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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지 > 자음과모음 리뷰 : 정용준,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백가흠, 『사십사』+김중혁, 『가짜 팔로 하는 포옹』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적절한 온도”를 유지하는 양부모와의 관계, 신장투석실의 무기력한 질서에 나른하게 편승하는 간호조무사의 생활은 아버지라는 찌꺼기가 침투하면서 감정의 비등점을 넘어선다. ‘나’는 위태로운 와중에도 끝내 끓어넘치지 않고 다시금 아버지를 삶 밖으로 침착하게 다시 밀어낸다. 그러나 그를 밀어내는 순간, “갑자기 견딜 수 없이 배가 고팠고 현기증이” 나서 허겁지겁 계란을 씹어 삼키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상처가 난 자리에 으레 피가 차오르고 딱지가 내려앉듯이, 아버지를 밀어낸 자리를 채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리라. 그의 허기나 474번의 허기는 이치에 닿는 부분이 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이 ‘되기(becoming)’의 과정에서 삶의 가장 근원적인 상처들과 직면한다. 제 삶의 바깥으로 밀어내기 위해 예민하게 도려낸 것들은 오히려 그 도려낸 흔적을 통해 삶의 표면에 영원히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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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지 > 포지션 괴랄한 시의 세계
‘비개연적인 것의 개연성, 물성, 의미 소멸’이라고 적어놓고 보면 이제니의 『아마도 아프리카』(창비, 2010)가 떠오른다. 시가 「단 하나의 이름」을 지향한다면, 그 끝에는 의미가 아니라 소리가 남는다. 소리나 반향은 언어가 가지는 물성이 단자 차원에서 드러나는 단위다. 파장은 소리 이전의 작용이고, 울음은 반향 이후의 사태다. “소리가 되기 위해 모음이 필요한 자음들처럼 이제 그만 울어도” 좋을 때, 울음 즉 분한을 드러내는 파토스가 시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모음이 없는 자음들의 소리, 물성이 시를 지배한다. 황혜경의 『느낌 氏가 오고 있다』(문학과지성사, 2013)는 ‘감각과 기억과 느낌을 받아 적는 언어에서 주어를 괄호치고 쓰면 어떻게 될까’라는 물음을 파헤치고 있다. 황혜경은 주어를 괄호 친 언어들은 그것이 어떤 위계에 놓이더라도 감각이 분화되기 이전의 상태를 지시하고 이때 언어는 하나의 리듬으로 돌변하듯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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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지 > 시와사상 시와사상 2012년도 여름호
영성은 사라지고 물성物性만 남은 육체가 미디어를 떠도는 것이다. 유하는 1995년에 발매된 룰라의 2집 음반『날개 잃은 천사』에 수 록된 동명의 노래를 시 속에 절묘하게 결합시킨다. ‘룰라’의 구성원 인 김지현이 지니고 있는‘건강한 외설스러움’내지는‘만만한 퇴 폐성의 아름다움’에 대해 솔직하게 표현하고, 룰라가 노래할 때 보 여준 퍼포먼스를 상기시키고, 마셜 매클루언의 그 유명한“미디어는 마사지”라는 말로 시를 끝냈다. 현대 대중문화가 보여주는 퇴폐성을 찬양하는 듯한 이 시는 역으로 이에 대한 풍자시이기도 하다. 패러 디가 문명비판시의 지배적인 풍자 기교라는 점을 상기할 때, 룰라의 「날개 잃은 천사」와 김지현이라는 가수를 시 속에 차용한 것은 탁 월하다. 왜냐하면 풍자란 원래 독자의 공감 위에서 성립하는 장르이 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중에게 친숙한 대중가요를 패러디한 것은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한 효과적인 장치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