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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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이름값’에 대한 보고서
빠른 속사포식 말투를 애써 느릿느릿 늘려가면서 거절의 이유를 설명하는 동안 0.001초 동안의 배신감(?)이 바람처럼 사라졌다. “아. 네 알겠어요. 감사합니다.” 느닷없이 ‘감사합니다’라니. 하지만, 지구촌 재난 현장에서 구호의 손길을 펴는 그녀의 숨 가쁜 일상을 들여다 본 나는 어쩔 수 없이 즐거운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출연자 선정을 할 때마다 가장 엄격한(!) 잣대로 가늠해 보는 ‘진정성’. 역시……우리는 그녀를 제대로 보았던 거다. 물음표를 마침표로 바꿔 주세요! 마지막 교정을 보고 출판사로 원고를 넘기기 직전, 각각 두 통의 전화를 받았다. 031로 시작되는 낯선 번호가 액정 화면에 뜨더니, 예의 조심스런 말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 왔다. “저…… 기정 작가시죠? 저는 가수 아무갠데요…… 원고 잘 읽었어요, 그때 녹화 때 제가 너무 울어서 민폐를 끼쳤는데…… 이번에 무대 사진이 나간다는데 혹시……우는 장면이 나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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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Live Forever
근방에 4명이 있는데 진행자가 '3'을 외치는 바람에 한 사람만 무리에서 배제되어 탈락해 버리는 그런, 외롭고 열 받고 배신감 느끼게 만드는 룰. 내가 그렇게 해서 떨어졌다. 바로 근방에 나와 같은 처지에 처한 사람이 하나 더 있었다. 그는 지난밤 가장 시끄럽고 예의가 없어 보였던 빼빼 마른 4인방 중 하나였다. 얼굴이 하얗고 표정이 날카로워서 인상이 썩 좋지 않았다. 나와 그는 눈이 마주쳤고 에라 모르겠다 싶은 심정으로 손을 맞잡은 뒤 게임이 진행되든 말든 간에 신경 끄고 둘이서 모닥불 주위를 빙빙 돌았다. 그의 아이디는 눈물맛 사이다. 조만간 꿈꿈돌이와 함께 여행을 가기로 되어 있다. 그리고 또…… 뭐가 있더라. 그래, 마피아 게임을 처음 해봤다. 글틴 캠프의 전통적인 민속놀이다. 지금 시대에 이르러서도 사랑을 받는 게임이며 심지어 자신이 이른바 '인싸'임을 증명하는 놀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도는 요즘의 세태를 보노라면 감개무량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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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김경주’라는 조각퍼즐
이영주가 수술을 하느라고 혈액형 검사를 했더니 서른 해 넘게 B형으로 알고 있던 혈액형이 AB형으로 판명돼, 같은 B형이라고만 여기고 있던 김경주가 이영주에게 심한 배신감(?)을 느끼고 만나는 사람들마다한테 억울함을 호소하던 게 그 전이었는지 그 후였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그날 그들이 왜 울었는지는 여태 의문으로 남아 있다. 하긴 그날 사건이 많긴 했다. 시인 O는 울다가 웃기를 반복했고 시인 P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경찰서를 들러 응급실로 갔고 시인 L은 시인 K와 심하게 다퉜다. 급기야 안현미가 “야, 여긴 날 위한 술자리거든.”이라고 소리칠 정도였으니, 그 둘이 왜 울었는지는 그 많은 사건들 속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김경주의 첫 시집 출간 술자리에서는 정작 김경주가 중간에 사라졌다. 시인 조연호와 윤석정이 밤새 찾으러 다녔지만 결국 못 찾았다고 했다. 다음날 아침 김경주가 깨어난 곳은 거기서 꽤 멀리 떨어진 곳의 어느 주차장이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