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2)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미리 쓰고, 또 쓰는 작가의 말
[2012년 미리 보는 올해의 소설] 미리 쓰고, 또 쓰는 작가의 말 임수현(소설가) 2008년 여름부터 소년(들)과 함께 살았다. 태풍의 끝자락이었던 것도 같고, 폭염의 한가운데였던 것도 같다. 더위가 지긋지긋했는지도 모르겠고, 비바람이 그리웠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해 여름 소설가가 되었다. 지레 소설을 더는 쓸 기회가 없을 거라고 단정하고, 긴 소설을 써야 한다고 다짐했다. 그걸로 다시 새로운 시작을 하고 싶다고 배짱을 부렸다. 그건 소심함을 가장한, 상처받지 않기 위한 심드렁한 연극이었는데, 그게 들통 났는지, 다행으로 짧은 소설들을 쓸 기회가 계절처럼 찾아왔다. 하지만 나는 다른 엄살을 찾아 헤맸고, 생활은 늘 간절기를 살듯 상큼하지 않았다. 나는 늘 여러 감정 사이에 낀, 감정을 오염시켜 들여다보는 게 버릇이었으니까, 그런 변덕이 제법 마음에 들었나?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세 개의 노트
[2012년 미리 보는 올해의 소설] 세 개의 노트 김성중 작가에게 재산이 있다면 그간 쓴 작품일 텐데, 그런 면에서 나는 ‘원룸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작년에 첫 책이 나왔으니 이제 방 한 칸 마련한 셈이다. 세간은 모두 아홉 개. 아홉 편의 단편을 쓰는 동안 삼 년이 금세 지나갔다. 시간이 너무 빨라 어리둥절하기까지 하다. 청탁을 받아 뛸 듯이 좋아하고, 책상에서 끙끙거리며 지옥 같은 마감을 겨우 마치고, 한동안 친구들을 만나 영화를 보거나 술을 마시다가, 머릿속이 데친 시금치처럼 풀어지면 더럭 겁이 나서 다시 책상으로 돌아가고…… 이런 그래프를 반복했을 뿐인데 몇 년이 녹아버렸으니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다는 말이 남의 얘기가 아니다. 열두 편(책에 수록하지 않은 단편과 그 후에 쓴 단편들까지 포함하여)의 단편을 거쳐 오는 동안 내 노트북에는 〈장편거리〉라고 이름붙인 별도의 파일이 생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