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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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땅의 달
땅의 달 최재원 오래된 달을 오랫동안 바라보며 걷는데 꺼졌다 전자가 발길을 끊은 후에도 달은 주황빛으로 익어 가고 있었다 필라멘트에 남겨진 입자가 식어 가고 있었다 멍하니 입 벌리고 바라보며 가는데 배수로에 덮어 놓은 그물망에 발이 빠졌다 넘어지진 않았지만 발 바깥쪽을 삐고 말아서 다리를 절며 돌아가는데 켜졌다 철쭉 잎 익은 제 살을 뒤집어 오므라드는 가운데 철모르는 몇몇의 낙엽을 밟고 절뚝절뚝 가는 겨울을 재촉하는 봄의 성급한 발 발 밤 봄바닥 위 떨어진 달 봄 내내 깜빡이더라 강동구의 오래된 가로등을 LED로 교체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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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물구두와 달
물구두와 달 신영배 구두가 나에게 달을 설명하고 있었다 또각또각 어딘가를 열고 있었다 당신은 떠나며 다리를 둥글게 말았다 달이 뜨지 않고 달에게 던진 말들도 뜨지 않는 창가에서 다리는 어두워졌다 꿈에서 달, 달이 책상 위에 앉았다 말을 건질 때마다 책상이 출렁였다 달이 옷걸이에 걸렸다 말을 벗느라 안간힘을 쓸 때 옷걸이엔 내 비틀린 사지가 걸렸다 물이 뚝뚝 떨어졌다 구두가 여전히 나에게 달을 설명하고 있었다 당신은 어둡고 멀고 둥글다 당신과 나의 간격엔 달빛 달빛엔 강이 흐르고 나도 둥글게 만 다리를 안고 있었다 간격엔 달빛 걸을 수 없는 말들을 안고 젖은 구두가 돌아다녔다 닿을 수 없는 말들 사이에서 또각또각 소리가 났다 강이 마르는 거리에서 걸어가는 사람들 속에서 떠오르는 구두 가라앉는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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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아동청소년문학 「달」외 6편
달 차영미 초승달 상현달 보름달 하현달 그믐달 모두 다 우리 동네 달 순서 정해서 차례 되면 동네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 · · 순찰 도는 우리 동네 달 담벼락 담쟁이 오르는 길목마다 단단한 등허리 온통 내어 준 채 한 걸음만 더 한 걸음만 더 저기, 저기까진 얼마 남지 않았다고 끝까지 묵묵히 지켜봐 주는 아버지 점점 촛불이었다가 횃불이었다가 화르르 불길로 번지는 진달래, 목련, 벚꽃 그리고···, 개나리 차차 괜찮아 다 괜찮아 조금만 조금만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뿐 꿋꿋이 견디면 흐린 날이 점점 맑아지듯 선물 같은 희망 같은 그런 좋은 때가 올 거라는 할머니의 ‘차차’ 휴지통 모락모락 연기 아래 타다닥 타는 가슴 까만 내 속은 아무도 몰라 줘. 아, 진짜 후끈후끈 열 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