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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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목련, 別曲
목련, 別曲 한용국 애인아 떨어지는 목련을 보아라 빙글빙글 돌아가는 사랑의 자전을 보아라 소풍 가자 소풍이나 가자 꼬리를 붙들고 맴맴맴 창문 너머로 목련 그늘 아래로 샥옥셤셤 솽수길헤 보아라 존나와 씨발 사이에서 무럭무럭 자라는 아이들은 목련 속을 뛰어다니고 늙은이들은 약간의 피로와 욕정이 생의 전부였음을 중얼거리며 벌어지는 목련송이마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으니 샥옥셤셤 솽수길헤 샥옥셤셤 솽수길헤* 떨어지는 목련을 보아라 애인아 빙글빙글 돌아가는 사월의 서글픈 자전을 보아라 *고려가요 「한림별곡」 제 8장의 후렴구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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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봄 여름 가을 겨울
봄 여름 가을 겨울 한용국 1. 애인은 침대에서 다리를 찢었다 면벽하는 방아깨비처럼 끄덕거리며, 애인의 다리가 조금씩 양갈래로 찢어질 때 느닷없이 4월이 오고 벽지 속에서 다족류들이 기어 나와 손에 손 맞잡고 댄스를 추기 시작했다 나는 다리를 찢는 애인 옆에서 책을 읽었을 뿐인데 손가락은 어디 있을까 다족류들은 이국적인 스텝으로 침대 위에서 춤추는데 나는 침대에서 튕겨져 나오고 애인의 다리는 벌어지고 페이지를 넘길 수가 없었다. 애인아 내 손가락을 돌려줘 일렬로 선 나무들도 다리를 찢고 있었다 애인아 저것 봐 이파리도 없이 마른 사타구니에서 하얀 꽃이 피어오르네 내던져진 책 속에서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진공관처럼 창밖으로 소리를 증폭시켰다 하얀 꽃들이 빙글빙글 돌아가며 춤추고 있었다 다족류들이 성급하게 벽 속으로 퇴장했다 내 손가락은 어디 갔을까 애인아 이제 네가 노래할 시간이야 나는 아직 다리를 더 찢어야 돼, 갑자기 형광등이 꺼졌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