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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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편 [세계명작 가상인터뷰_02]
● 유령 : 태양 때문이라고 했지. 내 단도에서 비친 빛이 그 자의 눈가에 비쳤어. 그 자는 그걸 마치 칼처럼, 내가 자기를 공격하는 것처럼 여겼지. 그래서 그 자는 나를 쏘았고 잠시 후에 네 발을 더 쏜 거야. ‘가갸’라고 말하면 ‘거겨’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 초록불 : 그것 참 대단하군요. 태양 때문에 사람을 죽인단 말인가요? 그런 식이라면 인류는 벌써 전멸했겠는데요? 태양은 매일 떠오른다고요. 그 전에는 뫼르소를 만난 적이 없었나요? ● 유령 : 만났지. 우리는 싸우기도 했어. ♣ 초록불 : 역시 그랬군요. 원한이 있었네요. 무슨 일로 싸운 겁니까? ● 유령 : 레이몽 때문이지. 창고 감독 레이몽, 그 자 때문이야. ♣ 초록불 : 창고 감독이라고요? 무슨 창고를 감독하는지요? ● 유령 : 여자 창고지. 놈은 여자를 뜯어먹고 살아. 그러니까 창고는 여자인 거지. ♣ 초록불 : 인간 말종이군요.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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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숨을 참는 버릇
숨을 참는 버릇 김호성 발을 구른다 바퀴가 생긴 빈 무대가 굴러온다 배를 부여잡고 쓰러진 사람과 눈을 감은 사람 내 무릎을 물어뜯는 당신도 모두 무대 위로 갈라진 바닥에서 쥐들이 나온다 높아졌다 낮아지는 세계 숨어 사는 땅굴의 목소리들 떠오르는 검은 태양 당신 말고도 살아가는 건 많은데 어떤 그림자는 뒤엉키고 어떤 그림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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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정오
정오 이현승 머리통이 익을 것처럼 볕을 내리 쬐는 태양 아래서는 모든 것들이 골똘하다. 생각이 생각을 낳고 생각이 생각을 낳아서 담쟁이 저리 뻗어나가고 뻗치고 뻗쳐서 멎은 자리 담쟁이는 담쟁이를 지우고 생각이 생각을 지워서 만상이 저리 골똘하다. 만상이 한 점 골똘하다. 만상의 자리에서 올려다보면 세상을 태울 듯 불볕을 내리 쬐는 태양도 한 점 골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