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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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침묵
여자란 것들은 전부 죄악 된 존재들이다. 나중에 우리에게 새로운 복음을 전한 ‘그들’은 여자란, 스스로의 죄로 인해 주기적으로 피 흘리는 더러운 것들이라고 설교했다. 여자를 멀리하라. 될 수 있다면 시선조차 마주치지 않도록 조심하라. 너희들의 두 눈이 더럽게 오염 될까 두렵구나. 그러나 완전한 금욕을 할 수 없다면, 차라리 어설픈 금욕 대신 완전한 방종을 택하라……. 우리는 정말이지 무엇도 알 수 없었다. 파멸의 구덩이는 우리를 한번에 삼키기 위해 서서히 입을 벌리고 있었다. 훗날 본당신부는 열네 살 된 붉은 머리 계집아이를 마녀, 라고 칭했다. 과부인 어머니가 차린 주점의 뒷방에서 그 어린 것이 어찌나 크게 여자의 은밀한 기쁨을 크게 소리 내었던지, 주변을 지나던 마을 사람 몇몇이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여 우르르 소리가 들린 현장으로 몰려갔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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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미궁과 미로
그리고 십중팔구 돌아 나오다가 또 그 ‘초조’라는 죄악 때문에 또다시 길을 잃었다고 생각하며 다시 반대로 걷게 되는 거야. 그런 거라네. 인생은 미궁처럼 갈라지는 길도 교차점도 없는 외길인데, 그 위에서 우리들만이 진자처럼 우왕좌왕 떠돌다 생을 낭비하게 되는 거지. 거듭 말하지만 미궁은 갈림길이 전혀 없는 길이라네. 갈림길은 사람의 마음속에 정확히 말하자면 초조 속에 있는 거라구, 미궁 속이 아니라.” 나는 뭐든지 대꾸를 하고 싶어졌다. 한 사람은 그저 말하고 한 사람은 듣기만 하는 관계란 결코 건강한 관계가 아니다,라는 게 나의 생각이었으니. “그게 무슨 상관이지, <꿈의 정원-첫 번째 주회로를 타고 9시 방향을 향해 시계 방향으로 돌다>라는 거창한 제목과는?” 나는 제목을 끝까지 암기하여 말할 수 있었던 내게 상이라도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거기가 사람들이 초조를 이겨내는 거의 유일한 곳이라고 할 수 있다네. 나 역시 마찬가지고.” “뭘 어떻게 이긴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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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공동체를 허물고 세우는 소설 건축술
(「회색괴물」, 『펭귄뉴스』, 문학과지성사, 2006) 김중혁의 소설은 “비경제적인 짓”은 “죄악”(「무용지물 박물관」)이라고 단정하는 자본의 논리를 향해 무용해 보이는 것들의 충만한 존재성과 절대적 필요성을 설파하고, 인간의 이기심을 가장 잘 활용한 자본주의 체제는 그 이기심을 극단으로 밀어 붙임으로써 교란할 수 있다(「바나나 주식회사」)는 발상을 내비친다. 그 와중에 자본주의 시스템에서는 무용지물로 간주되는 것, 다시 말해 실용성과 효율성을 상실한 사물들이 통념과 달리 체제와 삶을 풍성하게 하는 소중한 존재로 부각된다. 이를테면, “살아서 말을 거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타자기(「회색괴물」), 상상력으로 길을 찾는 지도(「에스키모, 여기가 끝이야」), “바퀴도 없고 페달도 없고 안장도 없”는 시시한 자전거(「바나나 주식회사」) 등이, 그 무엇으로 환원될 수 없는 풍부한 결을 지닌 단독적 사물로서의 위상을 확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