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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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도덕의 구조』를 시작하며
『도덕의 구조』를 시작하며 정지아 내 나이 아홉 살 때, 4교시가 시작되면 나는 선생 집에 도시락을 가지러 갔다. 아이 걸음으로 왕복 40분이 넘게 걸리는 길이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나는 그 먼 길을 걸어 도시락 배달을 했다. 4교시 수업을 듣지 못하는 것이 벌인지 상인지 알 수 없었다. 혼자 걷는 그 길이 때로는 나쁘지 않았고, 하여 나는 돌아오는 길이면 도시락이 식을세라 품에 꼭 끌어안고 달음박질쳤다. 겨울방학을 하는 날, 종례를 끝낸 선생이 교단으로 나를 불러냈다. 그러고는 다짜고짜 뺨을 후려쳤다. “부반장 엄마가 끝끝내 코빼기도 안 비치는구만.” 나는 부반장이었다. 부반장 엄마는 학교에 자주 얼굴을 비춰야 한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학교에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 엄마를 둔 건 맞아야 할 만한 죄라는 것도, 일 년 내내 계속된 도시락 배달이 벌이었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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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책방곡곡] 천안 가문비나무아래 (제2회)
정지아 작가를 처음 만났는데, 이 작가의 작품들을 더 찾아서 읽게 될 것 같습니다. 한승연 : 이 작품집에는 어떤 신념이나 사상을 가지고 행동하는 인물도 등장하지만 특별한 신념이나 사상 없이 평범하게 살아가는 인물들도 많이 등장합니다. 「우리는 어디까지 알까」의 택이, 「자본주의의 적」의 방현남의 삶에 작가가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것이 느껴졌고 작가가 주목하고 싶은 사람은 평범한 사람들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엄마를 찾는 처연한 아기 고양이 울음소리」는 결혼과 경력 단절 사이에서 갈등하는 주위 친구들이 떠올라서 많이 와 닿은 작품입니다. “임신은 내 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나는 사람이므로 정신도 몸도 컨트롤할 수 있다.”라는 부분을 읽으면서 낙태죄 위헌 판결,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어요. 술술 잘 읽히면서도 생각할 것이 아주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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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극단 해인 대표, 이양구 연출가를 만나다
운이 좋았던 게, 1학년 1학기 때 정지아 소설가가 하시던 교양과목 수업을 듣게 됐어요. 리포트로 뭘 내줬냐 하면, A4 한 장에 자신의 인생에 대해 써오라고 했어요. 저보고 문장이 좋다고 소설 한 번 써보라고 권하셨죠. 소설을 썼는데 잘 안 되고 나중에 연극을 공부해야 되니깐 희곡을 혼자 공부했어요. 희곡 써서 무대에 올려보고 창작을 해보고 연출을 해보면서, 이런 것들이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됐어요. ▶ 글틴 : 극단에서는 극작가를 뽑나요? ▶ 이양구 : 극작가는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이고, 소속이 될까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공모전에 희곡을 내서 당선되면 공모 단체에서 극단은 당연히 붙여줘요. 소문이 나면 다른 단체에서도 서로 작품을 받으려고 해요. 연극과 출신들은 주변에 연출가들이랑 작가들이 많으니까 극장 잡아놓고 연출 정해지고 충분히 시간을 갖고 대본을 써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