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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미리 보는 올해의 시집] 미인의 집 박준 다시 말하지만 골목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어두운 골목, 사실 사람의 몸에서 그림자보다 먼저 튀어나오는 것은 노래다 울지 않으려고 우리가 부르던 노래들은 하나같이 고음(高音)이다 노래가 다음 노래를 부르고 그림자가 다른 그림자를 붙잡는 골목이 모래내에는 많다 ─ 「모래내 그림자극」 부분 나는 빠른 음악을 듣지 못한다. 빠른 음악을 들으면 아무것도 못 하고 화만 낸다. 이것도 병이라면 병이다. 라디오를 좋아하지만 오래 듣지 않는다. 세 곡에 한 곡은 꼭 빠른 박자의 노래가 나오기 때문이다. 가끔은 클래식도 내게 너무 빠르다. 재작년부터 인터넷 라디오 방송을 진행해 오다 얼마 전에 그만두었다. 일요일 밤마다 세 시간 동안 혼자서 시를 읽고 산문을 읽고 소설을 읽었다. 중간 중간 트는 노래의 선곡도 내가 혼자 했다. 물론 내가 아는 노래들만 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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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한 번은 아무것도 아니다
[2012년 미리 보는 올해의 시집] 한 번은 아무것도 아니다 김이강 어떤 노동 누군가 자신의 아버지가 들판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고 이렇게 쓴다. 나는 뭔가에 홀린 듯 그를 바라본다. 아버지는 단순하면서 아주 습관적으로 움직이신다. 사람들은 그가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지 않을 정도다. 그의 걸음걸이는 일정한데, 마치 제대로 착지할 자리를 찾고 있는 듯이 시험적으로 발을 디뎌 보는 것 같다. 그가 들고 있는 낫은 아무런 인위적 강제성 없이 소박하게 제 갈 길을 가고 있다. 아버지의 낫과 움직임을 바라보며 이런 글을 쓴 사람은 트로츠키다. 벤야민은 트로츠키가 자서전에 적어 놓은 이 구절로부터 노동이 입증하는 정직함과 같은 것을 본다. 그것은 다름 아닌 성공을 마주하는 정직한 태도다. 낫이 ‘성공적으로’ 한 번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같으면서도 새로운 움직임이 채워진다. 그것이 매번 새롭게 반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