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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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오래된 처방
오래된 처방 조기조 기계를 뜯어놓고 고민하다 자꾸 풀리는 큰 배꼽 같은 부품 몸체에 때워 붙이다 오래된 기계와 오래된 기술의 대결이자 합의 잘하면 반년 운 좋으면 일년 아프다 말 못하는 낡은 기계가 기술과 함께 버틸 시간 내 목뼈 세 마디 나사못 박아 붙일 때와 같이 영구적인 처방이다 그러나 오래는 가지 못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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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구로공단 오십 년
구로공단 오십 년 조기조 내가 태어나 막 아장거릴 때 생겼다는 구로공단에 스무 살짜리 청년이 되어 첫발을 디뎠다 장항선 완행열차를 타고 와서 삼십 년 넘었다 이곳은 피땀을 마시고도 갈증을 일으키는 사막이다 하여 돌멩이 쥔 채 희망도 가져 보고 피세일 하며 절망도 하면서 처자식을 얻고 병도 얻었는데 아직 떠나지 못한 채 살고 있다 그 사이 굴뚝은 모두 사라지고 유리창과 네온사인만 번쩍이는 구로디지털단지에는 스무 살 된 작은딸이 출근을 하고 내가 자취하던 벌집 쪽방엔 외국인들이 와서 살고 있다 구로공단 오십 년 잘 버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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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이소(離巢)
이소(離巢) 조기조 자식들이 모두 곁을 떠난다 하나는 대학교를 마치고 또 하나는 고등학교를 끝으로 제각각 살길을 찾아 떠나간다 몇 년만 더 있었으면 했지만 슬그머니 뿌리치고 떠나버린다 힘들고 답답했던 모양이다 아프고 괴로웠던 모양이다 가난한 부모 품이 썰렁하고 불안했던 모양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자식이라고 잡아 두려 했던 것이다 아직 이른 감이 없지 않으나 아직 애처로움이 없지 않으나 이제 성인이 되었으니 어떻게든 살아가리라 떠나는 자식들보다 남겨진 스스로를 위로한다 나 또한 그렇게 떠나올 때 홀어미도 그러하였으리라 더 힘들고 답답할 것이다 더 아프고 괴로울 것이다 더 썰렁하고 불안할 것이다 젊어서 살아가기가 더 힘이 든다 그러나 어떻게든 살아가거라 사랑할 것은 사랑하고 미워할 것은 미워하며 용서할 일은 용서를 하고 복수할 일은 복수를 하며 산다는 일이 차마 그러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