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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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시·시조 「진눈깨비」외 6편
진눈깨비 김지숙 우리가 구름이지 않은 이유는 없다 차갑게 식어 있는 물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는 동안 어제처럼 뭉글뭉글 익숙해지는 얼굴 끝내 나누지 못했던 말들은 예언이 되어 문득 와서 무너지며 완성되고 그 텅 빈 곳에서는 한쪽을 잃었거나 나일론 실 같은 걸 발목에 칭칭 감은 새들 걸어 다닌다 가끔 어떤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기도 한다, 더 이상 떠나지 않는 새들이 바다의 기억을 쪼아 대는, 부리가 부서지는 줄도 모르고 크리스마스는 짧고 추웠다 어깨를 움츠린 채 서로 떨어져서 서성이는 사람들 사이 잠들지 못하는 아픈 아이의 밤은 희고, 돌아갈 곳 없는 영혼처럼 마른 나무들이 길에서 비껴선 채 얼어 갔다 미처 수거하지 않은 플라스틱 트리 꼭대기에서 은박 별 반짝였다 작별의 문장은 이미 충분히 완성되었고 오래 오래 건네야 할 다정한 인사가 남았을 뿐 관측 기록도 없이 다만 이론적으로 오후에 지는, 새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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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시·시조 「국경의 밤」 외 6편
오크와 바닐라 향이 나는 사과들 신체 인식 테스트 앞에 서 있습니다 단단하고 윤이 나는 멋쟁이 사과를 떠올리며 모자를 쓰고 차례를 기다립니다 신체 이곳저곳을 바코드로 찍어봅니다 새해 파티를 위해 구워야 할 빛나는 트리 버펄로를 멈추는 손가락의 의지 또는 방향 이 폭력을 있는 지팡이 그대로 부르세요 즐기는 펍의 남자들은 남성성을 해체하고 에밀리는 아직 파리에 있어요, 왜 우리는 여전히 지켜보고 있습니까? 70세 이후 섹스의 기쁨(그리고 도전) 나는 애플 에어 태그와 GPS 추적기를 사용하여 당신의 모든 움직임을 보았다 그러나 그의 할렘 생활은 계속 부름을 받았습니다 수요일 저녁 브리핑 과거의 시간 읽기 아기는 통로의 어느 쪽에 있습니까? 미완성 지하실은 탈출과 재창조를 허용할 수 있다고 작가는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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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마음은 언제나 외로운 파수꾼
일생 동안 [천국의 나날들], [씬 레드 라인], [트리 오브 라이프] 같은 몇 편의 위대한 작품만을 만든 과작의 은둔하는 영화감독 테렌스 맬릭의 프로덕션 디자이너인 잭 피스크는 훌륭한 세트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처럼 최소한의 정보만으로도 이야기와 정서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거기서 나는 ‘세트’란 말을 ‘연극’이라는 말로 바꾸고 싶은 충동을 받는다. 물리적인 키뿐만 아니라 마음의 크기마저 한없이 작은 난쟁이 같은 한국 연극 현장의 왜소함을 재확인하는 외롭고 쓸쓸한 밤이다. 2008년 5월 1일 목요일 선돌극장. 젊은 연극인들의 산실. 게릴라극장이 극단 연희단거리패의 독채에 가깝고 연우소극장이 극단 연우무대 중심으로 편재돼 있으며 연극실험실 혜화동일번지가 많이 노쇠해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선돌극장의 선전은 한국 연극계에 신선한 활력을 불어넣어 주고 있다. 이름도 좋지 않은가, 선돌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