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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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두꺼비 필법
발의 점자들 봄비를 앞세워 몸 하나 달랑 들고 이사 간다 어느 문자든 네 발의 온점들이 찍혀 있는 것 같지만 물갈퀴나 기어오르는 기호가 묻어 있다 방죽에서 산중턱까지 반생이 걸린다 꼬리까지 떼고 손톱만 한 몸은 종일 걸어야 겨우 몇 뼘 새끼두꺼비 어기적어기적 서식지 찾아간다 수월치 않은 집결은 편도의 방향이 있는 임시 거처 수십만 마리의 독毒의 내력은 한 방향이다 봄의 들판에 찍어 놓은 오톨도톨한 저 점자들 오자투성이다 농수로에 빠져 지워지고 차바퀴에 쓱쓱 지워지고 온갖 도형들로 뭉쳐진 몸은 납작한 표면이 된다 점자들이 흩어지고 있는 중이다 작은 발자국 꾹꾹 찍어 꼬박 나흘이 걸리는 첫나들이 산 중턱 구석진 곳으로 식자 중인 독의 등판들 거기서 삼사 년을 머물면서 불룩한 두꺼비라는 글자가 된다 물에서 살고 물 밖에서 죽는 두꺼비들 산란에서 깨어난 작은 것들은 제 숫자를 줄여 몸집을 키운다 몸 안에 함축된 알 다시 산문으로 풀어 쓰는 어기적거리는 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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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시·시조 「맹지」외 6편
비밀인데요 잉여의 붓기를 부추기는 입과 귀를 막아요 생의 노역이 서쪽으로 옮겨 가는 시간 골똘하게 흐트러진 기운을 모아 다시 봄날로 의역을 하려는 거죠 퇴고 중에는 건들지 마세요 툭담 마른 장미가지 끝에 핀 드라이플라워 허공처럼 가벼워진 체위 겹겹 페이지마다 편년체 에필로그 차곡차곡 적어 놓은 마침표 한 송이 그도 한때는 욕망에 이끌려 거침없이 타오르던 불의 종족 생을 불사르던 그 자리 한철 자태 그대로 꽃물 한 방울까지 내려놓은 저 깊은 꽃의 경전 죽은 듯 살아 있는 탯줄 움켜쥔 응집된 부호 적멸이고 선이다 꽃보다 아름다운 툭담* 햇살의 조문 경건하다 *Thukdam: 특수하게 죽은 이후에도 유지되는 깊은 명상을 뜻함 슬기로운 생활 도서관 문이 열릴 때마다 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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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젊은작가의 樂취미들] 전진하는 달팽이
어쩌면 달팽이의 퇴고 실력은 나보다 나을지도 모른다. “후지산을 오른다/ 오, 달팽이/ 하지만 천천히, 천천히”라고 고바야시 이사는 썼다. 달팽이는 내 시를 하이쿠로 만들고 싶었는지도 모르지. 달팽이의 활발한 움직임 가운데 특히 가장 디테일한 움직임을 보여주는 건 달팽이의 뿔이다. 와우각상(蝸牛角上)이라는 말도 있지. 두 쌍의 달팽이 뿔은 혀, 그리고 특히 코의 기능을 담당한다. 기다란 코. 달팽이는 코를 말 그대로 휘저으며 전진한다. 그 코는 무척 중요한 것인데, 말하자면 인간의 눈이나 귀와도 같은 것이어서(달팽이의 뿔끝에 달린 눈은 어둠과 빛을 분간해 낼 수 있는 수준밖에 안 되며 애석하게도 그에게 소리의 세계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훼손되면 곤란한 것이므로 달팽이는 그것이 어딘가에 닿으면 그렇게 황급히 뿔을 집어넣는지도 모른다. 하여튼 달팽이 뿔은 굉장히 미세하게, 그리고 (이 점이 정말 놀라운데) 제각기 움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