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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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언덕
언덕 박준 저녁 찬거리는 있냐는 물음에 조금 머뭇거렸습니다 민박집 주인은 턱으로 언덕 채마밭을 가리킵니다 나는 주인에게 알부민 양철통을 재떨이로 쓰고 계시던데 혹시 간이 안 좋으시냐 물으려다 말고 언덕을 올랐습니다 근처에 분명 고추밭이 있을 것 같은데 언덕에서 헤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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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물의 언덕
물의 언덕 곽효환 자궁을 닮은 거대한 호수 그러나 그 위에 세운 고대 도시 아스텍의 기억은 물의 흔적을 잃어버린 물의 언덕 위에 있다 몇 백만 년 전 커다란 양철독수리가 하늘 위를 빙빙 배회하고 그 뱃속에서 붉은 고원으로 쏟아져 나온 언어 이전의 삶을 산 사라진 사람들 바람의 방향을 따라 물의 비탈을 따라 산 밑의 마을로 더 큰 마을로 작은 도시로 큰 도시로 더 큰 도시로 갔다가 마침내 다시 물의 언덕 위의 신전으로 돌아오다 어디일까 수십억 광년의 침묵이 고였다가 맨 처음 물로 흐른 물의 언덕은 그 기억의 형해만 남은 물의 신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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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충실한 슬픔
충실한 슬픔 유현아 왜 부잣집은 언덕 오르막길에 있는 거지 가난한 집도 언덕 오르막길에 있어 우리는 슬프고도 시시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몸이 앞으로 기울어지는 오르막길 대신 다리를 구부려야 하는 계단을 선택한다 재미있게 오르기 위해 가위바위보를 한다 주먹 쥔 손안에는 어떤 꿍꿍이를 움켜쥐었길래 비밀처럼 보이지 않아야 하나 위에서 내려다보는 계단에선 보이지 않지 밑에서 올려다보는 계단에선 빛이 산산조각으로 나누어지는 것을 본다 하얀 자갈에 노랑 형광 물감으로 튤립봉오리 그리는 사람을 만났다 이 전시는 그림 보는 순서가 있어요, 라고 들었지만 이 그림에는 슬픔이 가득하네요 폭죽처럼 터지고 있어요 슬픔은 지나가요, 라거나 슬픈 일은 계속 남아요, 라거나 우리는 시시한 혼잣말을 그림자처럼 뱉었다 미술관으로 가는 오르막길 계단에서 우리는 가위바위보를