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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그림자

  • 작성일 2018-01-01
  • 조회수 2,644

[단편소설]



남은 그림자



배상민




목이 탔다. 차가운 물이라도 마셔야 할 것 같았다. 사무실 뒤편에 있는 정수기로 걸어갔다. 그러자 정수기 주변에 모여 수다를 떨던 직원이 다급하게 눈짓을 하더니 약속이나 한 듯 입을 다물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종이컵에 냉수를 따랐다. 등 뒤로 동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벌써 한 달째였다. 안 봐도 뻔했다. 조롱에 찬 눈빛들일 것이다. 내가 돌아서자 직원 하나가 키득 웃으며 황급하게 입을 막았다. 그리고 약속이나 한 듯 재빨리 각자의 자리로 흩어졌다. 그때 변 과장이 내게로 다가와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참 신 대리, 이거 내일 아침까지 해줘. 퇴근 시간에 일 시켜서 미안해.”
내가 서류를 받아들자 변 과장은 내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그리고 웃음을 띠며 말했다.
“이건 성추행 아냐. 그냥 직장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전하는 격려의 표시라고. 오해하지 마. 나 게이 아냐.”
그 말과 동시에 주변에서 와, 하고 웃음이 폭발했다.
힘이 쭉 빠졌다. 처음에 이런 일을 당했을 때는 분노를 느꼈지만 이제는 그럴 기력조차 없었다. 일일이 분노하기에는 회사 내에서 너무 많은 사람이 나를 조롱하고 있었다. 나는 대꾸 없이 내 자리로 돌아갔다. 파티션 너머 부장 자리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지금 그 자리는 텅 비어 있다.


한때 저 자리에 있었던 김 부장은 진보주의자까지는 아니었지만, 합리주의자를 자처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되도록 부하 직원들 야근을 시키지 않았고, 퇴근도 대체로 자율적인 분위기 속에서 하도록 했다. 회식을 해도 김 부장은 그 아래인 장 과장을 데리고 1차에서 적당히 빠져 주었다. 그 때문에 부서에서 그에 대한 신망은 아주 높은 편이었다.
작년 늦가을, 정권의 비선실세 문제가 뉴스를 통해 불거지면서 전국적으로 촛불 집회가 열리기 시작했다. 점심을 먹으면서 촛불 집회 이야기를 나누던 김 부장과 장 과장 그리고 나와 내 옆자리의 은경 씨는 다 함께 촛불 집회에 참여하기로 뜻을 모았다. 그날 나는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직장 상사와 함께 촛불 집회에 간다는 말을 했고, 친구들은 직장 상사가 꼰대들이 아니라서 부럽다고 했다. 누군가는 자신의 직장 상사는 태극기 집회에 나가라고 압박하는 통에 하루하루가 고역이라는 말을 털어놓기도 했다.
수많은 인파에 섞여 김 부장과 장 과장 그리고 나와 은경 씨는 소리 높여 광장의 ‘민주주의’와 ‘정의’를 외쳤다. 가슴이 벅찰 정도였다. 죽이 잘 맞는 사람들과 있어서 그런지 집회가 끝나도 쉽사리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눈치를 보던 은경 씨가 이런 날은 술이라도 한잔해야 한다고 말을 꺼냈고, 김 부장은 자신이 쏘겠다며 우리를 가까운 호프집으로 이끌었다. 김 부장과 내가 나란히 앉고, 은경 씨와 장 과장이 맞은편에 앉아 맥주를 마셨다. 김 부장은 나와 은경 씨가 요즘 젊은 사람들답지 않게 세상 문제에 관심이 많다며 칭찬했고, 장 과장은 우리를 다시 봤다며 거들었다. 직장 상사에게 인정받았다는 기분 때문에 나와 은경 씨 역시 김 부장이 대학 시절 시위에 나가서 전경들을 상대했던 무용담을 지루한 기색 없이 흥미진진하게 들어주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은경 씨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어져 갔다. 몸을 자꾸만 비트는가 싶더니 화장실에 가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시간이 한참 흘렀는데도 돌아오지 않았다. 신나게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 가던 김 부장조차 낌새가 이상했는지 나가서 은경 씨를 찾아보라고 내게 이를 정도였다. 아까부터 은경 씨의 굳은 표정이 마음에 걸렸던 나는 그녀를 찾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경 씨는 멀리 간 게 아니었다. 화장실로 가는 좁은 통로 가운데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뭔가 넋이 나간 듯한 표정이었다. 나는 은경 씨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왜 안 들어와요? 무슨 일 있어요?”
은경 씨는 나를 쳐다보다가 입술을 잘근거리기 시작했다.
“왜요? 몸이 안 좋아요?”
“저기…… 빨리 이 자리 끝내고 우리 집에 가요.”
“아까 과장님이 2차는 자기가 쏘겠다고 하던데…….”
“신 대리님이 말해 주시면 안 될까요? 그냥 집에 가자고…….”
뜻밖에 은경 씨는 애원조로 부탁해 왔다. 나는 좀 난처했다. 과장이 2차를 가자고 했을 때 맞장구를 친 사람이 나였기 때문이었다. 나로서는 직장 상사와 사적으로 더 친해질 수 있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김 부장은 내년 인사이동에서 승진이 유력했다. 그의 아버지가 회사 주거래 은행 사외이사로 재직 중이라 거의 확실하다는 소문이었다. 지금까지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억지로 김 부장과 장 과장의 취흥을 깨고 싶지 않았다. 내가 머뭇거리자 은경 씨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과장님이 자꾸 날 만져요. 더 이상 못 있겠어요…….”
나는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믿을 수가 없었다. 장 과장은 평소에도 딱히 여직원과 관련한 추문이 도는 편이 아니었던 데다가, 무엇보다 조금 전까지 같이 촛불을 들었던 사람 아닌가? 그러나 간절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는 은경 씨의 얼굴에서 거짓말의 기미를 읽어내기도 어려웠다. 그때 통로 쪽에서 장 과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와 은경 씨는 반사적으로 목례를 했다. 그는 히죽 짓궂게 웃으면서 다가왔다.
“뭐야? 두 사람 왜 이렇게 심각해? 혹시 사귀는 사이 아냐?”
“아닙니다, 하하.”
나는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장 과장은 굳이 은경 씨와 나 사이를 헤집고 지나가려 했다. 우리는 벽 쪽으로 바짝 붙어서야 했다. 볼록 나온 장 과장의 배가 은경 씨의 몸과 맞닿으며 지나갔다. 고개를 틀어 장 과장을 외면하는 은경 씨의 굳은 표정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그녀의 말이 틀림없어 보였다. 분명, 이런 상황이라면 장 과장에게 항의하고 자리를 끝내는 게 맞는데, 아니 평소에 이런 일이 생기면 그렇게 해야겠다고 생각을 해본 적도 있는 것 같았는데, 이상하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장 과장은 화장실에 들어서기 전에 우리를 돌아보고 말았다.
