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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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날아가는 재봉틀
마치 부화(孵化)할 알을 품는 듯 나무책상을 끌어안은 새. 노인은 마음에 새의 둥지를 지어주고 새와 나란히 늙어간다. 나는 부리에서 실밥을 빼내던 노인에게 헐거운 둥지를 건넨다. 가장 낮은 세상에서 가장 연한 입술을 가진 둥지. 노인은 쓸모없이 기다란 입술을 자른다. 바닥을 끌고 다녀서 닳고 찢긴 상처. 입술이 뱉어낸 상처들을 새는 묵묵히 품는다. 함부로 나는 입술을 사용해서 누군가의 마음을 찢었거나 울린 적이 있던가. 한번이라도 나는 입술을 자르고자 한 적이 있던가. 부화가 덜 된 언어들을 품다가 날려 보내고 나는 둥지를 고치는 것에만 열중했다. 내 둥지에서 날아간 언어들은 지금쯤 무덤 속으로 걸어갔을까. 누군가는 나의 언어들 때문에 닳고 찢긴 마음을 재단(裁斷)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갑자기 나는 입술이 헐겁다. 노인은 새의 부리에 마음을 끼우고 상처가 덧나지 않도록 새로운 입술을 꼼꼼히 박음질한다. 노인이 새를 타고 세상의 모든 터진 마음들을 재봉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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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진부의 송어낚시
미국에서 공수돼 온 송어알이 물이 좋은 석회암 골짜기인 평창읍 상리의 당시 도립양어장, 곧 지금의 평창송어장에서 부화, 양식에 성공한 것으로 시작된 평창 송어의 역사는 그대로 대한민국의 송어 역사가 된다. 이런 한국 송어의 출발지에서 그동안 송어를 대상 삼는 어떤 행사도 없었다는 점에 겨울철이 되면 주민들은 늘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어때?” “예…… 뭐, 우리나라 송어의 역사네요.” “저 글을 쓴 놈이 박사야. 역시 박사가 달라. 우리가 깜박한 걸 딱 집어내잖아. 그 옆에 붙여놓은 것도 한번 읽어봐.” 옆에 붙여 놓은 것은 낚시 책에서 복사한 것이다. “송어는 탐식성이 강하고 성질이 사나우며 육식을 주로 하지만 잡식성이다. 낚시에 걸렸을 때의 강렬한 저항은 타 어종에 비교할 데가 없다.” 그리고 ‘송어는 상냥하고 아름다운 몸매에 섬세한 성격의 품위 있는 물고기’라는 좀 이상하고 까다로운 송어낚시에 관한 내용을 나는 웃음을 참으며 마저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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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삶은 달걀에 대한 세 가지 이야기
처음에는 부화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는데, 결국 처참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두 개의 알 속에는 반쯤 형체가 생긴 상태로 멈춰버린 공작 병아리들이 들어 있었다. 나는 뼈아픈 후회와 죄책감에 사로잡혔다. 마치 귀한 생명이 들어 있는 알을 엉터리 부화기 속에 넣어서 푹 삶아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뜬금없이 꿈속에서 죽어가는 아내를 다시 보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부터였다. 아내는 나를 보여 애써 웃어 보였지만, 매번 얼굴이 삶은 달걀처럼 부어올라 있었다. 그때 나는 삶은 달걀이 이를테면 마비된 삶의 공포와 고통을 상징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아내의 죽음이 어쩌면 전적으로 내 탓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내 영혼이 삶은 달걀 속에 갇혀 식은땀을 흘리는 악몽이 날마다 계속되었다. 봄이 지나고 초여름이 다가올 즈음에, 나는 마당에서 공작들을 다시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