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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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마로니에백일장 우수상_시]사육
[마로니에백일장 우수상_시] 사육 김정순 1. 눈가로 지느러미가 흐느적거리며 어디론가 헤엄쳐 가고 있었다 나는 아가미가 퇴화된 꿈을 겨우 호흡하며 숨을 참고 있었다 망막을 가리는 젖은 그늘의 빛깔 눈동자가 닿을 수 없는 깊이의 밑바닥으로 침잠하고 있었다 떠오를 수 있도록 부레가 생겨나는 울음을 기르기 시작했다 2. 한 사람이 그늘을 매립하고 있었다 허공이 꺾여버린 날갯죽지와 뼛속까지 깃든 새 발자국을 파묻고 흉터가 깊어 가는 눈언저리마다 그림자를 한 삽 떠서 덮어 주었다 한 사람의 눈빛이 그늘 속에서 채굴한 햇빛을 기르고 있었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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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마로니에백일장 우수상_산문]엄마의 얼룩
[마로니에백일장 우수상_산문] 엄마의 얼룩 정선진 아무리 표백제를 넣어도 얼룩이 지워지지 않는다. 당장 엄마에게 전화해서 이럴 때는 어떻게 하냐고 물어보고 싶지만 나 혼자 해결해야 한다. 아마도 엄마는 항암 치료를 받고 난 후 침대에 쓰러져 있을 것이다. 이깟 속옷, 새로 사면 그만이다. 하지만 엄마는 한사코 고집을 부렸다. “그걸 왜 다 버려? 표백제 넣고 깨끗하게 삶으면 돼. 너는 무슨 애가 아낄 줄을 모르니?” 그렇게 아끼고 살아서 그런 모습으로 침대에 누워 있느냐고 말대꾸를 하려다 동생이 팔을 잡아당기는 바람에 꾹 참았다. 제 때에 병원만 갔어도, 속옷에 짙은 갈색 얼룩이 생기기 시작했을 때 검사만 받았어도 자궁과 난소를 도려내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서 방사선 치료에 항암제까지 맞아야 한다니……. 의사가 ‘암’이란 말을 처음 꺼냈을 때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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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마로니에백일장 우수상_아동문학]푸른 눈동자, 윤석이
[마로니에백일장 우수상_아동문학] 푸른 눈동자, 윤석이 이득자 아빠가 “어머니 연락드릴게요.” 하고는 서둘러 자동차에 올라탔다. 할머니와 나만 남았다. “할머니, 뒷산에 갔다 와도 돼요?” 내가 물었다. 할머니는 위험하니까 옆집에 사는 진수랑 같이 가라고 했다. 진수는 나보다 키가 한 뼘이나 크다. 그것도 아빠 손으로. 무엇보다 나는 나를 푸른 눈깔이라고 부르는 진수 자식이 싫다. “치, 싫어요. 나 혼자 갈 수 있어요.” 나는 할머니에게 퉁명스럽게 대답하고 동네가 훤히 보이는 뒷산 꼭대기에 올라갔다. “엄마아아, 아빠아아.” 나는 입에 손을 대고 엄마, 아빠를 불렀다. 엄마가 그랬다. 할머니 집에 잠깐 있으면 동생 낳고 아빠랑 온다고. 한 번 더 엄마 아빠를 부르려고 할 때였다. “에이, 여기 있었네. 한참 찾았잖아.” 진수였다. 진수는 키도 더 커지고 덩치도 더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