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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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제14회] 펜
비록 오세영 시인이 만년필을 들고 당혹감을 느끼고 있다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인생이란 한 장의 시험지, 무엇을 쓸까?” 하지만 시인도 벤야민처럼 직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비록 지금 자기만의 진실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쓰이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시인은 아직도 자신에게는 작은 시간이나마 남아 있다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그 많은 시간을 덧없이 보내고 치르는 시험은 이제 당일치기다.” 어쩌면 말입니다. 오세영 시인도 저나 벤야민처럼 낡은 만년필을 과감하게 버리고 문구점에 들리는 것이 좋았을 수도 있습니다. 새로운 만년필과 잉크를 사는 겁니다. 그것은 새로운 집필 도구를 사는 것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유쾌한 기분이나 혹은 새롭게 태어난 느낌을 사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천천히 새로운 만년필에 새로운 잉크를 붓는 순간, 오세영 시인의 이야기는 조금씩 풀려나오게 됐을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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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구름
구름 오세영 구름은 하늘 유리창을 닦는 걸레 쥐어짜면 주르르 물이 흐른다. 입김으로 훅 불어 지우고 보고 지우고 다시 들여다보는 늙은 신의 호기심 어린 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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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복토(覆土)
복토(覆土) 오세영 만성 위염으로 기운이 쇠진하여 이제 드러눕게 된 몸 영양제, 항생제로 겨우겨우 버티다가 할 수 없이 이 봄 외과 처방을 받는다. 지력(地力)이 다해 복토한 논을 오늘 처음으로 흙을 골라 골을 치고 써레질한다. 위 절개 봉합 수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