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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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혁명 전야를 향해 달리는 사마르칸트 기병대의 교리문답
그나저나 이 낙타는 새벽이 되도록 쉴 생각이 없는 것 같구만 * ―리산, 빙산 아래서 외뿔고래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네요 ―그건 자네의 잔이 비었기 때문이라네 沃, 좀 더 달려 보게 * 달그락달그락, 혁명 전야를 향해 달리는 사마르칸트 기병대 알타이, 알타이 눈은 내리고 우랄, 우랄 눈은 내려 쌓이고 파미르, 파미르 눈은 퍼부어도 달그락달그락, 이제 다만 고요히 도사릴 시간 말발굽經을 들추어 교리문답을 음송해야 할 시간 ―오마르 ―카이얌, 카이얌 ―오마르, 오마르 ―카이얌 가장 긴 밤의 오후는 저무네. * 이탤릭체 부분은 오마르 카이얌의 「루바이야트」에서 가져왔다. 오마르 부르면 카이얌, 카이얌 하고 가장 긴 밤의 오후의 눈발이 달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오마르 ―카이얌, 카이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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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티셔츠 혁명
티셔츠 혁명 박서영 체 게바라 얼굴이 인쇄된 티셔츠 앞에 서면 괜히 영혼이 용감해진다 이 아름다운 새들은 어디서 날아온 것이냐 데모 대열에 한 번 섞여 본 적도 없으면서 불온한 삐라 한 장 뿌려 본 적도 없으면서 당신의 혁명에 가담한다 옷걸이에 걸린 체 게바라 흩어진 얼굴을 바람이 또 산산조각 낸다 멀리 사방으로 찢어지는 긴 발자국 혁명은 바람을 낳는다 새들처럼 날아갈 수 없는 퓨즈가 나간 혁명에게서 독한 기름 냄새가 난다 내 몸 속의 석유에 불이 붙고 불타올라야 누군가와 결별할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백주대낮 거리에서 누군가와 이별한 적이 있다 결별을 통보하기 위해 오늘은 내가 달려간다 태양이 꺼지고 한 무리의 새들이 날아온다 헉헉대며 달려온 마음의 밀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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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비평 혁명 이후를 살아간다는 것
혁명 이후를 살아간다는 것 ―386세대와 패배하지 못한 혁명들의 시차 임세화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퇴근 후에 넥타이를 존나 풀고 찾아와 옛 추억에 잠겨 노래 한 곡 워어어어 케케묵은 노래들을 불러대며 울어대네 아름다운 젊음이여 흘러간 내 청춘이여 너희들이 정녕 민주화를 아느냐 이 손으로 일군 민주주의 대한민국 요즘 어린 것들은 몰라도 한참 몰라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투쟁도 혁명도 이제는 모두 봄날의 꿈 그리웠던 혁명동지 돈을 꾸러 찾아왔네 골프채로 쫓아내니 마음속이 허전해 내일은 미스 김의 보지 냄새 맡아야지 밤섬해적단, 〈386 Sucks〉, 《서울불바다》, 2010. 1. 중단된 혁명 이제는 진부한 제재처럼 감각되는 ‘후일담’의 환멸과 자조 이후 한국 문학에서의 386세대 재현은 익숙하지만 낯선 ‘진정성’의 풍광들을 펼쳐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