“부장님 기다리셔. 어서 들어가.”
“네, 과장님.”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했다. 과장이 화장실로 들어가자 은경 씨는 거세게 고개를 저었다. 나는 짧은 고민 끝에 말했다.
“은경 씨, 부장님도 있고 하니 일단은 들어가요. 만약에 과장님이 또 그러면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해요. 그럼 내가 자리를 정리해 볼게요.”
은경 씨는 풀이 죽은 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나는 은경 씨에게 미안해졌다.
“그럼 이렇게 해요. 은경 씨가 부장님 곁에 앉고 제가 과장님 곁에 앉을게요. 끝나고 2차는 저만 두 분을 모시고 갈게요.”
은경 씨는 주먹을 한 번 꼭 쥐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은경 씨와 함께 다시 김 부장이 있는 테이블로 돌아갔다. 그리고 약속대로 장 과장 옆자리로 가서 앉았다. 다행히 김 부장은 별달리 미심쩍게 생각하는 것 같지 않았다.
1차를 끝내고 호프집을 나왔다. 예상했던 것처럼 장 과장은 2차를 내겠다고 호기롭게 말했다. 은경 씨가 나를 쳐다봤다. 나는 장 과장의 어깨에 손을 둘렀다.
“과장님, 은경 씨가 2차는 힘들 것 같아요. 오늘 갑자기 고향에서 동생이 찾아왔대요.”
“정말이야?”
장 과장은 은경 씨를 돌아봤다. 은경 씨는 억지로 미소를 꾸미면서 말했다.
“네. 걔가 원래 다음 주에 온다고 그랬는데…….”
“그럼 안 되는데…….”
장 과장은 흥이 깨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때 김 부장이 나섰다.
“그럼 우리도 정리하지. 벌써 새벽이야.”
“그럴까요?”
나는 재빨리 맞장구를 쳤다. 나 역시 이 자리가 불편해서 빨리 정리하고 싶었다. 장 과장은 입맛을 다시다가 은경 씨를 향해 불쑥 물었다.
“은경 씨는 집이 어디지?”
“저는 창천동 쪽이에요.”
“어? 나는 홍제동 쪽이니까 방향이 같네.”
장 과장은 김 부장을 향해 인사를 했다.
“부장님, 그럼 저는 은경 씨랑 먼저 같이 택시 타고 들어가겠습니다.”
은경 씨는 난처한 기색을 보였다. 하지만 물색모르는 김 부장은 오히려 은경 씨의 등을 떠밀었다.
“밤이 늦어서 걱정했는데, 장 과장이 데려다준다니까 마음이 놓이네.”
은경 씨는 한 번 더 나를 향해 도와달라는 눈빛을 보냈다. 그러나 딱히 뭐라고 둘러댈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김 부장이 나의 어깨를 잡았다.
“신 대리는 별일 없으면 나하고 같이 찜질방 가서 사우나라도 하고 들어가지.”
“아. 네 부장님.”
나는 엉겁결에 대답해 버렸다. 때마침 장 과장은 우리를 향해 달려오는 택시 중 한 대를 잡았고, 주저하는 은경 씨를 택시에 밀어 넣더니 총총 사라졌다. 은경 씨가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택시기사가 있으니 설마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리는 없을 거라고 애써 생각했다.
김 부장과 나는 또 다른 택시를 타고 회사 근처에 있는 찜질방으로 갔다. 탈의실에서 벌거벗은 김 부장을 처음으로 봤다. 그는 원래 키가 큰 편인 데다가 운동선수처럼 몸집이 탄탄해서 같은 남자인 내가 봐도 살짝 위압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우리는 사우나에 앉아 서로의 일상을 소재로 소소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김 부장은 아내와의 사이는 소원한 편이지만 연년생인 아들과 딸 때문에 산다고 푸념했다. 직장생활을 하는 평범한 중년의 그저 그런 하소연일 수도 있었지만 나는 그의 말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여 주었다. 새벽에 벌거벗은 남자끼리 나누는 대화라 더욱 진솔하게 느껴졌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숙취가 어느 정도 가실 만큼 땀을 흘린 우리는 수면실로 갔다. 푸르스름한 조명이 켜져 있는 방에는 나와 김 부장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근처에 있는 매트를 가져다가 김 부장의 자리를 먼저 봐주고 난 다음, 곁에 나의 매트를 펴고 나란히 누웠다. 김 부장이 몇 마디를 더 건넸던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는 않았다. 너무 피곤해서 까무룩 잠이 든 탓이었다.
눈을 뜬 건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였다. 누군가의 손길이 내 찜질복 아랫도리를 파고드는 것 같았다.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김 부장의 오른손이 내 아랫도리에 반쯤 들어가 있는 게 보였다. 소름이 돋았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뺐다. 김 부장은 자는 척 슬그머니 돌아누웠다. 그 순간 구더기가 기어 다니는 것 같은 불쾌한 감각이 온몸을 뒤덮었다. 그때서야 간밤에 은경 씨에게 일어났던 일이 내게도 일어났다는 걸 실감했다. 나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수면실을 빠져나갔다.
문제는 그날 이후였다. 김 부장의 추파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자신의 성향을 내게 들켰다고 생각했는지 오히려 더 노골적이었다. 김 부장은 주말만 되면 등산을 가자고 했다. 물론 나는 거절했다. 그러나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결재 서류를 올리면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서 반려했고, 야근을 하게 만들었다. 이전에 합리주의자를 자처하던 그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내가 야근을 하고 있으면 그도 곁에서 자리를 지켰다. 텅 빈 사무실에서 김 부장과 둘이 남겨진다는 사실 자체가 끔찍한 공포였다. 무슨 일이 생기면 왜소한 체격인 내가 완력으로 그를 이길 자신도 없었다. 새벽이 되면 김 부장은 어김없이 찜질방에 가자고 권했다. 내가 거절을 하면 그는 필요 이상으로 화를 냈다. 자신을 대체 뭘로 보냐고 펄쩍 뛰었다. 결국 김 부장의 권유를 이기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김 부장은 용케 아무도 없는 찜질방만 골라서 나를 데려갔다. 목욕탕에 들어설 때마다 나를 향해 노골적으로 발기해 있는 그의 성기를 보는 것은 또 다른 고역이었다. 하지만 어디에도 호소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내가 남자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얼핏 보기에 남자끼리 찜질방에 가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닐 수도 있었다. 김 부장 역시 목욕탕에서 등을 밀어 준답시고 내 등을 쓰다듬는 것 외에는 이렇다 할 신체 접촉을 하지 않았다. 다만 등을 내맡기고 있는 내가 혐오스럽고 비참한 기분을 느낄 뿐이었다.
