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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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중편연재 소설] 생택쥐베리 가 27번지_제1회
[중편 연재 소설] 생텍쥐페리 가 27번지 (제1회) 전삼혜 1. 사막 한 가운데 신이 있었다 병원에 가는 거야. 수업 도중 의료반 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에바, 라고 내 이름이 불리자 나는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옆 자리에 앉아 있던 에스텔이 내 가방을 챙기는 게 보였다. 다녀올게, 라고 나는 교실 문을 닫기 전 친구들에게 인사했다. 수업이 멈추었고 아이들과 선생님이 잘 다녀오라며 손을 흔들었다. 의료반 선생님을 따라 나는 복도를 걸어갔다. 복도를 돌아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 병원으로 가는 워프 게이트가 있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의료반 선생님이 나에게 워프 카드를 건네주었다. 아마도, '병원' 워프 게이트로 가는 워프 카드인 것 같았다. 목적지를 표시하는 난에 '웨일-병원'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나는 아래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카드 뒷면을 뒤집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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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중편연재] 계류와 표류 제2회
[중편 연재 소설] 계류와 표류(제2회) 안보윤 2 추접스런 늙은이. 동욱은 버스 정류장에 수레를 세우는 늙은 여자를 보며 중얼거렸다. 여자는 단순히 늙었다, 라는 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을 만큼 흉측하고 비루했다. 동욱은 늙은 여자를 묘사할 더 혐오스런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적잖이 낙담했다. 정수리에 얼기설기 쌓인 늙은 여자의 백발은 두피가 고스란히 내보일 만큼 숱이 적었다. 관자놀이부터 목 뒷덜미가 숫제 맨숭맨숭 붉기만 했다. 주름투성이 얼굴은 이마와 양 볼이 넓은 대신 눈 코 입 간격이 눈에 띄게 좁아 우스꽝스러울 정도였다. 늙은 여자는 가로수 밑에 놓인 쓰레기봉투에서 버려진 캔을 골라 수레에 싣는 중이었다. 캔을 밟아 찌그리는 모습이 구부정하고 어설펐다. 왜 노인네들은 주섬주섬 무언가를 뒤지고 느리게 움직이고 대추 썩은 냄새를 풍기며 끈질기게 돌아다닐까. 동욱은 이 자리에 앉아 버스정류장을 배회하는 늙은이들을 수도 없이 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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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중편연재] 색깔 없는 얼굴_제1회
[중편 연재 소설] 색깔 없는 얼굴 (제1회) 이종산 그날 밤 정혜는 와플창고에서 모래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차에 치여 쓰러졌다. 와플창고는 일종의 인터넷 커뮤니티였는데 어디나 그렇듯 시시하고 외로운 사람들이 모였고 정기적인 모임을 가졌다. 그 모임에서 정혜는 어린 축에 속했고 모래도 그랬다. 와플창고는 커뮤니티 장이 소유한 폐업한 카페였다. 그 사람은 정기모임에 자주 나와 친해진 사람들에게 그 망한 공간을 개방했고 정혜는 삼사 개월 간 거의 매일 그곳에 갔다. 그곳에는 항상 사람이 있었다. 특히 같은 나이였던 모래와 친해졌는데 사고가 난 날 밤에는 분위기가 별로 좋지 않았다. “너랑 잔 게 학교에 소문이 다 났어.” 정혜가 말하자 모래는 어색하게 웃었다. “나랑만 잔 건 아니잖아.” 모래가 그렇게 말했을 때 정혜는 화가 나는 것도 아니고 부끄러운 것도 아닌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