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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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세속 여름
세속 여름 이재연 늘 그랬듯이 더 이상 나빠지지 않으려고 다시 전화를 받고 전화를 끊는다 아는 사람과 알고 싶은 사람의 차이 알고 싶은 사람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모두 아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그것이 편해 따뜻한 물을 마시고 반쯤 죽은 아이비 화분에 물을 준다 지구는 펄럭이고 현수막처럼 아침이 오고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닌 사람을 보내버리고 냉장고 문을 열고 냉장고 속을 바라본다 샐러드 속의 단백질의 관점에서 나는 지나가지 않으려고 한 사람들을 끝없이 지나가게 하는 사람 갑자기 안이 밖이 되고 밖이 안이 되어 이르기를 누구나 다 마찬가지, 마찬가지로 같아 무궁화 꽃이 피고 곰팡이 꽃이 피고 옥수수, 옥수수 텅 빈 하늘로 솟고 술 먹고 술 안 먹었다고 하는 너의 목소리 빛나고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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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일요일
일요일 이재연 참을 수 없이 얼굴이 작아지고 팔과 다리는 가늘어져요 노모는 그런 편이에요 안간힘을 써도 무리에서 멀어지려는 그런 편에 누워 있어요 말년은 어느 때에 갑자기 찾아와 팔과 다리를 움직여요 뇌도 움직이고 접시도 움직이고 얼음도 움직여요 그사이 장미가 지는 것을 봐요 말 한마디 없이 갑자기 불 속으로 들어가는 사람도 있어요 사람은 왜 돌아올 수 없는 길의 도처에 불을 놔야 하는지, 그것이 꼭 불이어야 하는 것인지 불이어야만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인지 담배에 불을 붙이다가 흉터 하나 없는 하늘이 지나가고 스무 살이 훅 지나가 버리네요 뒤돌아보니 노모는 누워 있어요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수정할 수 없는 나무의 키가 사람들 속으로 퍼져 나가고 푸른 잎사귀들이 우수수 허공을 흔들어요 여름을 다 뒤집어 놓을 생각인가 봐요 노모는 갑자기 몸을 일으켜 물어요 일요일이 되려면 며칠 남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