그즈음 은경 씨에게서 회사 밖에서 잠깐 보자는 문자가 왔다. 문자에는 사진 한 장이 첨부되어 있었는데, 며칠 전 회식 자리에서 김 부장이 내 허벅지 안쪽을 더듬고 있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생각해 보니, 그날 은경 씨는 내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은경 씨 옆에는 어김없이 장 과장이 있었다. 촛불 집회를 끝내고 뒤풀이 때 있었던 일이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는 셈이었다. 그런데 나로서는 은경 씨가 이 사진을 빌미로 만나자고 하는 게 좀 꺼림칙했다. 처음에는 협박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싶었지만, 이내 말도 안 되는 생각이라는 걸 깨달았다. 은경 씨나 나나 같은 처지에 협박이 가당키나 할까.
약속 장소는 은경 씨 동네의 작고 아담한 카페였는데, 적어도 회사 사람들이 찾아올 일은 없어 보였다. 먼저 나와 있던 은경 씨는 나를 보자 손을 들어 보였다. 회사에서와 달리, 화장을 하지 않은 그녀의 얼굴은 한눈에 봐도 마음고생을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수척했다. 은경 씨는 먼저 시켜 놓은 찻잔을 내게 내밀었다.
“여기는 이게 좋아요. 먼저 드셔 보세요.”
조심스럽게 한 모금 마셔 보았다. 상큼한 과일 향 끝에 쌉싸름한 풋내가 올라왔다. 나는 은경 씨에게 찻잔을 되돌려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은경 씨는 엷은 미소를 지었다.
“먼저 몰래 사진 찍은 건 미안해요. 기분 나빴을 거예요. 그렇지만 회식 자리 내내 부장님 손이 이상하다는 게 마음에 걸렸어요. 처음에는 부장님이나 신 대리님이나 두 분 다 남자니까 설마 그럴 리 없을 거라고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신 대리님 표정이 너무 안 좋았어요. 저 같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그래서 핸드폰을 내려서 사진을 찍어 봤어요. 제 짐작이 맞더라고요.”
나도 모르게 얼굴이 달아올랐다. 남자로서의 자존심이 무너져 내린 것 같았다. 무엇보다 숨기고 싶은 치부를 들켜버린 꼴이라 화도 났다.
“그래서요?”
말투에 날이 바짝 섰다. 하지만 은경 씨는 차분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화내시는 거 이해해요. 제가 함부로 사진을 찍었으니까요. 그리고 신 대리님의 처지도 이해해요. 저도 당황스럽고, 수치스러웠으니까요. 그렇지만 말예요, 오래 고민해 봤는데, 더 이상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요. 그래서 말인데…….”
은경 씨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단호하게 말했다.
“같이해요. 혼자서는 용기내기가 어려웠는데, 우리가 같이하면 좀 낫지 않을까요?”
“뭘 하자는 건데요?”
“글쎄요.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죠. 회사에 진정도 넣고, 안 되면 고소도 하고요. 인터넷에 글도 올릴 수 있을 거예요.”
일단 은경 씨의 의도가 뭔지 알게 되자, 더 이상 그녀에게 경계심이 들거나 화가 나지는 않았다. 나는 팔짱을 끼고 곰곰이 생각해 봤다. 회사에 진정을 넣고 고소를 하게 되면 일이 커진다. 그것은 김 부장이나 장 과장과의 사이가 돌이킬 수 없게 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대리에서 모든 회사 경력을 멈추겠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 할 수 있을까…….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전 말예요, 은경 씨랑 달라요.”
“뭐가요?”
“난 남자거든요. 사람들이 보는 시각이 달라요.”
“뭐가 다른데요?”
“부장이 내게 그…… 그러는 걸 아무렇지 않게 생각할 수 있다는 거예요. 남자끼리의 일이니까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그건 그냥 신 대리님만의 생각일 수도 있잖아요. 누구에게 털어놔 보신 적 있으세요?”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거봐요. 언제까지 이렇게 당하고 살 수는 없잖아요.”
“언제까지 당하고 사는 건 아니에요. 부장님은 내년에 승진한다고…….”
“승진 안 하면요? 그리고 승진해서도 신 대리님을 괴롭히면요?”
그렇게 된다면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 된다. 거기까지는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저 재수 끝에 어렵게 들어온 회사예요. 게다가 나이도 서른 중반이에요. 대리 직급에서 회사를 그만두게 되면 제가 어디에 가서 다시 취직을 하겠어요? 문제 일으키고 싶지 않아요.”
은경 씨는 찻잔으로 시선을 떨구었다. 그리고 잠깐 침묵을 지킨 끝에 말했다.
“신 대리님 말씀 이해해요. 그렇지만 저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요. 이건 회사에서 살아남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제 자존심의 문제거든요. 사람대접 받고 싶어요. 저는 혼자서라도 시작할 거예요. 신 대리님도 생각이 바뀌면 언제든 같이해요.”
나도 은경 씨의 말을 이해했다. 다만 우리는 선택지가 다를 뿐이었다. 그래서 최소한, 은경 씨를 응원하겠다고 말해 주었다.
다음날부터 은경 씨는 정말로 작심한 듯 신속하게 움직였다. 회사에 진정을 넣고, 변호사를 고용해서 장 과장을 고소했다. 당연히 회사에 소문이 돌기 시작한 것은 물론, 수사관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회사로 찾아오기도 했다. 분위기가 뒤숭숭해지기는 했지만 표면적으로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장 과장과 은경 씨는 여전히 같이 근무했다.
심지어 장 과장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일을 시킬 때는 은경 씨를 노골적으로 무시하다가도, 그녀가 차를 마시기 위해 탕비실을 가거나 하면 그 뒤를 쫓았다. 한번은 탕비실에서 장 과장이 은경 씨에게 고소를 취하하라고 윽박지르는 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먼저 꼬리를 쳐놓고 이제 와서 남의 신세를 망치느냐고 고함을 쳤다. 내가 보기에는 은경 씨에게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들으라는 이야기였다.
