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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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사랑에 관한 짧은 몸살
사랑에 관한 짧은 몸살 천서봉 지렁지렁, 사인곡선처럼 반복되는 환청 듣는다 별들이, 머리맡에 모여 묻는다 그립냐, 그립냐고 발음하는 그 발긋발긋, 열꽃들 이마에 필 때마다 창문은 제 흐린 예감이 가렵고 믈컹믈컹한 살 금방이라도 허물 듯 나는 헛땀 쏟는다 이제 곧 비가 오리라 살기 위해 머리 내미는 가느다란 기억의 농담(濃淡)들, 몸을 허락하는 것보다 사랑한다 말하는 일이 더 어려웠던 여자가 있어서 꼬물꼬물 콩나물 대가리처럼 피는 아픔 있어서 힘겹지만 아름다운 진흙 향기 하늘까지 오른다 머리가 끊어지면 꼬리가, 꼬리가 끊어지면 머리가 대신하는 ······, 추억의 몸, 몸들 왜 만질 수 없는 강박의 방들은 모두 환형(環形)인가 내 머릿속 황토밭, 지렁지렁 당신을 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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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1659년, 고라니와 사슴 外 1편
1659년, 고라니와 사슴 천서봉 상평통보 무배자전을 위조한 기억이 있다 조선시대에도 나는 시인이었는데, 시인이래봐야 장에 들러 선인의 시나 읊고 가사나 불러 소인묵객의 흉내나 내는 일이었다 떠돌이가 어찌 엽전을 위조하였는가 하면 삭방도, 그러니까 지금의 함경도에 살던 먼 친척, 야장이었던 그의 대장간을 쉬 빌려 쓸 수 있던 까닭이다 조립과 제작을 즐기는 것이 천성이어서 현생 역시 그런 천한 직업을 가지게 되었는데 한 가지 아무리 추억하려해도 떠오르지 않는 것은 참형을 당한 기억이다 참형을 당한 기억이 없으니 나는 죽는 날까지 이곳저곳을 들짐승처럼 떠돌다 낙막하고도 다복한 삶을 마쳤는지 모른다 대신 탁주를 품에 안고 꺽꺽 울던 기억이 있다 겨울이 깊도록 꽃이 지지 않았으니 누룩꽃 피는 내 몸에 술 한잔 바치지 못했다 술이 쓴 것은 아직도 그 버릇이 남아서다 굳이 말하자면 여러 번 헤어졌으나 단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당신, 당신은 연생(緣生)이 모조해내던 추억이었으며 1659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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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발산하는 詩
발산하는 詩 천서봉 무언가 증식한다고 느끼는 밤, 눈 온다 취한 네게 내 손가락을 먹이던 그 밤이다 그것도 나무라고 한꺼번에 새들을 쏘아 올리던 자잘한 나의 계통수 소문*이 아니라면 설명할 길 없는 우리, 우리는 작은 점 하나에서 장히 왔다 여기까지 그리고 아픈 남자만 사랑하던 여자의, 그 남자들 여자가 아껴먹던 저녁의 국수들 혼종을 발음하면 따라오는 죽이나 밥 불어나던 다중의 의태들, 웃으면서 너는 운다 낭인(浪人)이 점괘를 쥐여 주고 떠난 일요일 오후 슬픔이 점령하는 작고 귀여운 너의 식민지 * 어쩌면 이 시와 당신은 무한히 번식할 것만 같다. 잠에서 잠으로만 옮겨가는 어떤 병처럼 음계에서 음계로 넘어가는 집시처럼 감염되고 중독되는 감정들은 언제나 나보다 몇 걸음 저 앞에 가 있다. 긴 잠자리채 같은 내 도덕이 우스꽝스럽다. 그러나 감정이 발산할 수 있음은 여전히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