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5)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시는 쓰이기 전에 결정된다
작고한 시인 중에 ‘진짜 시인’은 한용운, 김소월, 윤동주, 이상, 김수영, 그리고 조금 성격이 다르면서 과소평가되었던 천상병, 박용래, 김종삼 등의 시인들이 있습니다. 이선영 : 저에게는 한때 시인 아닌 사람은 마치 다른 인종인 것처럼 보이던 때가 있었습니다. 시인과 인간, 그 분기점은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 예를 들면 이상(李箱) 같은 경우는 시인으로서는 탁월했지만 개인적으로 현실에서는 무능한 인간이었는데 같은 맥락에서 천상병, 서정주 등의 시인들도 인간적으로는 불행했거나 한때 과오를 범하기도 했던 분들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현종 : 시인이라고 해서 잘못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일제 시대의 이야기는 그만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당의 경우도 자서전에서 용서를 빌었습니다. 특별하게 그것을 지적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고백을 했고 용서를 빌었으면 용서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때에 살았더라면 어떠했을까 생각합니다. 더 적극적으로 친일한 경우도 있습니다.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어린 사람
그즈음 천상병 시인의 <귀천>을 처음 읽었다. 문장 하나하나가 주는 경이로움이 반가웠다. 몇 번을 되새겨 읽었다. 아마 그때부터 이 정도 시는 나도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오만함이 자라났던 것 같다. 가끔 학교에서는 동시를 써오라는 숙제를 내주었다. 그럴 때면 나는 긴밀하게 행동했다. 하얀 에이포 종이를 먼저 꺼냈다. 연필을 쥔 뒤, 읽었던 시를 몇 개 떠올리고, 멋있는 말을 쓴다고 생각하며 나도 무엇인지 모르는 것들을 적어 갔다. ‘작업’이 끝나면 종이 양 끝을 잡고 멀찍이 둔 채 글자 더미를 감상했다. 나 혼자 써서 나 혼자 만족했다면 재미는 빠르게 사그라졌을 것이다. 나를 둘러싼 환경도 나를 부풀게 했다. 나는 스스로 시의 대가라고 생각했다. 선생님과 또래와 주변 사람들의 찬사를 받으며 적어도 그렇기를 소망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남들과 다른 무언가를 갖추고 있다는 마음은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한두 해가 흘러 열 살 무렵이었다. 나는 진주청소년수련관으로 갔다.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아직도, 그러나 보석(保釋) 없는 유민의 시(詩)
박재삼 시인은 1952년에 부산에서 이미 인사를 했고, 천상병, 박재삼은 이미 인사가 돼 있었고. 신용목 그럼 어떤 문우 활동을 했습니까? 민영 동인 활동은 안 했어. 부산이라는 데가 빤해. 문학 한다는 사람들이 전부 광복동 아니면 남포동에 모이거든. 그래서 그때 이미 그들하고 다 만났지. 신용목 직접 찾아가셔서? 민영 찾아간 것도 있고…. 박재삼 시인 같은 경우는 김상옥 선생을 통해 알게 됐지. 시조시인 김상옥 선생이 우리 회사에 시집을 만들러 오셨는데 내가 먼저 인사를 드렸지. 박재삼 시인은 그 김상옥 선생 제자야. 삼천포중학교. 그렇게 다 알게 되었고. 서울로 올라왔는데 《현대문학》에 조연현, 오영수 선생이 있는데 그 밑에 김부용, 박재삼이 있었어. 나는 만드는 인쇄소에 있고, 이 쪽은 그 앞에 조그만 출판사. 그것도 대한교과서에서 하는 것이지. 추천 받는 것은 나 혼자 했어. 박재삼한테 서정주 선생의 주소를 알아서 찾아가서 인사를 드리고 작품 보여드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