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332)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꿈
꿈 서수찬 언젠가 아빠가 내 꿈을 물어봐서 나는 커서 아빠의 우렁각시가 되는 거라고 크게 말한 적이 있다 아빠는 우리 딸의 꿈이 집을 잃어버리지 않고 돌아오는 힘이라고 말했다 먼 바다에 나갈 때 배 한 쪽에다 집을 잃어버리지 않게 내 꿈 한 쪽을 묶어서 걸어 둔다고 했다 꿈이 풀려서 팽팽하게 당길 때까지만 나갔다가 꿈을 잡고 다시 돌아온다고 했다 아빠를 위해서 나도 내 꿈을 바꾼 적이 없다 될 수 있는 대로 왜소하게 두었다.
-
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소설 그림자의 꿈
그림자의 꿈 이도은 어쩌면 의자가 아닐 수도 있었다. 사진을 찍은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림자를 보면서 의자를 떠올린 건 나였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어떻게 봐도 의자였다. 더 이상 실체는 의미가 없었다. 사진으로 찍혔을 때 이미 본질은 사라졌다. 더욱이 그림자로 나타났을 때는 그저 어둠으로만 존재하는 것이었다. 어둠도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말이다. 등이 길었다. 빛이 위로 향했을 것이다. 오래 바라보니 어이없게도 등이 자꾸 자라고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줄기식물처럼 스멀스멀 뻗어나가 내가 눈을 깜박거릴 때마다 표시 나지 않게 등을 키워 나가는 의자. 눈을 감는 척하다가 뜨면 그림자도 자라고 있다가 정지한 것처럼 움찔거렸다. 그 사진이 아니었다면 나는 밴드의 귀찮은 가입 조건을 거부했을 것이다. 밴드의 다른 사진들도 빨리 보고 싶어졌다. 가입 승낙이 떨어졌는지 확인하기 위해 몇 번이나 들락거렸다.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꿈 이야기
꿈 이야기 임유영 사월의 한낮이었다. 벚꽃이 절정이라기에 점심을 먹고 집을 나섰다. 오랜만에 가벼운 옷을 입고 나들이를 나가려니 기분이 좋았다. 걷다가 지름길을 두고 일부러 둘러 가기로 했다. 여학교를 지나 공원으로 이어지는 길에서 감색 세일러복을 입고 달려가는 여자 아이를 보았다. 아직 수업이 끝나지 않았을 시각인데 아이는 멀리 공원 쪽으로 재빨리 달려갔다. 나중에 보니 역시 교복을 입은 남자애가 자전거를 대고 기다리다가 여자 아이를 뒤에 태우고 가는 것이었다. 그러다 사거리에서 그만 사고가 났다고 한다. 사고가 나서 여자 아이는 죽어버렸다. 나는 그날 꽃은 못 보고 돌아가던 길에 교복집 하는 늙은 남자에게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아이의 뒷모습에서 죽을 징조를 벌써 보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