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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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아동청소년문학 초코알 속 멧돼지
“끼이이이욱끼이이이.” 119 대원이 쏜 마취 총에 맞은 것이다. 마취 총에 맞은 멧돼지는 흥분해서 날뛰었다. 무시무시하게 생긴 멧돼지에게는 마취 총도 소용이 없어 보였다. 매대며 광고 입간판이며 눈앞에 있는 건 모조리 머리로 박아서 부숴 버렸다. 그러고는 갑자기 마트 입구 유리문 쪽으로 달려왔다. “으아아아악, 이쪽으로 온다.” 유리창에 붙어서 마트 밖을 구경하던 사람들이 기겁하며 마트 안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쿠쿠쿵쿵.” “으아아아앙.” “엄마아아아아.” 서로 부딪히기도 하고 넘어져서 우는 아이도 있었다. 전쟁터가 따로 없었다. 나도 아빠 손을 잡고 마트 안쪽으로 달렸다. 아까 고른 초코알을 놓치지 않으려고 손에 힘을 꽉 줬다. “탕!” 쇼핑몰 전체가 울릴 정도의 강하고 짧은 소리가 났다. 순간 시간이 멈춘 것처럼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누군가 이 말을 하기 전까지는. “멧돼지가 총에 맞았다.” 그 소리에 사람들이 함성을 지르며 손뼉을 쳤다. 안도의 한숨 소리도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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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사랑니
사랑니 강연호 오래 앓던 사랑니도 뽑는 것은 순식간이다 물론 마취 때문에 통증은 나중에 온다 언젠가 사랑과 이별하고 돌아와 한숨 잘 잔 뒤 이윽고 깨어나 한참을 울던 기억이 난다 한숨 잘 잔 게 어이없어서 더 슬펐던 것 같다 사랑을 끝내는 것이나 사랑니 뽑는 것이나 뭐가 뭔지 얼얼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인가 마취가 풀리면서 잇몸이 점차 욱신거린다 혀끝이 저절로 그 자리를 향한다 아직도 멀쩡할 것만 같은 사랑니의 그 자리가 허방처럼 푹 꺼진다, 문득 허전하다 새살이 돋아 뭉툭해지겠지만 움푹 패인 그 자리에 먼저 가렵게 돋는 질문 하나 사랑니가 왜 사랑니겠니 저도 모르게 혀가 가 닿아 어라! 잠시 허방을 짚는 자리 뒤늦게 허전해지는 자리, 사랑이 떠난 자리 그래서 사랑니란다 빈 자리를 혀끝이 가만가만 다독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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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지상에서 영원으로
수술 후 마취 깰 때 이 악물고 참아 보려 했지만 참을 수 없었던 한 시간 같았던 십 분처럼, 혹은 십 분처럼 흘려보낸 하루. 영원에는 표정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