마침내 회사에서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은경 씨는 몇 차례 김 부장이나 회사 관계자들과 면담을 가졌다. 속으로 은경 씨를 응원하고 있었던 나는 어쩌면 문제가 해결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가졌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여전히 장 과장과 은경 씨는 같은 부서에서 얼굴을 맞대고 일했다. 오히려 안 좋은 쪽으로 소문이 무성하게 난 이는 은경 씨였다. 희한하게도 장 과장의 이야기가 먹혀들고 있었다. 은경 씨의 얼굴은 문제를 제기하기 이전보다 더 수척해 보였다. 나는 이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였지만, 그녀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은근슬쩍 장 과장을 두둔하는 김 부장의 태도를 거스르고 싶지 않았다. 다만 은경 씨의 일로 부서가 예민한 상황에 빠지게 되면서 김 부장이 내게 추파를 던지는 일이 없어졌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래서였다. 은경 씨를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했고, 내게 도움을 청하지 않아서 고마웠다.
점점 회사에서 고립되어 가던 은경 씨는 최후의 수단으로 본인 계정의 SNS와 인터넷 토론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그동안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과 회사의 부당한 처우에 대해 폭로했다. 장 과장의 지속적인 성추행과, 장 과장 편에 서서 진행된 회사의 대응은 대중의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은경 씨의 폭로에 따르면 김 부장과 인사팀장은 장 과장에 대한 고소를 취하할 것을 종용했다. 주로 여성 고객들을 상대하는 생활가전 회사라 이런 성추행 사건으로 이미지가 실추되면 매출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였다. 특히 회사는 지속적으로 은경 씨에게 입단속을 하라고 주의를 주어 왔다고 했다.
인터넷 공간이라면 나도 은경 씨에게 힘을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가뜩이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은경 씨의 글을 공유했다. 나 같은 사람들 덕분인지 그 글은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일주일도 되지 않아 기자들이 회사에 찾아오거나 인사팀에 전화를 건다는 소문이 돌았다. 사건이 커지면서 나도 덩달아 신이 났다. 급기야 유명 인터넷 토론 게시판에 은경 씨에게 동조하는 글을 썼다. 익명이기는 했지만, 촛불 집회 뒤풀이에서 은경 씨가 장 과장에게 당했던 일이며, 탕비실에서 장 과장이 그녀에게 소리 지른 일 따위를 적었다. 그런데 글을 쓰면서 나는 나 자신이 은경 씨라도 된 듯 맹렬한 분노를 느꼈다. 어쩌면 내가 세상에 까발리고 싶었던 대상은 장 과장이 아니라 김 부장이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내 글 역시 사람들에 의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은경 씨로부터 고맙다는 문자가 오기도 했다. 나는 그동안 억눌렸던 정의를 실천한 것 같아 뿌듯했다. 그동안 수시로 심장을 콕콕 찔러대던 양심의 가책이 조금은 가시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글을 올린 지 이틀 만에 인사팀장으로부터 면담 요청이 왔다. 그는 나를 회사 내 감사실로 불렀다. 말이 감사실이지 문을 열고 들어가니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취조실 같은 분위기였다. 그곳에는 동그란 얼굴에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을 한 인사팀장과 비쩍 마른 체격에 날카로운 눈빛을 한 남자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인사팀장은 친절한 미소를 띠며 내게 자리를 권했다. 나는 괜히 양복 깃을 여미면서 자리에 앉았다.
“너무 걱정할 것 없어요. 우리 신 대리님이 이번 임은경 씨 사건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아서 따로 불렀을 뿐이에요. 인사하시죠. 제 옆에는 법무팀장님.”
“아! 네…….”
뜻밖에 법무팀장을 소개 받게 되자 나는 더욱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먼저 신 대리님에게 회사의 조치를 설명해 드려야겠네요. 장 과장님은 다른 부서로 이동하게 될 겁니다. 우리 신 대리님이 아주 구체적으로 정황을 인터넷에 적어 주셔서요오.”
인사팀장은 말꼬리를 길게 뺐다. 순간 사람 좋아 보이던 인상이 비열하게 느껴졌다. 이어서 법무팀장이 말을 받았다.
“신 대리님. 혹시 명확한 사실을 적시한 겁니까? 이거 잘못하면 명예훼손으로 걸릴 수도 있어요. 직원들 간의 문제라도 결국은 회사 이미지의 문제가 되죠. 그리고 회사 이미지에 문제가 생기면 회사도 법적 문제를 제기할 수 있고요.”
법적 문제라는 말에 소송, 변호사 고용, 법정분쟁, 손해배상 등등의 단어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내 표정을 잠깐 살피던 인사팀장이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우리 문제 복잡하게 하지 맙시다. 그냥 글 내려요. 그리고 이건 뭐 요식행위 같은 건데, 이 일에 대해서는 함구하겠다는 각서 같은 거예요. 그 아래 서명 란에 사인하시면 됩니다.”
나는 각서를 받아들고 사인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였다. 회사를 비방한 것도 아니고, 과장의 비행에 대해서 쓴 것뿐이었다. 그런데 회사가 나서서 내 입막음까지 한다는 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때 법무팀장이 내게 펜을 건네며 쏘아봤다. 나는 움찔하며 두 손으로 펜을 받아들었다.
회사의 뜻대로 글을 내렸다. 기자들이 연락을 해왔지만 일체 받지 않았다. 그사이 장 과장은 다른 부서로 이동했다. 그래 봤자 새로운 과장 자리로의 수평 이동이었다. 뭔가 큰일이 일어났던 것 같은데, 고작 과장 한 명이 물러나고 새로운 과장이 왔을 뿐이었다. 허무했다. 무엇보다 회사의 압박으로 너무나 손쉽게 글을 내려버린 내 자신이 실망스러웠다. 또 다른 종류의 양심의 가책이 심장을 찔러대기 시작했다.
그래서였다. 나는 더욱 열성적으로 촛불 집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거리에서 목 놓아 ‘민주주의’와 ‘정의’를 외쳤다. 그러면 이 부조리한 세상이 바뀌는 일에 힘을 보탠 것 같아서 조금은 후련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회사에 가서 김 부장 얼굴을 대하고 있으면 또다시 답답함이 차올랐다. 과장의 교체로 은경 씨의 사건이 마무리되었다고 생각했는지 김 부장은 또다시 내게 주말에 등산 가자고 조르기 시작했다. 나는 매번 주말마다 벌어지는 촛불 집회에 참가하기로 약속했다는 말로 빠져나왔다. 김 부장은 못마땅한 기색으로 촛불 집회에 참여한 모습을 인증 샷으로 찍어서 보내라고 했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김 부장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덕분에 나는 아주 열성적으로 촛불 집회에 참여하는 시민이 되었다.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 가결을 앞두고 있던 주에는 어마어마한 인파가 촛불 집회에 몰려들었다. 그 속에는 김 부장과 장 과장도 있을지 몰랐다. 나는 한 여성 단체의 깃발에 섞여서 걸었다. 여기라면 그들이 절대로 얼씬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곳에서 은경 씨와 만났다. 회사에서야 매일 보지만 촛불 집회에서 본 것은 그날 이후 처음이었다. 은경 씨의 표정은 예전보다는 좀 더 가벼워 보였다. 나는 은경 씨와 청와대로 가는 길을 나란히 걸었다.
