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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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비평 끝의 시작
솔직해야 하는 만큼 부담스러운 일일 수 있으나, 비평가로서가 아닌, 오랫동안 한국 문학에 애정과 관심을 유지하고 있는 독자로서 한국 문학을 만났을 때 느꼈던 감상을 다시 한 번 깊이 있게 헤아려 보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한국 문학의 위치와 역할 그리고 그 의미를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보려 합니다. 끝의 시작 —모르는 것, 어떤 실패에 관하여 김태선 시를 쓸 때 우리는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몰라요. 우리가 이름 붙일 수 없는 것만이 우리를 행복하게 할 수 있어요. 시는 무지(無知)가 주는 기쁨의 약속이에요. -이성복 2000년대 이후 현대시가 난해함의 경향으로 인해 대중 독자들로부터 유리되어 왔다는 주장이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난해함이 독자로 하여금 당혹스럽게 한다는 점이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나아가 난해함의 경향에 일부 비평가들이 편승하여 문학 권력을 만들어내며 스스로 고립 상태에 처하게 되었다는 진단을 내린 이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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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하근찬 단편소설 다시 읽기
소설의 시작 부분이나, 사건의 해소, 사건 해결의 결정적 계기 등에는 생리 현상이 나온다. 빈번하다기보다는 거의 대부분의 초기 소설에 등장하는 이러한 설정을 어떻게 해명할 수 있을까? 그것은 삶의 원초성에 대한 강조로도 읽을 수 있고, 생리적 작용 속에 찰나처럼 존재하는 카타르시스로도 볼 수 있다. 러시아의 문예 이론가 미하일 바흐찐은 『프랑수아 라블레의 작품과 중세 및 르네상스의 민중문화』라는 저작에서 ‘배설’의 의미를 전복적으로 규명해 낸 바 있다. 그가 보기에 ‘오줌’과 ‘똥’ 같은 배설은 “육체와 대지의 삶, 삶과 죽음 사이의 투쟁에서 본질적인 요소”로 인식되었다. 즉, 근대적 사고 체계가 강요한 생리학적이고 위생학적인 것에서 벗어나 인간의 자연성에 가닿는 것으로 배설을 사유했던 것이다. 하근찬에게 있어서도 배설 행위는 전쟁과 같은 근대적 폭력에 대한 야유이면서, 인간의 자연성을 회복하는 계기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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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이글거리는
움직이고자 하는 불가능한 기획의 막바지 언제나 출발선에 있고 언제나 문 밖에 있는 당신을 통해서만 완성되는 뜨거움 자살 같은 벼락같은 마약의 시공 같은 그러나 나는 세상의 모든 시를 시작하리라 – 『흑백』(문학과지성사, 2006)에 수록 추천하며 시인은 시작(詩作)을 시작(始作)하는 일, 혹은 그 반대의 일에 대해서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