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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리와 사랑

  • 작성일 2024-06-01
  • 조회수 533

   해파리와 사랑


장대성


   슬플 일인가? 인터넷에 해파리를 검색했을 때 바다에서 헤엄치는 사진보다 냉채가 먼저 나오는 게


   이 집 해파리는 분명 먼 바다에서 왔을 거예요

   식감이 기가 막혀요

   그런 리뷰 한두 개도 아닌데


   너는 불쌍하게 여기는 것 같다 해파리가 심장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식탁에 젓가락을 내려 두며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더는 이 쫄깃함을 즐기지 못하겠다고


   해파리는 뇌도 눈도 입도 없어

   생각하지 못하고 말하거나 보지도 못한대


   책장에서 오래된 과학 서적을 꺼내 읽으며 너는 신중하다 미간에 주름이 흐른다 이해는 어디서 떠밀려오는 해초일까

   그런데 너는


   해변까지 밀려온 해파리를 밟고 으아악 소리 지른 적 있잖아? 묻고도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대신


   해파리도 사랑을 하나

   거기에 적혀 있어?


   너는 열심히 페이지를 넘긴다 알을 낳는대 독이 있고 물고기를 먹기도 한대 정말이지 알면 알수록


   키우고 싶다 해파리 어항을 하나 살까 아니야 해파리는 자유로워야 돼 자유는 무엇일까 내 몸속엔 뭐가 많아도 너무 많지


   밥 다 식겠다

   네가 해파리로부터 다시 네게 도착할 때쯤 손목을 잡고 거실로 나왔다 우리는 해파리가 아닌 사람이라서


   먹어야 사니까 먹어야

   해파리 걱정도 할 수 있는 거니까


   나는 젓가락을 들고

   생선의 뼈를 발라 흰 살을 올려 준다


   이런 아침에는 집이 꼭 커다란 어항 같다 어디든 바깥처럼 보여서 머리를 자주 박는다


   그러면 머리에서 피가 흘러

   이 느낌은 해파리가 모르는 것


   무엇도 모르는 채 흐르는 해파리에게도

   사랑은 있는 것이겠지


   때로 아무것도 없으며 쫄깃한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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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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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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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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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건

  • 남기윤
    훈훈해요

    재밌게 봤어요

    • 2024-06-05 13:50:54
    남기윤
    훈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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