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410)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그림 책
그림 책 주원익 모래가 녹아 유리로 시는 녹아 시간으로 적히지 않는 말은 그림이 되어 그려지지 않는 말은 여백이 되어 표제는 읽는 자를 읽고, 채색이 끝나면 그림 속 시간은 모래 눈물로 흘러내리는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여기는 그림 속
여기는 그림 속 허수경 아마도 내가 당신을 잊어 버린 것 같다, 그렇지 않고야 이렇게 잠 속에 든 당신 옆에 내가 누워 있겠는가, 이제 당신을 나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여기는 그림 속, 손을 잃어 버린 새들이 날고 있다. 검은 부리를 가진 물고기들이 하늘을 향해 늙은 개들을 실어 나르고 있다. 개들은 머리만 있고 얼굴은 없다, 지난 오후에 마을을 폭격한 거미 같다. 전갈도 어쩌면 잠자리처럼 부드러운 곡선으로 세계를 배회할지도 모르겠다. 여기는 그림 속, 대나무 숲이 교회 옆에 있는 그림 속이다. 식당에서 내주는 작은 철근 한쪽을 씹어 먹는다. 가끔 내 주위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지렁이를 밟으며 옷가게로 들어간다. 나무를 팔고 있는 옷가게는 바다이다. 여기는 그림 속, 그 바다 안에서 우렁거리는 핵발전소에서 빛으로 엮은 목도리를 하나 사들고 다시 교회로 간다. 교회 옆에 있던 대나무 숲이여, 어쩌면 당신은 옛 당신의 음성을 그렇게 잘 흉내내는가.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책 속에 낀 노란 버스의 그림
책 속에 낀 노란 버스의 그림 이민하 파란 근육이 뜯겨진 하늘. 삐걱삐걱 관절을 꺾던 별들은 검게 삭아 앙상한 새들을 떨어냈다. 후두둑! 나는 우산처럼 책을 펴고 책 속에 들어간다. 남겨진 가스불 위엔 압력밥솥 가득 유정란 속에서 부화하는 잡담들. 책 속의 몸을 뒤지며 나는 자막의 순서를 배열하고 추락 직전의 괴력으로 유리창에 매달린 새들은 거리의 순서를 배열한다. 부푸는 초점과 엉겨붙은 부리들 사이에서 탱탱한 봉제선처럼 뜯어지는 창문들. 깃털들의 밀물에 결박되는 시간의 자막. 수천 개의 탈주로를 밴 만삭의 타이어가 하혈을 하네. 바퀴를 쪼며 태동에 귀기울이는 새들아. 바닥을 구르게 하는 건 흉곽을 물어뜯는 천둥 같은 목젖이 아니다. 온몸의 초목을 종이날로 대패질하는 행간 속에서 떨어져나간 근육을 조립하고 있어요. 무수히 창을 뚫어놓고 여름내 시동을 건 나는 강 건너로 실어 나를 그대들을 기다리는 게 아니에요. 책을 펼치면 노란 버스는 웅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