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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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마음
마음 김은경 키 작은 내가 가끔은 키 큰 수숫대의 마음을 알 것 같기도 한 것처럼 어느 날엔 애 둘 낳고 서른에 집 떠난 큰삼촌의 마음을 알 것 같기도 하다 엄마가 우리 몰래 무언가를 숨겨 놓던 다락에도 장롱처럼 깊고 캄캄한 곳에도 그것은 있다가 없고 없다가 있었다 조약돌만 할까 그것은? 솜사탕처럼 바스라지기 쉬운 걸까? 불같다는 소문이 돌았고 누구는 귀신같다며 가만히 입술에 손가락을 댔다 기실은 물뱀의 무늬처럼 여린 배신자의 마음 추분이 오기 전 벼락같이 떨어져 내리는 능소화의 마음 기어이 물을 건너가는 사공의 마음 사탕 봉지를 열면 달콤한 사탕 냄새 곧 죽어도 괜찮을 것 같던 사랑스런 냄새 어떤 사람은 그 냄새를 찾는 데 일생을 바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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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가벼운 마음
가벼운 마음 김연희 아내는 알람이 울리자 끄고 밖으로 나갔다. 자는 척하고 있던 그는 몸을 일으켜 침대에 비스듬히 기댔다. 닫힌 문을 통해 아내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아내는 욕실에서 샤워를 하고, 드레스 룸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주방으로 이동했다. 창가에서 잠을 자던 재용과 용진이 깨어났다. 녀석들은 말티푸 형제였다. 말티푸는 말티즈와 푸들의 혼합 견종으로 말티즈의 귀여운 외모와 푸들의 곱슬곱슬한 털이 섞여서 인기가 많았다. 그는 2년 전에 전문 브리더에게 비싼 값을 치르고 재용과 용진을 분양받았다. 개들은 창가의 쿠션에서 침대로 뛰어 올라왔다. 그가 목덜미를 어루만지자 개들이 꼬리를 홱홱 흔들었다. 아내는 재용과 용진이 지서를 닮았다고 했다. 지서는 아내의 약국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이었다. 그녀는 대학에서 국문과를 전공하는 4학년 학생이었다. 그도 국문과를 나와서 지서를 후배로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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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소설 임하는 마음
[아르코문학창작기금 - 소설(중단편)] 임하는 마음 장진영 엄마에게 반말을 썼는지 존댓말을 썼는지 잘 기억나지 않았다. 반말을 해서 혼났다는 건 기억이 났는데 그래서 내가 고쳤는지 못 고쳤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나는 현관에서 신발을 벗었고 내 신발이 엄마와 홍석주 오빠의 신발들 틈에 놓이게 되었다. 엄마가 엄마 신발과 홍석주 오빠 신발 사이의 내 신발을 물끄러미 보았다. 내 신발은 예전에 박경란 언니가 신던 신발이었다. 술 장식이 달린 자두색 가죽 단화였다. 다른 친구들에게는 어쩐지 흉측하게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여서 그걸 얻기 위해 가위바위보를 하거나 몸을 밀치지 않아도 되었다. 그렇지만 누군가 간절히 원했다면 아마 나는 기쁜 마음으로 포기했을 것이다. 나보다 먼저 그 신발을 신었던 김민지 언니는 쌤통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김민지 언니가 억울해하지 않았으면 해서 속상한 척했으나 내심으로는 행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