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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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집과 나무
집과 나무 황혜경 두고 올 수 없어서 봄의 언덕으로 배낭에 담아 날라서 심어 두려는 것입니까 자목련의 이름은 그림자로만 남으려는 중입니다 목련의 백색이 그 위를 넓게 덮고 집은 아무 말이 없었다 집은 나무에게 말이 없었다 심은 묘목이 집을 둘러 아름드리나무가 되었지만 떠나려는 것이었다 집을 황급히 피워내는 개나리들 집을 피하듯이 다른 땅에 심어지고 있습니다 남은 손이 하고 있습니다 따라오며 잡초를 뽑고 집이 나무를 떠나려는 것인지 나무가 집을 옮기려는 것인지 아주 가려는 것인지 행군을 하듯 가고 있는 중입니다 옆집 마당에는 또 씨앗이 뿌려지고 있고 저 멀리 앞집에서는 나무들이 가을을 미리 읽고 집에는 겨울이 오고 있는 중입니다 변함없이 바람, 불던 대로 불고 있습니다 떠나는 것들을 따라서 모르니까 가고 볼 것이라고 말하겠습니다 모르는 채 갈 것이라는 맹세였습니다 그리고 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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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이야기
이야기 황혜경 마음 천장에 붙은 가스 풍선 밖을 향하려는데 못하게 가두네 다크실버하늘다크푸른하늘골드블루스카이다크라운지 이상한 조합의 문자들처럼 푸르다가 말 알 수가 없는 중년 넘어 노년의 신사들 폐공장 실내처럼 아무것도 안 하고 참고 있고 우리가 알고 있는 걸 먼저 알고 있는 듯하게 앞마당이 있고 찾아오는 새가 있고 어제의나도오늘의나다오늘의나는어제의내가아니다오늘의나도내일의나다내일의나는오늘의내가아니다아니었다아닐것이다아니더라아니었다더라아닐것이라더라 남들이 더 나 같을 때가 있기 때문에 나는 이 얼굴만 보고 이 얼굴에 있는 눈을 혜안으로 설정하고 처음 가진 얼굴이 마지막 얼굴은 아니더라도 변하는 얼굴 중에서 가까운 표정을 발견할 때면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무겁지 않고 수평을 이루며 타는 공중 시소 가스 풍선 날마다 하나쯤은 어딘가를 날아가고 있고 누군가 놓쳤고 나는 되지 못했는데 되려고 힘쓰는 것을 볼 때면 이어지고 있는 이야기를 계속하라고 말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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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비켜서다
비켜서다 ― 사람이 사람을 초월하면 자연이 된다 * 황혜경 등을 돌리고 잔다는 말보다 엉덩이를 마주하고 잔다고 말하자 너의 바나나는 몇 개니 나의 바나나는 10개야 듬성듬성 누군가 떼어먹은 다발에서 빠진 바나나의 숫자만 셀 때는 보이지 않는다 바나나꽃과 바나나의 시간 같은 것 세 근이던 딸기가 네 근이 되는 밤 9시의 시장 같은 것 흥정하지 않아도 고령의 이웃은 자는 시간보다 깨어 있는 시간이 길다 하고 자는 시간이 깨어 있는 시간보다 길다 하는 나는 불쑥, 문을 당기고 말 철렁, 하는 것들 앞에서 잘 닫히지 않는 화장실 문을 붙잡고 변기에 앉아 있는 것만 같았는데 같은 이름을 가진 잘 모르는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한 발자국 물러나 접착된 편집(偏執)의 한쪽 끝이 떨어지는 걸 보았다 까발릴수록 드러나지 않는 것들은 더 오므리는 힘을 안에서 키우고 있으려니 그러려니 하고 매일 정확하게 들고나는 문들도 무기가 되는 날이 있고 긴박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