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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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진이네 - 5월 8일 이소호 그날은 할머니 비가 오고 아버지의 넥타이를 가슴에 묶어 자른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되었다 할아버지는 비옷을 잘라 만든 웨딩드레스를 입고 아빠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호상이든 죽상이든 그날이면 할아버지는 아빠를 기다렸다 아빠는 온 가족의 머리를 깎아 제사상에 올렸다 홀수여야 하는데 우리는 둘둘 넷이잖아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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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진이네 - 원룸 이소호 애인은 무릎이 나온 바지를 입고 나는 그보다 더 나온 무릎으로 방바닥을 기고 엎어진 상처럼 운다 맥주 같은 서른 그보다 한 병 더 까먹은 나는, 좆처럼 물면 희박하고 불면 무한한 밤이 완성되고 또 또 울면 여자가 된다 나는 여자처럼 새끼의 그늘이 된다 새끼는 뒤꿈치의 옹이에 붙어 나를 빨아먹고 직박구리처럼 신음한다 나를 빨던 애인은 내 시가 구리다고 했다 내가들었다고 더럽다고 했다 나는 다 자란 애인을 남편으로 고쳐 적는다 그러니까 남편 늙으면 죽어야 해 잘하면, 늙어 죽을지도 몰라 냉장고에 꽁꽁 얼린 한 움큼의 남편. 남편의 뺨을 개수대에 치대 본다 방바닥에 쾅쾅 치대 본다 왜 우린 그대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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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2010년대 결산특집 연속 좌담ㆍⅡ ― 시집 부문
강지혜 : 이소호 시인의 서가에서 『가능세계』를 처음 만났는데, 이소호 시인이 그 시집 너무 좋다는 거예요. 어떤 점이 좋으냐고 물었더니 '모르겠고 그냥 좋아'라고 하더라고요. (웃음) 이렇게 얘기를 해서 저도 읽게 됐는데, 저도 모르겠고 그냥 좋더라고요. 이게 뭐지? 이렇게 공감되고 있는 이 지점들은 뭐지? 하는 생각을 많이 했던 작품이었고, 조금 지나고 나서 생각을 해보니 이소호 시인의 시집도 그렇고 백은선 시인의 시집도 그렇고 1980년대 후반에 태어나서 지금 30대를 보내고 있는 여성들이 갖고 있는 그 고통, 저희 세대가 갖고 있는 그 고통을 잘 보여주고 있는 시편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저는 이 시집이 좀 더 주목받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생각보다 주목을 그렇게 많이 받지 못한 것 같아요. 김태선 : 이번 추천에서요? 아니면 평단에서요? 강지혜 : 평단에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