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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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땅의 달
땅의 달 최재원 오래된 달을 오랫동안 바라보며 걷는데 꺼졌다 전자가 발길을 끊은 후에도 달은 주황빛으로 익어 가고 있었다 필라멘트에 남겨진 입자가 식어 가고 있었다 멍하니 입 벌리고 바라보며 가는데 배수로에 덮어 놓은 그물망에 발이 빠졌다 넘어지진 않았지만 발 바깥쪽을 삐고 말아서 다리를 절며 돌아가는데 켜졌다 철쭉 잎 익은 제 살을 뒤집어 오므라드는 가운데 철모르는 몇몇의 낙엽을 밟고 절뚝절뚝 가는 겨울을 재촉하는 봄의 성급한 발 발 밤 봄바닥 위 떨어진 달 봄 내내 깜빡이더라 강동구의 오래된 가로등을 LED로 교체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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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산화
산화 최재원 바람이 불었고 아침이 왔고 비가 내렸고 우산이 찢겼고 물을 마셨고 약을 먹었고 커피를 샀고 글을 썼고 계획을 세웠고 고개를 저었고 손을 주물렀고 그러자 너를 떠올렸고 세수를 했고 로션을 발랐고 담배를 피웠고 백업을 시켰고 마우스를 충전했고 빨래를 돌렸고 이불을 개었고 집이 흔들렸고 천장을 올려다보았고 옷을 널었고 아침이 갔고 싸락눈이 휘날렸고 물이 떨어졌고 바람이 들었고 창을 닫았고 청소기를 돌렸고 반짝이 스티커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보았고 닫힌 책의 등을 멍하니 바라보았고 오늘은 빵을 만들리라 생각했고 번역을 했고 하지 않은 것들을 했다고 적었고 눈이 그쳤고 계란을 삶았고 빵을 구워 살구잼을 발라 먹었고 찢긴 우산 더미가 목까지 차올랐고 거짓말을 더 능숙하게 했고 거짓말을 본격적으로 하는 사람이 되어야 했고 어떻게 하면 거짓말이 더 사실처럼 느껴질 수 있을까 골머리를 앓았고 어떻게 하면 거짓말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릴 수 있을까 고민했고 거짓말이 뭔지 궁금했고 거짓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