“좋아 보여요.”
“그런가요? 그런데 아직은 아니에요.”
“왜요? 뭐가 또 남았나요? 과장님도 다른 데로 옮겨갔는데.”
“그렇다고 끝은 아니니까요. 회사가 바뀐 것은 없어요. 그러니까 그런 일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죠.”
“그럼 회사라도 바꿀 건가요?”
“네. 이왕 나서는 김에 그래야죠.”
“혼자서 가능하겠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이분들이랑 함께 해보려고요.”
은경 씨는 주위를 둘러보면서 말했다. 그때야 은경 씨가 왜 여성 단체의 깃발 아래 서서 행진을 하고 있는지 눈치 챌 수 있었다. 나는 은경 씨와 함께 청와대가 보이는 길목까지 말없이 걸었다. 아무래도 은경 씨를 둘러싼 사건의 제2막이 올라갈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사건에 내가 휘말릴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주말 촛불 집회가 끝난 다음날, 은경 씨는 사내에 성폭력 감시 기구와 피해자 상담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사내 인트라넷에 올렸다. 회사 앞에서는 여성 단체 사람들이 와서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그들의 요구도 은경 씨와 마찬가지였다. 다시 기자들이 나타났다. 지상파 메인 뉴스에 우리 회사의 사례를 들면서, 사내 성폭력 문제에 대해 관심을 촉구하는 기사가 뜨기도 했다. 회사는 발칵 뒤집어졌다. 회사의 추문이 지상파에 오르내리는 것은 회사가 가장 꺼리는 일이었다. 은경 씨는 또 한 번 김 부장을 비롯해 인사팀장 그리고 법무팀장에게 번갈아가며 불려 다니는 신세가 됐다. 우리 부서에 대한 강도 높은 감사가 들어오기도 했다. 그 결과 몇 가지 소소한 개선사항이 사내 게시판에 붙었다.
참다못한 김 부장이 폭발했다. 그는 은경 씨를 자리에 불러다가 작작 좀 하라고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은경 씨는 주눅 들지 않았다.
“그만 할 게 아니라, 언제든지 이런 일은 재발될 수 있으니까 이 기회에 새롭게 회사를 바꿔 보자는…….”
김 부장은 더욱 언성을 높이면서 은경 씨의 말을 잘랐다.
“듣기 싫어! 그걸 왜 나한테 얘기해? 회장님 만나서 얘기하라고. 그럴 배짱 없으면 은경 씨가 나가든가!”
“제가 나가면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길 거예요. 전 이 회사에 있을 거예요.”
은경 씨는 의외로 완강한 태도를 보였다. 그동안 그녀에게 닥쳤던 일 때문인지 사람이 한층 단단해진 것 같은 인상이었다. 그러자 김 부장이 사정조로 말했다.
“있을 거면 좀 조용히 있자. 인사팀장 말 못 들었어? 은경 씨 사례 하나 가지고 그런 기구를 만들 수 없다잖아. 그것도 다 예산이 드는 일이라고.”
“저 말고 분명히 다른 피해자도 있어요.”
“누가 있는데? 제발 좀 찾아와 봐. 인사팀장 말이 은경 씨 사례 말고 한두 건이라도 더 있으면 위에서도 정식으로 회사에 건의한다며?”
은경 씨는 나를 돌아봤다. 그 순간 나와 김 부장의 시선이 얽혔다. 김 부장은 헛기침을 하더니 갑자기 열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들어가 봐.”
김 부장의 모습이 파티션 아래로 사라졌다.
펄펄 뛰는 김 부장에게서 풀려난 은경 씨는 자리에 앉자마자 내게 쪽지를 건넸다. 저녁에 저번에 만났던 카페에서 다시 만나자는 거였다. 하지만 그날 저녁에는 은경 씨를 만날 수 없었다. 퇴근 직전 김 부장이 서류를 넘겼기 때문이었다.
그날따라 유난히 등 뒤에서 흘끔거리는 김 부장의 시선이 느껴졌다. 꺼림칙했다. 10시쯤 되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만큼 신경이 곤두섰다. 그때 김 부장의 인기척이 들렸다. 나는 키보드 두드리던 손을 멈추고 반사적으로 홱 몸을 돌렸다. 뜻밖에 김 부장은 봉투 하나를 꺼내 들고 서 있었다. 나는 그것을 멀거니 쳐다봤다.
“뭘 그렇게 봐. 요새 야근 많이 시키고 해서 상품권 하나 넣었어. 받아. 상사가 주는 건 김영란 법에도 안 걸리는 거야.”
김 부장은 내 양복 주머니에 억지로 상품권을 쑤셔 넣으려고 했다. 그 틈에 김 부장의 손길이 옆구리에 닿았다. 나는 무의식중에 움찔하며 몸을 뺐다. 그러자 김 부장이 오히려 놀란 얼굴로 두 손을 번쩍 들어 보였다.
“왜 그래? 나 아무 짓도 안 했어. 앞으로도 그럴 거고.”
김 부장은 주위를 둘러보다가 갑자기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나는 당황한 나머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 부장은 작심했던 말을 꺼냈다.
“이번만 용서해 줘. 나 하나 여기서 쫓겨나는 건 괜찮아. 그럼 우리 애들은 어떡해? 이번 한 번만 조용히 넘어가면 두 번 다시 귀찮게 안 할게.”
“이러지 마세요. 이럴 일이 아니잖아요.”
나는 그를 일으키려고 했다. 하지만 김 부장은 한사코 버텼다. 역시 힘으로는 그 덩치를 당할 수가 없었다.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잠깐 고민했다. 솔직히 은경 씨와 손을 잡을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면 나 역시 직속 상사인 김 부장과 회사의 압박을 버텨내야 했다. 그건 아마도 너무나 힘든 일이 될 터였다. 그렇다고 그냥 호락호락 물러나기도 싫었다. 고민 끝에 결론을 내렸다. 김 부장으로부터 어떤 담보물을 받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럼 각서를 써주실 수 있나요?”
김 부장은 고개를 들고 반색했다.
