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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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소등
치매 노인이 잠에서 깨면 골치 아프단 것쯤은 누구나 알 텐데. 해미는 테이블 앞에 앉아 다리를 떨기 시작했다. 이런 일이 벌어질까 봐 아빠의 이야기 중 대부분을 걸러냈는데, 차라리 말해 주는 편이 나았던 걸까. 어쩌면 해수는 할머니가 정말 존재하긴 하는지 궁금했는지도 몰랐다. 선한 마음에 어디 다치진 않았는지 확인하고 싶었는지도. 그렇지만, 만일 그런 거였다면 더더욱 오기가 치미는 것이다. 사실 아빠가 일터로 돌아가자마자 해미는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결론을 내렸다. 경찰에 신고하면 되는 것이다. 치매 노인을 데리고 있으니 와서 해결해 주십시오. 어렵지 않았다. 사실 아빠도 그게 답이라는 걸 모르지 않을 거라고 해미는 생각했다. 당황한 나머지 잠시 판단력이 흐려졌을 것이다. 아빠는 몸을 떨며 말했다. 남자들이 할머니를 차에 태우려던 순간에 대해서. 차 문 밖으로 삐져나온 앙상한 팔다리, 그걸 마치 자꾸 벌어지는 종이상자 뚜껑인 양 구겨 넣던 손아귀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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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시·시조 「공양」외 6편
경비원 6573이 퇴출당했다 사전 통보는 물론 사후 알림조차 없었다 신입사원의 출근으로 해고에 갈음되었을 뿐 수고했다는 인사말도 잘 가라는 송별식도 없었으니 퇴직금 따위가 있을 리 없다 언젠가부터 시름시름 지워져 갔고 지워지면 지워질수록 희미해지는 비밀 은밀함이 사라지자 가치는 하락했고 조직은 주저 없이 그를 버렸다 신입사원은 선명했다 선명하게 은밀했다 모두의 첫 출근이 그랬던 것처럼 다시 또 은밀한 냄새를 풍기며 머리를 쓰다듬는 사람들 조직은 6573 따위는 잊었고 새로운 번호를 누르기 시작했다 꾹 꾹 꾹 꾹 그리고 별표 어머닌 치매가 아니다 둘째 형 장례를 치르는 동안 어머니가 우는 모습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후로도 어머니는 단 한 번도 둘째 형 얘기를 꺼낸 적이 없다 대신 어머니는 언젠가부터 셋째 형을 둘째네라 불렀다 처음부터 아들 사 형제가 아닌 삼 형제를 둔 것 같았다 마치 둘째 형이 애초에 세상에 존재했었다는 사실조차 잊은 것 같았던 어머니가 치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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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비평 무의식의 서사들 - 이장욱, 박상영, 김혜진 소설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치매 노인의 머릿속에서는 단절된 기억이 불연속적으로 이어진다. "잠깐 비운 사이에 어딜 가신 거예요? 나가지 마시라고 했잖아요. 왜 또 나가셨어요?" 딸과 노인의 통화 장면으로 시작하는 소설은 이것이 치매 노인의 서사가 될 것임을 암시한다. 치매 서사가 기억상실의 모티프를 포함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장례식에 간 노인은 부의금을 내고 식장 안으로 들어간 다음 결혼식장에 대한 생각을 한다. 노인은 장례식으로 출발했지만, 결혼식장에 도착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결코 '믿을 수 없는 화자'가 아니다. 노인의 발언에 의아해하는 주변 인물들의 태도는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사실이 아닌지 구분하는 단서가 된다. 노인은 오히려 진실의 화자다. 사건과 사건이 연결되고 연결과 연결에서 구축되는 의미야말로 만들어진 진실에 가깝다. 치매로 인한 기억상실의 모티프는 진실의 편린을 인간 의식이 가해지지 않은 그대로의 모습으로 드러냄으로써 파묻힌 기억을 끌어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