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4)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산문 부문] 바람
- 조현빈 -
-
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수필 봄, 심우도
봄, 심우도 조현빈 동면에서 깬 땅이 기지개를 켜는 해토머리. 땅끝마을을 지나는데 정겨운 풍경 한 폭이 차를 멈춰 세웠다. 노부부와 소가 삼위일체가 되어 밭을 갈고 있었다. 소가 걸음을 뗄 때마다 고삐를 쥔 할머니와 쟁기, 할아버지도 느리게 움직였다. 구름이 흘러가듯, 해가 서녘으로 돌아눕듯 굼뜨고 여유로운 동작이었다. 그쯤 고삐를 바투 당기거나 “이랴!” 하는 추임새 한번 넣을 법도 한데, 두 분은 묵묵히 소의 걸음을 따를 뿐이었다. “우리 누렁이가 새끼를 뱄다니께. 이번이 세 배짼디, 노산이라 여간 걱정이 아녀. 그랴도 이래 품을 덜어 주니 먼 디 사는 자식들보다 낫다니께···” 아닌 게 아니라 소의 뱃구레가 눈에 띄게 묵직했다. 눈동자가 잘 익은 상수리처럼 빛나고 엉덩이가 매끈한 것으로 보아 누렁이는 노부부에게 가족 이상의 의미일 것이다. 셋이서 한 걸음씩 나아갈 때마다 쟁기 날을 따라온 흙이 붉고 살진 속살을 드러냈다.
-
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수필 빚, 빛
빚, 빛 조현빈 세상엔 빛과 어둠이 공존한다. 둥글게 말았던 몸을 펴며 점점 커지는 어둠 속을 알아챈다. 어둠은 어머니의 배 속, 아늑하고도 편안한 집이다. 시나브로 계절이 세 번 바뀌고 동짓달 스무닷샛날 새벽, 나는 어머니가 내어 준 길을 따라 열두 시간 만에 어둠의 길을 통과하였다. “기집이여” 낯선 음성이었다. 방 안은 이내 침묵으로 가득했다. 밖은 고요하고 칠흑같이 어두웠으나 얼마 못 가 시간은 빛을 데리고 왔다. 아침이 오고 있었다. 빛보다 빠르게. 그녀는 날마다 산에 올랐다. 하루도 빠짐없이 치르는 의식처럼 묵정밭을 일구러 비탈을 올랐다. 손엔 호미가 들려 있고 어느 날은 어깨에 쇠스랑이 얹혀 있었다. 잡초와 돌을 골라낸 자리에 보드라운 흙이 만져지고 도란도란 이랑이 생기면 씨앗을 뿌렸다. 이랑 사이로 하나둘 늘어나는 줄 무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