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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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저수지 속으로 난 길 외 3편
● 출처 : 천수호 시집 『아주 붉은 현기증』, 민음사,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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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생략
생략 천수호 털이 다 뽑혀 나간 소머리 위에 북채 같은 소꼬리가 얹혀 있다 소의 전모(全貌)를 보고 있다 몸통이 생략된 저 몸 머리와 꼬리만 남은 소 한 마리 소머리 아래 두꺼운 신문 뭉치 몸통 없는 신문 기사에 핏물이 번진다 전모는 핏물이 말한다 안심을 생략한 소머리 핏물 우둔을 생략한 소꼬리 핏물 머리와 꼬리가 생략한 피 토한 울음소리 허해지는 몸을 위해 소머리탕이나 꼬리곰탕을 먹은 날에는 전모를 감춘 내 몸통이 근질근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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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타일 위의 양떼몰이
타일 위의 양떼몰이 천수호 양떼가 타일 위에서 꼬물거린다 하루의 거품은 이렇게 타일 위에서 시작된다 욕실에 들락거리는 맨발들이 양떼를 이리저리 몰고 다니지만 하늘은 타일의 암청색을 바꾸지 않는다 발등으로 정강이로 오르내리며 오글거리는 양떼가 없다면 내 하루는 거품 없이 유순할 터, 거품의 수사(修辭)는 고도(高度)에 있지 않다 아틀라스 산맥 사천 미터의 산 능선에서 바위를 타고 오르내리는 양떼나 벼랑의 풀을 뜯는다고 양떼에게 오래 맡겨 둔 허공에는 수사가 없다 미끄러지거나 당당해지는 고삐 없는 유목의 방식에는 거품이 없다 종일 거품 물고 앞발질 뒷발질한 내 발을 내려다보며 발등 위로 미끄러지는 거품을 씻어내었으니 이제 말에서도 거품을 뺀다 타일 위의 거품은 양떼가 아니다 어둠이 까마귀 떼로 찢어지는 방향과 같이 흘렀다가 양떼구름을 쫓는 맨발의 방향으로 마르는 거품그림 타일 위로 양떼구름처럼 거품이 떠내려간다 결국 하루의 거품은 타일 위에서 마감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