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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지 > 월간문학 광복 70년, 윤동주 70주기·上_동(冬)섣달 꽃 같은 청년시인, 연심을 품었다
여성시인 사포에 대한 플라톤의 사랑, 선덕여왕에 대한 지귀(志鬼)의 사랑 등은 아득한 이상세계에서나 빚어질 비현실, 초현실의 사랑이다. 요컨대 강처중은 윤동주가 정신적인 데 호소하는 탈속의 사랑에 탐닉했음을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다. 강처중의 증언은 이로부터 28년이 지난 후 윤동주의 후배였던 정병욱이 남긴 글인 「잊지 못할 윤동주의 일들」(1976)에서 한껏 구체성을 얻게 된다. 강처중의 모호한 증언이 선명해지기까지 한 세대가 걸린 셈이다. 두 사람의 증언 내용이 유사한 맥락 속에 함께 놓여 있는 게 사실이다. 북아현동에는 동주 형의 아버님 친구로서 전에 교사를 하다가 전직을 하여 실업계에 투신하고 있는 지사(志士) 한 분이 살고 계셨다. 동주 형은 그분을 매우 존경했고 가끔 그 분 댁을 찾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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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지 > 아동문학평론 역사동화론
장편동화 『마지막 왕자』ㆍ『뢰제의 나라』 등과 청소년소 설 『화랑 바도루』ㆍ『나에게 속삭여 봐』ㆍ『지귀, 선덕여왕을 꿈꾸다』 등을 펴냄. 계몽문학상ㆍ가톨릭 문학상ㆍ윤석중문학상을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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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지 > 시조문학 시조문학 2012년도 여름호
‘지귀 志鬼’의 사랑은 -선덕여왕을 흠모했다는 사서의 기록에 근거하면-이성적 갈구이다. ‘여래’의 사랑은 중생에 게 이르는 자비임으로 모성적 간구와 통 한다. 둘째, ‘슬픔’은 여래와 어머니의 ‘자애로운 슬픔’(慈悲)에 근거한다. ‘어머 니’의 모성적 자애와 여래의 자비는 모두 사랑의 다른 표현이다. 다만 ‘여래’ 는 ‘중생’인 시적 자아가 쉽게 범접 못할, 경계의 저쪽에 있는, 지고의 반열 에 선다. 다시 말하면, 그런 지고한 타자와 하나가 될 수 없는 한계에 절망 한 시적 서정의 발현이 ‘눈물’이다. 셋째, ‘외로움’은 ‘그 이름’, ‘당신’, ‘여래’의 부재에서 야기된 고독이다. ‘그’ (녀)로 읽히는 ‘그 이름’은 이미 “지워졌”(<길>)고, 어머니인 ‘당신’을 사별했 다(<어머니, 사우잿날>). ‘여래’는 늘 쉽게 닿을 수 없는 초월적 대상이기 때 문에 없는 역시 부재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처럼 타자화한 극한 정서 속의 자아는 3가지의 부재를 아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