“각서만 써주면 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김 부장은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무릎을 털었다. 그동안 나는 종이와 펜을 김 부장에게 건넸다. 그는 내가 부르는 대로 각서를 받아 적었다. 내게 성추행한 사실을 인정하고 두 번 다시 원치 않는 신체 접촉을 하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각서는 김 부장의 사인을 받아 내가 갈무리했다.
다음날과 그 다음날, 은경 씨는 회사에서 마주칠 때마다 이번만은 용기를 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나는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대신 내 방 책상 서랍 깊숙하게 넣어 놓은 ‘김 부장의 각서’라는 담보물을 믿기로 했다.
그사이 은경 씨 사건에 대한 세상의 관심은 조금 더 부풀어 올랐다. 인터넷상에서 회사 제품에 대한 불매 운동이 거론되기 시작하자, 회사는 보도 자료를 냈다. 사내 성추행을 당한 직원에게 사죄하는 것은 물론, 성폭력에 대한 문제를 전반적으로 검토하고 재발 방지책을 세우겠다고 했다. 구체적인 방안은 추후 알려주겠다는 것도 덧붙였다. 장 과장은 보직에서 해임됐다. 그러나 해고되지는 않았다. 은경 씨와 법적 다툼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쨌거나 이 보도 자료를 낸 후 여론은 급격하게 식어 갔다. 인터넷의 기사도 한 달 만에 자취를 감추었다. 하지만 그동안 회사가 취한 조취는 아무것도 없었다. 대신 은경 씨에게 정직 6개월의 징계 처분을 내렸다. 독단적으로 외부 단체에 회사의 일을 누설해서 이미지를 실추시켰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후로 은경 씨를 볼 수는 없었다. 가끔 연락해 보고 싶기도 했다. 은경 씨가 회사를 상대로 싸워 주지 않았다면 나는 계속해서 김 부장에게 당하고 있었을 게 틀림없었다. 각서를 볼 때마다 김 부장이 아니라 은경 씨가 떠올랐다. 어쩌면 나는 그녀의 싸움에 무임승차한 존재인지도 몰랐다.
은경 씨가 나오지 못하게 된 후로 회사는 급격하게 예전으로 되돌아갔다. 은경 씨가 퇴사를 한 것도 아닌데, 그 자리는 앳된 비정규직 여직원이 메웠다. 그녀는 이제 대학 졸업반이라고 했다. 때마침 장 과장을 대신해서 변 과장이 부임해 왔다. 분위기상 회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기 싫었지만 참석하기로 했다. 곧 있으면 인사철이었고, 괜히 김 부장의 눈 밖에 나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그가 주는 인사고과를 잘 받아서라도 이 부서를 벗어나고 싶었다.
회식 자리에서는 별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니까 은경 씨가 당했던 일과 같은 일이 신입 직원에게 일어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그날 분위기는 변 과장이 주도했다. 그는 적극적으로 맥주에 소주를 섞거나 맥주에 양주를 섞어 돌렸다. 세 잔 정도 돌자 빠르게 취기가 올랐다. 그렇지만 소맥과 폭탄주는 쉼 없이 돌았다. 신입 직원을 대신해서 내가 마셔 주기도 하다 보니 어느새 내 주량을 훨씬 넘어서 버렸던 것 같다. 겨우 1차에서 나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참을 수 없이 목이 탔다. 머리도 지끈거렸고, 속도 울렁거렸다. 지독한 숙취였다. 게다가 아래쪽에서 뻐근한 통증이 느껴졌다. 뭔가 이상했다. 눈을 떴다. 거울로 된 천장에 내 모습이 비쳤다. 여기는 내 방이 아니었다. 천장에 거울이 있다면 아마도 모텔일 것이다. 몸이 너무나 무거웠지만 억지로 일으켰다. 이불이 흘러내렸다. 벗은 몸이 드러났다. 미니바에 있는 물을 찾아 마시고 정신을 차렸다. 불길한 생각이 들었지만 머리를 가로저었다. 설마…… 하지만 정신을 차릴수록 아래쪽의 통증이 도드라졌다.
되는 대로 옷을 주워 입고 모텔 로비로 내려왔다. 직원 창구로 가서 닫혀 있는 문을 두드렸다. 50대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졸린 얼굴을 내밀었다.
“무슨 일입니까?”
“저 물어볼 게 있는데요. 어제 제가 누구랑 여길 왔는지 해서요…….”
남자는 내 얼굴을 들여다보자마자 뭔가 생각난 듯 말했다.
“아! 어제 술에 만취해서 들어오신 분이구나. 어떤 남자분하고 같이 오셨는데…… 손님 직장 상사분인 것 같았어요. 손님이 취한 목소리로 부장님 뭐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그분이 참 자상하셨어요. 안 들어가겠다고 떼를 쓰는 손님을 달래서 겨우 방으로 올라가더라고요. 회사 가거든 부장님한테 죄송하다고 하세요. 손님이 그분 멱살도 잡고 난리가 아니었거든요. 아무리 취해도 그렇지…….”
남자는 눈살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그가 주제넘게 생각됐지만, 그런 걸 따질 겨를이 없었다.
모텔을 나와서 곧바로 병원으로 갔다. 그리고 항문파열이라는 진단서를 받아들었다.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지금이라도 김 부장을 찾아가 죽여 버리고 싶을 만큼 분노가 치밀었다. 때를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핸드폰이 울렸다. 김 부장이었다. 받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손가락이 조건반사적으로 잠금 해제를 풀었다. 핸드폰 너머로 김 부장의 다정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제 잘 잤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혹시 어제 일 기억나?”
이번에도 아무 말하지 않았다.
“서로 술에 너무 많이 취해서 뭐랄까 약간…… 오해가 생긴 거 같은데, 우리 만나서 이야기할 수 없을까?”
김 부장의 목소리에서 다급한 기미가 느껴졌다. 나는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를 간신히 가라앉히고 말했다.
“오늘은 토요일이니, 업무 얘기라면 회사에 가서 듣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전화를 끊었다. 욕을 해주지 못한 나를 자책했다. 계속해서 전화가 울렸다. 나는 핸드폰 배터리를 빼버렸다. 이제 그와 한 사무실에 있을 수는 없었다. 책상 서랍 속에 있는 각서를 꺼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월요일에 출근하자마자 곧바로 회사 감사실로 갔다. 사무실로 가봤자 김 부장과 마주칠 게 뻔했다. 그러면 문제만 복잡해진다. 하지만 막상 감사실 앞에 서자 선뜻 문턱을 넘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해서 그 안을 들여다보며 서성거렸다. 그때 누군가 내 어깨를 짚었다.
“뭐 해?”
