학교에서 가정환경조사서를 작성하거나 친구 부모님이 아버지 직업을 물어 볼 때마다 윤구민은 그렇게 대답했다. 왜 하필 호주였을까? 아마도 미국이나 중국처럼 너무 뻔한 나라보다는 다소 생소한 지명이 더 그럴듯해 보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그 무렵 캥거루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봤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유년 시절 윤구민이 나쁜 길로 어긋나지 않게 보살펴 준 것은 아버지가 아니라 거짓말이었다. 거짓말이 들통 나지 않도록 유복한 집안에서 사랑받으며 자란 듯 누구에게나 친절했고 예의 바르게 굴었으며 옷차림에도 신경 썼다. 윤구민은 비싼 브랜드 옷을 입을 수 없어도 가난을
- 관리자
- 2024-11-01
숲 바깥쪽으로 김선재 1. 선을리가 서쪽 산의 중턱 어림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건 출발한 지 40분 남짓 되었을 무렵이다. 섬 서쪽은 산세가 험해 동쪽보다 개발이 덜 된 지역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덕분에 우리가 지금 거길 가는 거라고 소영은 말한다. 나는 그 말을 흘려들으며 스마트폰 화면을 확대해 선을리 근방을 훑지만 보이는 것이라고는 낯선 동리나 동산의 지명뿐이다. 선을은 식당이나 카페는커녕 편의점조차 없는, 그야말로 첩첩산중에 위치한 모양이다. 도착하면 투어가 시작되기 전까지 고작 30여 분의 시간이 남는다는 걸 확인한 나는 맥이 빠진다. 30여 분 동안 먹을 수 있는 게 뭘까.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검색했던 여러 메뉴를 떠올린다. 블로그에서 본 해물찜은 재료가 실해서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웠고 한치도 한창이라고 했다. 또 해풍에 말린 해초를 주재료로 한 수타 우동은 너도나도 후기를 남길 만큼 유행이었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입에 침이 고이지만 30분은 그런 걸 먹기에는 어림도 없는 시간일 거다. 홀쭉해진 배를 문지르며 생각한다. 메뉴를 고르는 건 고사하고 뭘 먹을 수 있기는 할까. 늦은 아침을 먹은 후로 뭘 먹은 기억이 없다. 몇 달 만에 만난 소영과 회포를 푸느라 평상시보다 늦게 잠들었다가 느지막한 시간에야 일어났다. 산책 시간도 여느 때보다 길었다. 날씨 때문이었다. 오늘은 정말 온종일 보기 드물게 시야가 좋고 바람도 잔잔한 날이다. 큰 귀를 펄럭거리며 공을 물고 해변을 뛰어다니는 마이가 너무 즐거워 보여 좀처럼 돌아오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배를 좀 채워야 할 텐데. 나는 운전 중인 소영이 들을 수 있도록 전방을 보며 그렇게 중얼거린다. 늦어도 30분 전까지는 입장해야 한다고 했던 거, 잊어버린 거 아니지? 소영이 상기시킨 건 리플릿에 적혀 있던 세 가지 주의사항 중 첫 번째다. 아. 나는 짧은 탄식을 터트린다. 뭘 물으면 질문으로 대답을 대신하는 게 그 애의 말버릇이라는 걸 잊고 있었다. 소영의 질문은 자주 비난이나 빈정거리는 것처럼 들려서 크고 작은 말다툼으로 이어지곤 했다. 네가 삐뚤어져서 그런 거라는 생각은 안 들어? 소영은 종종 그렇게 물었다. 기우는 햇빛이 차 안으로 쏟아진다. 상반신과 무릎 언저리가 뜨겁다. 나는 달려오는 일몰을 선바이저로 가리고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해안선에 늘어선 나지막한 건물들 사이로 수평선이 빠르게 흘러간다. 과감한 디자인의 알록달록한 옷을 걸친 사람들이 자주 눈에 띈다. 거주민과 관광객은 대개 옷차림으로 구별된다는 걸 이제 안다. 당분간 저 풍경 속에 내가 낄 일은 없을 거다. 오늘의 끼니를 고민하고 마켓에 올라오는 구인 목록을 살펴보다가 해가 질 무렵에는 마이와 함께 동쪽 해안가를 쏘다니는 게 요즘 내 일과의 대부분이다. 생존과 생활. 요즘 나는 밥그릇 앞의 마이가 그런 것처럼 무섭도록 그 단어들에 집중하며 지낸다. 투어가 끝날 즈음에는 문을 연 식당이 없을 텐데. 불안을 삼키며 소영을 흘깃거린다. 흰색 테두리의 검정 선글
- 관리자
- 2024-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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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건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