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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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달밤
달밤 이나명 시금치 무치고 상치 씻어 한 상 차렸어요 밥상 위에 푸성귀 같은 문장들이 싱그럽게 피어 있군요 배고픈 당신 얼굴이 찌개처럼 보글보글 끓는군요 수저를 든 당신 손등이 애호박처럼 파릇파릇하군요 밥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으니 당신 입이 나팔꽃처럼 벌어지는군요 배고픈 목구멍으로 꽃씨 같은 문장들이 뜨겁게 달음질쳐 내려가는군요 밥 한 그릇을 고요하게 비우는 밤이에요 당신 뱃속이 부풀어 올라 둥근 보름달 뜨는 밤이에요 보름달 당신을 내가 꿀꺽 삼키는 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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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나무의자
나무의자 이나명 베란다에 나무의자 하나 내다 놓았다 가끔씩 나가 앉아 어두운 밤 풍경을 내다보았다 밤의 불빛들이 우는 벌레들처럼 꿈틀거렸다 어둠의 속살이 발긋발긋 물어뜯기는 걸 보았다 아침 거실에서 보니 베란다에 나무의자 혼자 앉아 있다 차가운 타일 바닥에 네 가닥 무릎을 곧게 세우고 머리는 텅 비운 채 이상한 듯 훤해진 아침 속에서 간밤에 울던 어둠속 벌레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어둠의 상처들은 다 어디에 감췄는지 먼 산은 여전히 먼 곳이고 하늘 아래 집 지붕들은 여전히 높낮이가 다르고 베란다의 화초가 떨어뜨린 물색 고운 슬픔은 금세 말라 바닥에서 뒹굴고 아침 창문에 햇빛들이 날벌레들처럼 와 달라붙는다 저 꿈틀대는 빛들의 생생한 몸짓들 저 환하게 열린 공간 속에서 나무의자 혼자 고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