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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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수필 심각한 질문
[아르코문학창작기금 - 수필] 심각한 질문 장미숙 호젓하고 맑은 아침이었다. 차가 다니지 않는 넓은 길은 여유와 호기를 느끼게 했다. 게다가 초록이 무성한 계절, 힘껏 자전거 바퀴를 돌렸다. 한창 물이 오르기 시작한 나무들이 떼 지어 뒤로 달아났다. 강아지를 데리고 나온 아주머니도 행인2처럼 훌쩍 지나갔다. 앞에는 고등학교 남학생들이 걷고 있었다. 그들의 경쾌한 움직임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발걸음에 실린 젊음이 어둠을 박차고 나온 햇살처럼 빛났다. 빗방울이 통통 튀어 오르듯 그들의 몸놀림은 싱그러웠다. 늙은 몸으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발랄함이 상쾌한 아침과 잘 어울렸다.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내 연배쯤 되어 보이는 중년 아저씨 한 분이 앞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자신의 세계에 갇힌 듯 느릿느릿한 발걸음이었다. 그의 늘어진 행동을 의식하며 페달을 힘껏 밟았다. 그에게서 나의 늙음을 자각하긴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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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명절의 질문
명절의 질문 서효인 아이에게 너무나 많은 할아버지가 있다는 걸 아직 잘 설명할 수 없어서 어른이 덜됐다고 느낀다 어른이 뭔데? 아이는 악마처럼 입에서 불지옥을 뿜는다 할머니를 어머니로 두는 것이지 왜? 너 때문이지 왜? 지옥의 입구를 가래나 호미로 막고 싶다 가래와 호미의 생김새를 모르듯 네 할머니의 불행과 행복을 나는 모른다 한 번도 관심이 없었고 그걸 아이는 확인받으려 하는 것 같다 왜? 할아버지가 둘이야? 나는 입이 무거운 농사꾼이 되어 땅을 고른다 거기에 너무나 많은 마늘이 있었다 왜냐면 우리에게는 너무 많은 할아버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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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계피의 질문
계피의 질문 서윤후 아버지가 되는 꿈을 꿨다. 아들은 계피나무 우거진 언덕에서 사탕에 베인 혀로 휘파람을 불었다. 박하향이 흐르는 곳으로 담을 넘다가 깨진 무릎에서 나던 피는 언제부터 흐르던 생일일까. 계피사탕을 문 나의 어머니가 아들을 불렀다. 내 이름에선 왜 계피 냄새가 나지 않을까. 아들은 자라는 동안 뼈에 그늘이 드는 병에 걸렸다. 햇빛에서 작아지는 아들을 업고 계피나무 숲으로 갔다. 좋지도 싫지도 않은 그런 산책을 하다가 아들은 넘어져 주머니 속 박하사탕이 깨졌다며 울었다. 맛있을 것 같아서 오랫동안 남겨 둔 사탕을 그만 까마득하게 잊어버려 울었던 사람이 있었지, 그게 누군데요? 꿈에서 작별인사 할 때, 아들은 나에게 어디 가냐고 물었다. 심부름 할 것이 있단다, 아들이 싫어하는 계피사탕을 주머니에 가득 넣고서 꿈인 줄 알았는데 정말 꿈이라서 안도하면 나는 도둑으로 몰리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