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849)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이야기
이야기 황혜경 마음 천장에 붙은 가스 풍선 밖을 향하려는데 못하게 가두네 다크실버하늘다크푸른하늘골드블루스카이다크라운지 이상한 조합의 문자들처럼 푸르다가 말 알 수가 없는 중년 넘어 노년의 신사들 폐공장 실내처럼 아무것도 안 하고 참고 있고 우리가 알고 있는 걸 먼저 알고 있는 듯하게 앞마당이 있고 찾아오는 새가 있고 어제의나도오늘의나다오늘의나는어제의내가아니다오늘의나도내일의나다내일의나는오늘의내가아니다아니었다아닐것이다아니더라아니었다더라아닐것이라더라 남들이 더 나 같을 때가 있기 때문에 나는 이 얼굴만 보고 이 얼굴에 있는 눈을 혜안으로 설정하고 처음 가진 얼굴이 마지막 얼굴은 아니더라도 변하는 얼굴 중에서 가까운 표정을 발견할 때면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무겁지 않고 수평을 이루며 타는 공중 시소 가스 풍선 날마다 하나쯤은 어딘가를 날아가고 있고 누군가 놓쳤고 나는 되지 못했는데 되려고 힘쓰는 것을 볼 때면 이어지고 있는 이야기를 계속하라고 말하고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이야기
이야기 - 겨울의 모자 유희경 모자는 젖어 있다 사내는 모자를 책상 위에 올려 둔다 젖은 모자는 불길하다 모자는 사내의 것이 아니다 날갯죽지에 부리를 묻고 떠는 겨울밤 비둘기처럼 모자는 주인을 잃었다 가엾게도 창밖으로 쏟아지는 눈 모자를 쓴 모자의 주인은 눈을 맞으며 이곳으로 왔을 것이다 모자를 잃어버린 모자의 주인은 어디로 갔을까 사내는 창가에 몸을 기대고 창밖을 본다 사내는 찾고 있다 거리에는 이마를 내놓은 채 오가는 사람들 눈을 맞으며 그들은 자신들의 모자를 찾아 돌아가는 중이라고 사내는 생각해 본다 노래 같네 제목을 잊어버린, 나는 이 어둠이 마음에 드네 그런 가사로 시작하는 노래같이 모자는 어둠 속에서 초인종이 울리기를 문밖 어깨에 눈 쌓인 모자의 주인이 멋쩍은 웃음을 흘리며 서 있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멀리 누가 눈을 치운다 삽이 바닥을 긁는 소리 삽이 돌부리에 걸려 덜컥 멈추는 소리 그러나 초인종은 울리지 않고 모자의 젖음은 말라 가고 있다 사내는 망설이다가 덜 마른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이야기
이야기 - 늦여름 아니면 초가을 유희경 늦여름 아니면 초가을 기억은 믿을 수 없다 아버지는 모로 누워 계셨다 한들거리는 거미줄 거미는 보이지 않았다 거미는, 숨어 있단다 거미줄을 건드려 보렴 하지만 나는 무섭다 마루가 삐걱거리는 소리 수십 년째 말라 가면서 아버지는 돌아누웠다 그럴 때의 냄새 그럴 때의 온기 거미줄을 건드리지 않은 것처럼 아버지의 등에도 손을 댈 수가 없었다 그러니 거미도 아버지도 움직이지 않았다 비어 있을 거라는 가정은 어째서 하지 않았던 것일까 보이지 않으면 숨어 있는 것일까 엉금엉금 기어 문 쪽으로 달아나는 그림자 문 아래 틈으로 밀어 넣었다가 거두는 빛의 손 잡아야지 도망칠 수 없도록 늦여름 아니면 초가을에 기억은 믿을 수가 없어 나는 아직도 무섭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