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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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용산 바람 고찬규 바다에 닿기까지는 강물입니다 바람이 더 큰 바람을 만나 파도가 됩니다 촛농처럼 흘러내리는 당신의 눈물 오늘에야 촛불 하나 더합니다 가장 밝은 거리가 되는 날은 가장 바람 많은 날 바람이 모여 바람이 되어 바람을 일으킵니다 오늘이 크리스마스입니다 거리가 이렇게 환합니다 종소리는 곧 들리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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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크리스마스 택배
뜯은 박스에서는 크리스마스 카드와 털로 짠 장갑, 양말이 한 켤레씩 나왔다. 크리스마스 카드라니. 마지막으로 크리스마스 카드를 써본 지가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나는 카드를 바라봤다. 〈사랑하는 우리 지호에게〉로 시작하는 문구가 카드 겉면에 쓰여 있었다. 카드 안에는 눈 쌓인 숲 속 한가운데에 자리한 목재로 된 이층집이 있었다. 그리고 그 집 창문을 통해 흘러나오는 은은한 노란색 불빛과, 그 옆으로 3단으로 쌓아올린 눈사람이 그 불빛을 받으며 서 있는 모습 같은 것들이, 응당 크리스마스라면 그래야 할 것 같은 모습으로, 있었다. 나는 잠시 더 지켜보다가 박스를 찢어 불을 붙였다. 불은 좀처럼 붙지 않았다. 결국 박스 세 개를 태우고 나서야 장작에 불이 옮겨 붙었다. 장작들이 아궁이 안에서 무거운 빛을 내며 타올랐다. 이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기다리는 일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마당을 돌아다니며 수맥이라도 찾는 사람처럼 휴대폰을 들고 걸어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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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크리스마스 마켓
크리스마스 마켓 진수미 취기를 따라 비틀거린다 옷 벗은 알코올의 혀가 전신을 핥고 지나갔다. 적조는 쉽게 떠나지 않아요 오늘 우린 태양─유령─이라 불러 주기 이 도시에서 네 時의 작명가처럼 시시한 게 또 있을까, 달의 둥근 숟가락도 희미해지는데 길을 것이 우리에게 남아 있지 않단 얘기지 472와 293의 무릎이 휘청거렸다. 어쩐지 우리는 통로 같지 않아? 절멸로 가는 자연사 박물관이지 희미하게 올라가는 달의 입꼬리 새 덧니가 반짝 보였다 사라지려는 찰나, 사랑해 우리는 유령처럼 입을 맞췄다. 보이는 것이 다 붉었다. 입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