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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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청춘
청춘 ―랭보를 추억함 우대식 남쪽에는 꽃이 피었다 바람이 분다 그곳이 해변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가슴 붉은 새가 울 때 바닷가에 비가 내리고 꽃잎들이 휘날렸을 뿐 살고 싶다, 살고 싶다 새떼들의 죽음으로 그은 해안선에서 너의 이름을 불러본다 파란 내 무릎이 가엾다 하얀 그대 얼굴도 한없다 바람이 분다 내 발목은 집시처럼 가늘다 어느 먼 곳이든 갈 수 있다 강철로 된 서늘한 여자가 있는 곳으로 바람의 지도를 따라 나설 때 또, 바람이 분다 그곳이 해변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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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숨겨진 보물 같은 책 이야기]공상은 풍선껌 같은 것
『호밀밭의 파수꾼』의 계보를 잇는 청춘 사소설의 면모를 지니고 있지만 그보다는 우디 앨런의 유머 섞인 수다가 떠오르는 자학 청춘 소설에 가깝다. 고뇌와 깊이는 찾아보기 힘들고 뒤죽박죽, 엉망진창이라는 단어가 더 잘 어울리고 기상천외한 망상이 매연처럼 뭉게뭉게 피어나는 소설인 것이다. 이 글을 읽고 나서 실제로 이 책을 찾아 읽은 누군가가 ‘당신(그게 작가든 아니면 추천하는 나든)이 뭔데 나의 무지갯빛 꿈을 짓밟는 거냐’고 항의한다면 할 말은 없다. 대학 생활이 이렇게 찌질한 거라면, 이런 대학생이 될 거라면 대학엔 가지 않겠다고 선언해도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차츰차츰 이 소설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에게 공감하게 될 것이다. 인간이란 누구나 얼마쯤은 찌질한 면을 가지고 있으니까. 대학에 들어가면 의외로 많은 신입생들이 우울함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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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사춘기
사춘기 권혁웅 인디애나 주의 단풍나무들은 17년마다 나이테를 부쩍 키운다 17년 매미가 타고 오를 수 있도록 허리와 배에 힘을 주는 것이다 이제 다 큰 매미들이 졸업식 날 교복을 찢은 아이들마냥 새빨갛게 몰려나온다 줄무늬다람쥐가 탈자처럼 매미들을 골라내도, 너무 많이 먹은 새들이 나는 걸 포기해도 매미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5월은 푸르구나, 다 자란 매미들은 수컷만 폭주족이다 매미의 발음근은 소음기를 뗀 오토바이여서 인디애나 주를 미시시피 강까지 떠메고 갈 기세다 환골은 없이 탈태만 하는 그 어린것들을 위해 17년 동안 나무는 수액을 내었다 매미는 나무에 안겨 어른이 되고 사랑을 나누고 그리고 죽는다 열흘 동안의 청춘, 그 다음은 없다 그 집은 나무 위에 지어진 탓에 목관이다 1조 마리가 한꺼번에 비료가 되었으므로 나무들은 17년마다 나이테를 부쩍 늘인다 어린것들 대신에 나이를 먹었으므로 뱃살이 좀 붙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