깜짝 놀라 돌아보니 감사실에서 일하는 회사 동기였다. 차라리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회사 동기라면 이 일을 털어놓기가 훨씬 편할 것 같았다. 나는 그를 데리고 감사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일을 모두 이야기했다. 회사 동기는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결혼해서 애도 있는 사람이 그럴 리가 없다는 거였다. 나는 갖고 온 각서와 진단서를 내밀었다. 두 가지 서류를 받아든 회사 동기는 충격이라도 받았는지 말없이 두 눈만 깜빡거렸다. 나는 그에게 나지막하게 말했다.
“제발 소문나지 않게 해줘.”
“당연하지. 남자가 남자한테 당했는데 그럼.”
회사 동기의 말에 나는 또 한 번 낯선 남자 앞에서 벌거벗은 기분이 들었다.
일은 은경 씨 때처럼 진행됐다. 인사팀장과 법무팀장의 면담이 있었다. 각서와 진단서가 있었기 때문에 둘 다 별 말은 없었다. 김 부장은 신속하게 업무에서 배제됐다. 그러면 마음이 조금 더 편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내가 인사팀으로 불려가서 면담을 하고 김 부장에게 징계가 내려지는 동안, 나에 대한 소문이 온 회사에 퍼졌다. 회사 동기에게 철저하게 비밀로 처리해 달라는 말이 무색했다.


텅 빈 부장 자리를 보면서 피해자인 내가 한낱 가십거리가 될 줄은 몰랐다. 지금은 나를 두고 승진을 미끼로 오히려 김 부장에게 먼저 접근했다는 말까지 돌고 있었다. 김 부장 측에서 퍼트리고 있는 악의적인 소문이 먹히는 느낌이었다. 아직까지 그는 부장이었고, 그의 아버지는 회사 주거래 은행의 사외이사였다. 장 과장 때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사내의 소문은 늘 조금이라도 힘 있는 자들의 편에서 흘렀다. 결과적으로 모든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김 부장은 애초에 내게 써준 각서 따위에 신경이나 썼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왜였을까? 문득 사람대접을 받고 싶다는 은경 씨의 말이 떠올랐다. 나는 변 과장이 준 서류를 젖혀 둔 채 자리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별일이 없으면 변 과장은 우리 부서의 차기 부장이 될 거라는 설이 파다했다. 변 과장이 변 부장이 된다고 한들 나는 그에게서 사람대접을 받을 수 있을까? 나를 두고 아무렇지도 않게 게이 운운하던 사람이다. 아무래도 자신이 없었다.
야근을 하다 말고 인터넷 토론 게시판에 접속했다. 그리고 한때 은경 씨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나의 사연을 글로 적어 올렸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억울함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회사 사람들이 모른 척한다면 세상 사람들만이라도 나의 억울함을 알아주었으면 했다. 글을 쓰고 올릴 때까지는, 앞으로의 일이나 회사와의 관계가 생각나지 않았다. 하지만 ‘올리기’ 버튼을 누르고 나서야 비로소 내가 쓴 글이 어떤 파장을 불러올지 가늠되기 시작했다. 몇 분 동안 망설이다 ‘삭제’ 버튼을 눌렀다.
그러나 나의 글은 삭제되지 않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에게 공유되고, 캡처 되었다. 이튿날에는 바이러스처럼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갔다. 내가 남자라는 점 때문에 사람들은 더 자극적으로 받아들인 것 같았다. 갑자기 여기저기서 전화벨들이 울려댔다. 회사에 일반인들의 항의 전화와 기자들의 문의 전화가 쇄도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것은 가상 페이지의 글자가 현실에서 내고 있는 마찰음이기도 했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그동안 원했던 것이 바로 이 마찰음이었다는 것을.
여론이 일기 시작하자마자 회사는 신속하게 보도 자료를 냈다. 철저한 성폭력 대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이런 일이 반복되어 정말 죄송하다고 대표가 나와서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철저한 성폭력 대책은 철저하게 논의될 뿐이었다. 여론이 어느 정도 수그러들자마자 나는 회사의 일을 외부에 발설해서 회사 이미지를 실추시켰다는 이유로 6개월의 정직 처분을 받았다. 은경 씨의 과거가 정확하게 나의 현재로 와서 겹쳐졌다.
징계가 확정된 날, 나는 김 부장을 고소하기로 결심했다. 또한 회사를 상대로 징계무효소송도 진행하기로 했다. ‘남자에게 당한 남자’라서 더욱 숨기고 싶었지만, 그래서 내가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남자에게 당한 남자’나 ‘남자에게 당한 여자’나 모두 ‘강자에게 당한 약자’일 뿐이었다. 다 잃고 나니 비로소 누군가를 물어뜯고 싶은 오기가 생겼다.
회사를 나와 변호사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광화문을 지나가는데 수많은 인파가 모여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헌법재판소에서 대통령 탄핵 심판 결과가 나오는 날이었다. 시계를 봤다. 변호사와의 약속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나는 잠시라도 역사적인 현장에 함께 있고 싶었다. 어쨌거나 나 역시 열성적인 촛불 시민이었으니까.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탄핵 심판 결과가 방송될 전광판 앞에 섰다.
오전 11시 21분. 광화문에 세워진 전광판에 탄핵을 인용한다는 판결이 뉴스로 전해졌다. 그와 동시에 온 거리가 환호성으로 뒤덮였다. 한때 광장을 뒤덮었던 ‘민주주의’와 ‘정의’를 외치는 구호도 터져 나왔다. 그러나 나는 환호하지 못했다. 대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저 거대한 승리는 나에게 와 닿지 않는 것일까?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뜻밖에도 은경 씨였다. 받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무의식적으로 회사 건물을 돌아봤다. 멀리 검은색 빌딩이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며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반대편으로 짙은 그림자 또한 드리워져 있었다. 완연한 봄이 되기 직전의 쌀쌀한 날씨 때문인지 그 그림자는 미처 녹지 못한 잔설(殘雪)처럼 시렸다. 그래서였다. 은경 씨가 자기 집 근처 카페에서 건네던 따뜻한 차 한 모금이 못 견디게 그리웠다. 아직, 목이 탔다.
















작가소개 / 배상민

2009년 계간 『자음과모음』 중단편 부문 신인상 「조공원정대」 외 2편. 2012년 장편소설 『콩고, 콩고』, 2013년 소설집 『조공원정대』, 2015년 장편소설 『페이크픽션』. 현 계간 《자음과모음》 편집위원.


