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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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눈·코·입이 없는 저녁에
눈·코·입이 없는 저녁에 이지아 그때 시간은, 홀로그램 색으로 빛나며 죽은 순록 얼굴을 아무렇게나 모자처럼 눌러 쓴 채, 살며시 나를 지나쳐 가고 있었다 낭만 없이 우리는 진심이었고 투명한 손을 잡고 있었지 을지로에서, 차들이 있더라, 루체른에서도, 가게들이 있더라, 결국 오지 않았던 거기에서도, 산맥들이 연결되어 있더라 그때 시간이, 또 멈춰서 바람에 흔들리던 네 머리카락이 네가 가진 소멸처럼 느껴졌고 나는 고개를 숙인 채, 빛나는 글자를 아무렇게나 삼키며 오후가 끝나길 바라고 있었다 선택할 게 많은 곳에서, 또는 선택이 필요 없는 곳에서 사람들은 눈코입이 없어지고 있었지 눈코입이 없어도 뭔가를 보고 만지고 노래를 하면서 이런 것을, 그때라고 부를 이곳에서 나는 온몸이 다 사라져 있더라 헝가리에서, 홍제동에서도, 볼 것들이 남아 있더라, 거기 초라한 약속들이 계속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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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음악 없는 마음
음악 없는 마음 이지아 땀이 비 오듯 살고 싶다. 창문에 가득한 감시, 땀이 비 오듯 헉헉거리며 내 열정을 식혀 줄 음악 없이도, 내 키가 더 작아지고 피부도 좀 더 줄어들고 발음도 더 힘들어져 내 뒤에 아무것도 없이 흥얼흥얼 악마들이 나를 위로해 줄 합리적인 변명도 없이 거리를 뒹굴던 바람을 주워 마시고 땀이 비 오듯 나를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