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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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플롯의 해독제, 한유주 소설가
● 한유주 : 높여 준 거예요.(웃음) ● 고봉준 : 아, 그러니까 이 ‘당신’이 ‘우리’의 높임이라는 거죠? ● 한유주 : 네. 한유주 작가가 키우고 있는 다람쥐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근황에 대해 물었는데, “다람쥐가 제 인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져서요”라고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리고 사진에 관한 책 한 권을 번역 중에 있다고 한다. 번역은 밥벌이의 일종이지만 번역을 하면서 자신이 우리말을 못 한다는 걸 깨닫는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번역이 남의 글을 옮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창조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랬더니 “둘 다 있는 거 같아요.”라는 간명한 대답이 돌아왔다. 거의 실시간으로. 조만간 그녀가 또 한 권의 번역서를 출간할 듯하다. 자연스럽게 준비한 인터뷰가 모두 끝났다. 문학성을 판매량으로 평가하는 태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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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2000년대의 한국소설, 혹은 경계를 넘어서는 글쓰기의 열망
한유주 씨는 어떤가요? 요즘 소설들이 예전에 비해 쉬워지는 경향도 있는데 한유주 씨는 이런 경향에 맞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최근 한유주 씨 소설에는 그런 것에 대한 자의식 같은 것이 읽히곤 하던데요. 한유주 :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한테는 지금 25살이라는 시간이 삶의 최대치잖아요. 지금 아니면 휘발되고 말 것 같기에, 한국에 사는 20대로서 가지고 있는 것을 지금 쓸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저 같은 경우는 80년대에 태어났고, 그 뒤로 제가 겪은 큰 사건이나 거대한 경험 같은 것은 2001년 9?11테러밖에 없었거든요. 제 나이는 별다른 경험을 겪지 못한 나이인데요, 이런 것을 쓰기에는 지금이 오히려 적절하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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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소설의 바깥, 바깥의 소설
(한유주, 「그리고 음악」, 『달로』, p. 111) 이것은 언어에 대한 총체적 부정이며, 소설에 대한 전면적 거부이다. 왜 그런가? 말한다는 것, 그리고 쓴다는 것은 소설의 가장 원시적인 존재 양태에 해당하니 이를 믿지 못한다는 것(“거짓말이다”)은, 나아가 “입을 열지 못한다”는 것은 바로 소설 자체에 대한 회의와 맞닿아 있다. 이러한 소설들은 더욱 근원적인 회의, 이른바 말한다는 사실, 쓴다는 사실 자체에 골몰한다. 소설이 결국 언어를 상대로, 나아가 소설의 존재 형식을 대상으로 싸움을 걸겠다는 뜻이니. 이러한 소설들은 단순히 쓰기의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쓰기에 대한 쓰기, 즉 메타적 소설로 건너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른바 “의심하는 자신까지도 의심”(한유주,「베를린 · 북극 · 꿈」, 『달로』, p. 128)하는 것. 이것이 이들 소설이 내장하고 있는 제1의 정언 명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