《문장웹진 2018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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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07-01
소금 샹들리에

소금 샹들리에 정한아 호주에 사는 김이 오랜만에 귀국해서 친구들이 다 같이 모이기로 했다. 4명이 만나는 건 대략 7년여 만이었다. 방을 잡고 밤새 보자고 해서 오기 직전까지 망설였는데, 남편이 등을 밀었다. 정민이와 자신에게도 내가 없는 날이 필요하다고 큰소리를 치더니 정말 밤새 전화 한 통 없었다. 친구들과는 대학 동기였다. 전공은 문예 창작이었는데, 나는 2학년까지 다니고 학교를 그만뒀다. 그렇지만 정작 작가가 된 사람은 나뿐이라고 친구들이 투덜거렸다. 나는 작가가 아니라고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었다. 그들은 십 수 년 전 내가 낸 단 한 권의 책을 기억하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 세 명 모두 미혼이었고, 아이를 가지지 않았다. 놀라울 정도로 예전 그대로인 친구들 사이에서 나만 철 지난 옷차림에 좀처럼 대화에도 섞이지 못했지만, 그런 것 때문에 마음이 상하지는 않았다. 오랜만의 서울 나들이에 술자리도 즐거웠다. 좋은 친구들이었다. 7년 전 정민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 판정을 받았을 때 그들은 자신의 일처럼 울어 줬고, 이후에도 종종 아이의 간식과 선물을 집으로 보내 줬다. 서서히 연락을 거둔 것은 내 쪽이었다. 애써 관계를 유지하는 일이 힘에 부쳤을 뿐, 그들에게 섭섭한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집이 아닌 곳에서 밤을 보낸 적이 없었다. 다들 술에 취해서 침대로 간 뒤에도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아 휴대폰만 들여다보았다. cctv 속 거실은 엉망이었다. 엎어진 식판, 사방에 흩어진 블록 조각, 길게 늘어진 옷가지들. 남편은 불도 끄지 않고 아이를 재우러 방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나는 정지화면 같은 그 풍경을 한참 바라보다가 해 뜰 무렵에야 겨우 잠이 들었다. 다음날 우리는 점심을 먹고 헤어지기로 했다. 맛집마다 대기가 길어 종로의 좁은 골목을 돌고 또 돌았다. 앞장서 구글 맵을 보며 걷던 김이 갑자기 작은 서점 앞에서 멈춰 서더니 책을 사야겠다고 말했다. 지난 이사 때 내 책을 분실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집에 돌아가서 책을 다시 보내 주겠다고 김을 달랬다. 다섯 평도 안 되어 보이는 그 작은 서점에 내 책이 있을 리는 만무했기 때문이다. 김은 막무가내로 서점에 들어갔다. 할 수 없이 그녀를 따라 들어갔다가 전면 책장에 전시된 내 책을 발견했다. 죽은 친구를 만났다고 해도 그처럼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미애 씨!” 그곳에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 우아한 노부인이었다. 린넨 바지에 화이트 셔츠, 큼지막한 호른 목걸이를 한 여자는 환하게 웃으면서 나를 바라봤다. “반장님?” 나는 말끝을 흐리며 물었다. 여자는 성큼성큼 내 앞에 다가와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누군가 나를 그렇게 안은 것이 너무 오랜만이라 온몸에 힘이 풀리는 것 같았다. 그녀는 오래전 나와 함께 공부했던 문우였다. H 백화점 문화센터 소설 창작 교실의 반장. 친구들이 책을 구경하는 사이 나는 그녀와 짧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ldqu

  • 관리자
  • 2024-07-01
그동안의 정의

그동안의 정의 최예솔 작정하고 사라진 사람은 작정하고 찾아야만 한다. 나는 윤정수를 작정하고 찾지 않았다. 보통의 남매 사이라는 게 정확히 어떤 건지는 모르겠지만 윤정수와 나를 그냥 보통 남매, 라고 하기에는 좀 어렵지 않을까. 윤정수는 나보다 4년 먼저 태어났다. 그리 적지도, 그리 많지도 않은 애매한 나이 차이 덕분에 윤정수와 나는 딱히 친해지지 못했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윤정수는 중학교에 갔고,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윤정수는 고등학교에 갔다. 물론 윤정수와 내가 영 친해지지 못한 건 우리의 나이 차이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윤정수는 내게 없는 사람에 가까웠다. 말수도 없고 센스도 없고 자존심도 없고 공부머리도 없고 돈도 없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나? 아무튼 남매 사이에 정이라도 있었다면 걱정이라도 했을 텐데 그럴 이유조차 없었다. 쥐뿔도 없는 윤정수니까. 특이사항이라곤 개그맨 윤정수와 동명이인이라는 것 정도밖에 없는. 그러니 윤정수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집을 나갔다고 해도 이상할 것 하나 없었지. 뭐 내가 찾는다고 윤정수가 나타났을 거라는 보장도 없지만 나는 막연히, 어련히 때 되면 나타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윤정수는 죽을 때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물론 내가 죽은 것은 아니다. 윤정수가 죽었다. 내 나이가 이제 서른이니까, 윤정수는 서른넷에 죽었다. 이제 내게 남은 혈육은 없다······ 아닌가? 고모. 그렇게 부르지 마. 왜요. 낯설어. 저도 고모가 낯설어요. 윤현수는 맹랑하다. 윤정수와 장현아의 딸이라고 해서 윤현수. 그거 좀 유치하지 않니? 물었을 때 윤현수는 뭐 어때요 엄마아빠말곤 모르는데, 하고 대답했다. 이제 나도 아는데? 하니까 이젠 고모도 모르는 척해 달라고 했다. 참 나 어디서 이런 게 굴러왔는지. 현수야. 네. 네 엄마 입국 날이 언제라고 했지? 다음 주 토요일이요. 아직 한참 남았네. 고모도 고모 할일을 해요. 시간 금방 갈걸요. 알겠다 그래. 윤현수를 데리고 온 사람은 장현아다. 이제는 나흘쯤 됐으려나. 아침부터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하도 시끄러워서 나가 봤더니 장현아가 윤현수의 손을 붙잡고 서 있었다. 장현아는 다짜고짜 윤정수를 아느냐고 물었고 나는 오랜만에 듣는 윤정수의 이름에 잠깐 벙쪘다가 네, 저희 오빠네요, 하고 대답했다. 조카입니다. 그날 장현아의 대사를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건 도저히 내가 아는 사람이 뱉을 만한 말이 아니어서 대사라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겠다. 아직도 문득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윤현수가 정말 나의 조카가 맞고 장현아가 정말 나의 새언니가 맞을까. 가족관계라는 게 그렇게 단순하게 정리되는 거라면 이제까지 윤정수와 나는, 또 윤정수와 나와 우리의 부모는, 왜 이렇게 흩어지거나 죽거나 혼자 남을

  • 관리자
  • 2024-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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