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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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노래
노래 김경은 1. 락커가 죽었다. 진은 완의 차 안에서 락커의 소식을 들었다. 두 사람은 어쩌다 보니 음악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발단은 락커의 죽음이었다. 올 겨울은 눈보다 비가 더 잦았다. 오락가락하는 빗줄기에 난반사하는 불빛으로 도로는 번들거렸다. 미처 처분되지 못한 은행잎들이 인도와 차도 위로 마구 흐트러지며 바람에 날렸다. 그들의 얘기도 일정한 방향으로 흘러가지 못하고 흩날렸다. 누군가 한 가지 이야기를 던지면 짧게 답하고 잠시 침묵, 다시 무언가 던져지면 단답형으로 받고는 다시 고요. 그 속에서 화제는 우연히 음악으로 넘어가게 된다. 전방의 시야가 뿌예지자 완이 창문을 내렸다. 차 소리만 비집고 들어올 뿐 연말인데도 거리는 조용했다. “이상하지 않아요?” 문득 든 생각이었지만 진은 확신을 가지고 외쳤다. “잘 들어 보세요. 노래가 없어요. 노래가 사라진 거예요.” 거리에는 그 흔하던 크리스마스 캐럴 하나 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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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수필 아버지의 노래
아버지의 노래 김임순 어부는 항구의 남자였다. 저인망을 선두로 줄줄이 배를 몰고 항구로 귀환한다. 등대에 앉았던 갈매기가 날개 북을 치며 반갑게 마중을 나간다. 어부와 바닷새, 그들만큼 절친한 친구는 없다. 멸치 한 토막이면 요깃거리로 충분하다. 그걸 얻어먹으려고 욱시글득시글 떼창으로 끼룩댄다. 뱃전엔 흘림걸그물이 켜켜이 쌓여있다. 어부는 적막했던 지난밤의 고요와 노동의 대가를 고스란히 건져왔다. 짬짬이 됫병 술 마셔가며 작업을 마치고 돌아왔다. 그들에게 바다는 생활터전이었고, 육지는 하룻밤 머무는 여인숙에 불과했다. 검게 탄 얼굴은 바다 위에다 생의 푯대를 꽂고 살아온 증표였다. 그런 남편을 위해 뭍의 아낙은 소 뼈다귀를 넣고 해장국을 끓였다. 살아온 삶이, 살아갈 삶마저도 바다와 더불어 존재하고 있었다. 정화뒤축이 닳아질 때마다 가난을 한 꺼풀씩 벗겨냈는지 그건 알 수 없다. 나의 아버지도 항구의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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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햇살의 노래
햇살의 노래 김안 늦은 아침, 술 덜 깬 옛 애인은 늘 슬픔으로 몸이 둥글어지곤 했는데, 햇살은 그 둥긂 위에서 깨지곤 했는데, 여전히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 아침, 말의 형태를 어떻게 만들고 있을까. 말하지 못하는 비극과 말하지 않는 비겁 사이에서 그 많던 이데올로기의 우상들은 어디로 사라졌나. 그 이름들이 내 기억 속에서 옛 애인의 몸뚱이를 지우며 걸어갈 때, 그 둥글었던 등에 그어지는 비극과 비겁 사이, 그 날카로운 틈을, 그것을 정의라 부를 수 있다면, 정의는 무슨, 그저 사랑이었다고 부를 수 있다면, 다행한 아침. 안온한 망각의 빛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