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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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황홀한 거울2
鬼) 전형철 둑방에 서 보면 호랑이가 물밑에 어른거린다 저수지를 쌓은 후 산범들 처용의 신세 물속에 가만히 웅크려 있다 처녀애만 잡아간다 스무나무꽃 고샅에 아득하던 날 으스름달 풀리던 이내 한 모금에 애를 밴 언청이 목 부러진 목각인형 배냇저고리에 싸안고 암괭이처럼 그르렁대다 별 달 없는 어둑 밤 내 이름을 부른다 수줍은 저 장지 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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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삼선파르테논
삼선파르테논 -조선생님께 전형철 바짓단을 적실만큼만 비는 내리고 삼일 후 또는 일주일 후 같은 예언이 수배 전단지로 거리에 나붙는다 세 선녀가 앉았다는 플라스틱 의자에 해가 기울면 흉흉한 소문들도 짐을 싸고 당신이 유폐된 무덤의 동검을 들어 시간의 순열한 목을 베자 한 땀 한 땀 기운 어둠의 기둥들이 강림한다 나는 일의 수순이나 탈출을 꿈꾸다 지문이 지워진 손가락에서 잔을 떨어뜨린다 바람이 묵시록 같은 얼굴을 훑자 문장은 화살촉보다 날카롭게 빛난다 당신이 건네준 혈마의 고삐를 틀어쥐며 신전의 모서리에서 지붕을 걷어낸 천장으로, 은하로 횡단하는 핏빛 전차 박쥐가 물어다 준 두루마리를 펴자 고원에서 명상하는 구루는 이제 턱을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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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시인을 위한 물리학』
20 『시인을 위한 물리학』 전형철 이 밤 모든 문이 다른 한 세상을 향해 조금씩 열리는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청탁을 받고 읽은 지 4, 5년은 족히 되는 책을 가방에 오랫동안 넣고 다녔습니다. 오가며 눈으로 책을 읽기보다는 가방 속 책의 무게와 촉감으로 머릿속을 정리하고 생각을 더듬었습니다. 그리고 ‘존재’를 생각하고 ‘틈’을 생각하고 ‘주름’을 생각했습니다. ‘생각’도 생각했습니다. 존재는 늘 고통스럽습니다. 아니 고백하건대 ‘나’는 늘 고통스럽습니다. ‘사유하는 나’가 짐작하는 ‘주체’는 언제나 그 무엇에 의해 만들어지는 중이며, 진동하는 중이며, 이동하는 중이며, 욕망을 채우는 중입니다. ‘모세계’와 ‘주체’는 온전히 조우하거나 결합하지 못해, 틈과 구멍으로 미끄러지기에 삶의 한 면은 늘 목마르거나 혼돈의 안개에 휩싸입니다. 그리고 또 존재는 늘 외롭습니다. 이 글을 쓰는 순간 나는 우주에서 ‘단독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