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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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나와는 너무나 다른 사람
[조경란이 만난 사람 3] 알리사 발저 나와는 너무나 다른 사람 내가 자주 흥얼거리는 노래 중에 '캐비넷 싱얼롱즈'라는 인디밴드의 이런 노래가 있다. “추운 겨울이 지나가면 따뜻한 봄이 찾아오지만 그런 봄이 지나가고 나면 무더운 여름이 오죠 무더운 여름이 지나가면 청명한 가을이 오지만 그런 가을이 지나가면 다시 추운 겨울이 오죠 우리는 늘 만족을 모르죠 라랄라 라랄라 우리는 늘 만족을 모르죠 라랄라 라랄라 라~” 이 노래를 부를 때면 언제나 알리사 발저Alissa Walser 생각이 난다. 그녀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 곧이 곧대로의 얼굴, 초록과 갈색으로 빛나는 깊은 눈, 그리고 언제나 조용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입술. 그런 그녀의 얼굴은 이 노래 제목처럼 내게 늘 이렇게 묻고 있는 듯하다. 우리는 왜 만족을 모르는 걸까. * 8월 3일 목요일 6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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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숙녀를 만나다
[조경란이 만난 사람]⑨- 現代文學, 양숙진 주간 숙녀를 만나다 누군가 날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싶은 날 장편소설을 끝내자마자 뭣에 홀린 듯이 사흘 만에 단편소설을 한 편 쓴 적이 있다. 몇 달 동안 매일 매일 앉아 왔던 책상을 떠나는 게 두려웠기 때문이다. 미리 구상해 둔 게 없었더라면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아무려나 내 소설 중 가장 분량이 짧고 명랑한 그런 소설을 썼다. 그게 지난 가을의 일이다. 그 후 책상 앞에 앉지 못했다. 그럴 줄 알았다. 그래서 어떻게든 그 단편소설을 쓰고 싶었을 거다. 한번 책상 앞을 떠나면 다시 돌아오기까지 너무나 많은 시간이 걸리고 애를 써야 한다는 걸 뻔히 잘 알고 있으니까. 소설쓰기란 오래했다고 해서 점점 쉬워지는 것도 만만해지는 것도, 딱히 지름길이 보이는 것도 아니어서 쓸 때마다 언제나 곤혹스럽다 못해 좌절감을 느끼기까지 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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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울어도 괜찮아?
[조경란이 만난 사람 5] 민병훈 울어도 괜찮아? 1. 벌이 날다 여배우 B의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 입구엔 환하게 불 켜진 가로등 하나가 서 있었다. 맞은편엔 횡단보도가 있고 그 횡단보도 바로 앞엔 수천 권의 책들을 소장해 놓은 걸로 유명한 북 카페가 하나 있었다. 정원이 있고 커피와 책과 나무가 있는 곳이라 언젠가 한번 저길 가봐야지, 지나칠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하곤 했었다. 지금은 그 북 카페가 아니라 B의 집으로 가야 하는 길인데, 나는 곧 횡단보도를 건너 그 카페로 들어갈 사람마냥 무턱대고 서 있다. 어디고 낯선 사람 없는 데가 없을 텐데. 너무 낯을 가리면 이럴 때 불편하다. 어쨌든 오늘은 B의 집에 초대를 받아온 거고 아직 B와 트고 지내는 사이가 된 건 아니니 가겠다는 약속은 지켜야 했다. 그 송년파티에 온갖 모르는 사람들이 온다고 해도 말이다. 빨간색 티코 한 대가 내 앞에서 골목 쪽으로 우회전을 시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