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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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자연
자연 - 백마 권민경 연인들이 나들이 오던 역 사람들 소요 너머로 십 분만 걸어도 무덤 무덤이 이어졌다 풍수지리가 뛰어나 양반들 묘가 가득 마구잡이로 자랐다 무덤 위를 구르고 십이지 석상에 오르며 나는 조상 조상이 될 예정 아니 영영 후손을 보지 않고 무덤도 갖지 못할 예정 예정은 예정되어 있지 않았고 나는 우연으로 혹은 유전병으로 그저 굴렀다 죽고 사는 게 다 무엇이냐는 듯 무덤 석상 백마의 가장 은밀한 곳을 굴렀다 백석과 마두에서 한 글자씩 따온 지명 마치 가계도 같다 아무개와 아무개가 접 붙어 아무개를 낳고 아브라함의 자손 아무개가 한 지파의 으뜸이 되는 것처럼 백석과 마두가 접 붙어 백마를 낳은 것처럼 나는 완수와 한옥화의 부산물 아무개의 대표 연인이 스르르 늙어 애니골로 돌아올 동안 무덤을 뭉개고 세월 위에 아파트를 짓는다 이윽고 늙어 간다 단지마다 나무가 우거지고 신도시는 반어법이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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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자연 : 이게 합의해 준 은혜도 모르고. 너 나 아니었으면 지금쯤 빵에 있어. 영서 : ……헛소리 할라믄 가라. 자연 : (뺨을 보이며) 어때, 감쪽같지? 영서 : 그러네. 자연 : 강지수 엄마한테 수술비 받았어. 영서 : 나한테 받아야지 왜 걔네 엄마한테. 자연 : 왜긴, 강지수가 너한테 시켰잖아. 넌 돈 없을 게 뻔하고. 영서 : (한숨) 자연 : 아, 나도 정학이나 당할까. 낮에 학교도 안 가고, 팔자 좋네. 영서 : (헛웃음) 야, 쓸데없는 소리 할라믄 학교나 가. 자연 : (유모차 보며) 타봐도 되냐? (유모차에 앉는다) 영서 : 아씨. 자연 : 야, 밀어 봐. 영서 : 뭐? 자연 : 밀어 보라고. 황금동이 타고 있을 때처럼. 영서 : 허참. 황영서, 유모차를 민다. 황금동, 옆에서 아이들을 따라 걷는다. 자연 : (유모차에 기대며) 이런 뷰였구만. 영서 : 뭐가. 자연 : 황금동이 본 경치. 영서 : ……좋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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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비평 새로운 뿌리에 대한 상상 – 임고은의 <아키펠라고 맵>(2021)
따라서 ‘자연 및 인류’는 ‘자연(인류)-속-인류(자연)’이 되고. ‘자연과 자본주의 사이의 운동’은 ‘자연(자본주의)을 통한 자본주의(자연)의 운동’이 된다. 이 표현들 속에서 각각의 존재는 대문자로서 실체의 존재라기보다는 서로가 서로를 만드는, 과정의 존재이다(Moore, 2015/2020). 무어는 이항적 구조가 근대 세계의 거대한 불평등과 억압, 불평등에 직접 기능한다는 이유로 이 구조를 통한 사고를 지양하면서, 자연(인류)-속-인류(자연)의 다양한 배치를 공동생산하는 관계들의 ‘다발적 역사적 전개’에 주목한다. 이 관계가 앞서 말한 오이케이오스라고 할 수 있으며, 이 실제의 역사 안에서는 인간이 행하는 모든 일, 비인간 자연과 인간을 포함하는 전체로서의 생명의 그물과 자연이 모두, 이미 연결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