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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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비평 ‘생태계’를 말하기 전에 질문할 것들
근대문학·예술이 자본주의 시장 내의 환금성을 지닌 상품의 일종이었다는 사실은, 2000년대 이래 한국 문학계의 ‘제도 연구’가 내내 골몰해 온 바였다. 오늘날 문학·예술이 근대 자본주의 조건과 불가분이었음은 2000년대 이래로 연구장을 넘어 일반 대중에게도 널리 체감되었다. 또한 이러한 문제의식을 통해, 이른바 작가론이나 작가연구야말로 지극히 근대적인 문학, 예술의 방법이라는 사실도 환기되었다. 작가론, 작가연구 속의 작품은 작가 개인의 삶과 사유와 감성체계로 통용된다. 그런데 일찍이 마르셀 뒤샹이나 앤디 워홀 같은 이들의 잘 알려진 퍼포먼스가 단적으로 보여주었듯, 작품의 성취에 개재된 작가(이름)의 신화는 시장의 브랜드네임과 호환되는 구조를 이미 갖고 있었다. 한편 유의할 것은 ‘문학·예술이 이렇게 근대 자본주의를 모태로 삼고 있다’는 말은 ‘문학·예술이 근대 자본주의 시스템으로 환원된다’는 식의 말과 전혀 다른 의미와 효과를 지닌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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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제5회] ‘조반니 아리기’를 발견하기 위한 책 구입 여정
가라타니 고진이 제시한 ‘역사의 반복’에 관한 기본 아이디어는 자본주의 발전의 이 같은 ‘체계적 축적 순환’에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나에게 가장 실감나게 다가오는 ‘금융팽창’이라는 용어가 페르낭 브로델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조반니 아리기가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브로델이, 시장 위에 위치하면서 반(反)시장적 성격을 띠고 시장에 압박을 가하는 것이 자본주의라고 말하고, 또 시장 아래에서 시장에 편입되지 않으면서도 경제생활의 바탕을 이루는 이른바 ‘물질생활’의 영역이라 일컫는 근본 영역이 있다고 주장한다고 말한다. ‘아니, 이러한 브로델의 구분법은 칼 폴라니가 자기 조정 시장에 입각한 것이 자본주의 경제체계의 기본이라고 한 것과 크게 대립되는 것 아닌가. 그뿐만 아니라 흔히 상식적으로 자본주의 경제를 시장경제라고 말하는 것과 크게 대립되는 것 아닌가. 브로델이 말하는 반(反)시장의 성격을 띤 자본주의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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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비평 시장에서 생태계로
그리하여 가령, 미적 자율성과 같이 자본주의 시장에 대해 스스로 타자화하던 예술의 이념조차 어쩌면 익명의 시장 속 예술적 생산이 제한적으로 보호되던 특별하고 짧은 기간의 일로 여겨지기도 한다. 20세기 말부터 새로운 세기를 진단하는 이들은 다양하게 외부소멸 테제(자본주의 바깥은 없다)를 말해 왔다. 그리고 현재 자본주의 시장 바깥의 존재론을 상상하기란 정말로 어려워졌고, 상품미학을 제외한 미학의 설득력도 곤란하게 여겨진다. 20세기 말과 20세기 초, 삶vs.예술 사이에서 무게 중심을 겨루던 예술을 위한 예술(art for art)과, 전위로서의 예술(avant-guard)의 전략이 지난 세기 내내 그 변주를 파생시킨 셈이라면 이제는 그러한 각축전을 가능케 한 조건은 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